3월25일 맹인 한 사람

조회 수 1775 추천 수 16 2008.03.25 00:20:27
2008년 3월25일 맹인 한 사람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을 대시기를 구하거늘. (막 8:22)

시각장애인 치유를 다루는 오늘 본문 막 8:22절 이하는 언어장애 치료 이야기인 막 7:32절 이하와 전체적으로 아주 닮았습니다. 다른 점은 단지 각각 시각장애와 언어장애라는 것뿐입니다. 장애치유에 관한 여러 전승 중에서 마가가 나름의 신학적 의도에 따라서 이 두 전승을 선택해서 이 자리에 배치한 것 같습니다.
초기 기독교 이후에 이런 이야기는 알레고리로 해석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영적인 장애인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요즘도 그런 해석은 드물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서를 오늘의 삶에 적용시키는 쪽에만 무게를 둔다는 이런 알레고리 해석이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이현령비현령 꼴이 나고 맙니다. 그런 방식의 해석은 아주 편리하고 실용적입니다. 편리하다는 것은 텍스트에 대한 역사 비평을 거치지 않아도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며, 실용적이라는 것은 청중들에게 솔깃하게 들린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청중들은 대개 텍스트의 중심 보다는 그것을 이용해서 종교적인 위로를 얻는 데만 마음을 두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좀 고된 작업이라 하더라도 일단 텍스트의 실체적 사실로 들어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서기자의 집필목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각장애인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아닙니다. 마가의 관심은 7장에 나오는 언어장애자나 8장의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그들을 치유한 예수님입니다.
민중을 역사변혁의 주체로 설정하는 민중 신학자들의 성서읽기도 이런 점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성서의 중심을 놓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약)성서는 오직 한 가지 사실에 집중합니다.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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