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6)

조회 수 1562 추천 수 25 2008.04.17 23:33:39
2008년 4월1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성화론도 아니고, 구원파도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칭의의 현실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성화론의 행동주의도 아니고 구원파의 열광주의도 아닌, 제 삼의 길은 무엇일까요? 제 삼의 길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유별나게 다른 데 있는 건 아닙니다. 기독교 정통이 말하는 데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이 말은 곧 한국교회에서 득세하고 있는 성화론과 구원파는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가 말하는 중심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독교 정통은 어떻게 칭의의 현실을, 구원의 현실을 포착하라고 가르칠까요?
각각의 시대마다 구원의 현실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거칠게 말해서 교부시대는 삼위일체가, 중교개혁 시대는 성만찬 논쟁이, 20세기 초에는 하나님 나라가, 20세기 중후반에는 역사 문제가 그 중심에 자리했습니다. 서로 다른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결국 하나로 모아집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계시입니다. 거기에 접근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칭의의 현실에, 구원의 현실에 다가가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칭의의 현실, 구원의 현실은 곧 하나님의 현실(reality of God)을 가리킵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 신론을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성화론이나 구원파의 문제에 국한시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화론이나 구원파는 하나님의 현실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에 치우쳐 있습니다. 전자는 인간의 외적 도덕성에, 후자는 인간의 내적 심리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들이 인간학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현실을 폐쇄적인 도그마에 제한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설명이 너무 이론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군요. 어쨌든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명제의 현실을 인식하고 경험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현실을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에서 모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벨:3]삶에서..

2008.04.18 01:01:30

우리의 신앙은 곧, 하나님에게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요..
목사님의 설명이 이론적이라 하더라도 목사님께서는 오직 하나님만을 이야기하고 계실뿐이죠..
그것으로 우리에겐 족한게 아닐는지요..
하나님 오늘도 그분을 알고 그분께만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요

큐티는 아침에 봐야 제맛인데 한밤중에 봤네요..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04.19 22:43:40

하나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데,
우리의 영혼은 부자가 되는 거랍니다.
평안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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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3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한 사람의 죄를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지고 간다는 사실만 놓고 본다면 그것은 분명히 고대인들의 신화적 세계관처럼 보입니다. 고대인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아버지가 대신 감옥살이를 할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속론은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실효성이 없을까요? 우리는 고대인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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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우리의 죄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대속된다는 이 말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현대인들은 그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기도 힘들 겁니다. 그 이유는 죄에 관한 기독교의 가르침이 현대인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는 데에 놓여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경험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벌어지는 잘못들은 단지 실수이거나 잘못된 교육, 또는 왜곡된 사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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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는 이 명제가 담고 있는 기독론적 근거를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구원, 죄, 십자가, 부활, 생명 등등의 개념들이 여기서 제시되었습니다. 이것 이외에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종말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생각해야겠지요.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와 종말은 모두 구원의 문제이니까요. 여기서 무한정 시간을 끌 수가 없겠지요. 저는 열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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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3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7)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주는 그리스도시다.”는 명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독자들께서 이미 눈치 챘겠지만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바로 생명의 완성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 예수님이 생명의 완성자라는 뜻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우리의 생명이 왜 불완전한지를 알아야 하는데, 저는 그걸 앞에서 간단하게 짚은 것입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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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이 세상의 생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더 설명해야겠군요. 이건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대한 작은 통찰만으로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먹어야만 합니다.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늘 식욕이 넘치는 게 아닌데도 우리는 먹어야 합니다. 이틀만 잠을 자지 않아도 우리는 견뎌 내지를 못합니다. 먹는 것과 잠만이 아니라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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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5)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술적인 경험, 시인들의 언어경험, 철학자들의 존재경험은 세속적인 소유를 통한 경험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런 경험은 소유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지 않습니다. 배가 고파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서 우리는 소유와 다른 삶의 경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그림 그리기와 음악 연주 등을 통해서 정말 살아있다는 경험을 합니다. 지난 인류 역사는 그런 행위들을 가치가 높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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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4)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사실 어제 말씀드린 시인, 예술가 등등의 어떤 영적인 경험도 쉬운 게 아닙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오랜 훈련을 통해서 얻는 도의 경험이니까요. 대개의 사람들은 그런 것보다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데서 생명을 경험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소유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가장 자극적으로 확인해주는 어떤 마성적 힘입니다. 어린아이들도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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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3)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부활과 생명 경험에 관한 어제의 묵상이 어떤 분들에게는 너무 관념적으로 들렸을 것 같군요. 또는 다 아는 이야기처럼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게 바로 언어의 한계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언어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언어 자체의 한계이기도 하고, 양 측의 전이해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족 같겠지만, 어제의 이야기를 조금 더 설명해야겠습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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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2)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부활은 생명 경험입니다. 주는 그리스도라는 명제의 핵심도 역시 생명입니다. 메시아는 구원자인데, 구원은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 생명의 현실이 부활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부활 현현 경험을 통해서 이제 예수가 생명의 토대라는 사실을 믿게 된 것입니다. 부활과 생명의 관계를 조금 더 설명하는 게 좋겠군요. 부활은 일단 죽음을 전제합니다. 이런 죽음에서 벗어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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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지난 며칠 동안의 묵상이 본문에서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한 문장을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와 묵시문학으로 끌고 들어갔으니까요. 그 이외에도 더 많은 문제들이 그 명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묵상에서 모두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앞의 진술을 바탕에 놓고 본문과 가장 가까운 문제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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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원초적인 신앙고백이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관점은 구약의 묵시문학적인 배경입니다. 묵시문학만이 이런 우주론적 기독론의 토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구약으로는 다니엘, 에스겔, 이사야 등등의 여러 문서에서, 그리고 신약으로는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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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고백은 어제 말씀드린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가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었다, 또는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그런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를 염두에 두고 이런 고백을 했다는 건,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철학자나 물리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학자도 아닌 베드로가 그런 고상한 개념...

4월2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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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하나님의 현실을 경험하는 데에는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또는 “주는 그리스도시다.”는 명제를 우주론적 지평으로 확대하면 결국 기독교의 정체성이 훼손된다고 주장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말은 기독교 신앙이 무언지 잘 모르는데서 나오는 염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창조자’입니다. ‘전능하사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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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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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7)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하나님의 현실을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에서 모색”하는 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의 현실을 획득하는 데 중요하다는 어제의 말씀을 조금 더 보충해야겠군요. 그에 앞서 위에 언급된 ‘현실’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잠간 짚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건 기독교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랍니다. ‘하나님’도 사실 단어거든요. 그 단...

4월1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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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성화론도 아니고, 구원파도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칭의의 현실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성화론의 행동주의도 아니고 구원파의 열광주의도 아닌, 제 삼의 길은 무엇일까요? 제 삼의 길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유별나게 다른 데 있는 건 아닙니다. 기독교 정통이 말하는 데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이 말은 곧 한국교회에서 득세하고 있는 성화론과 구원파는 지난 2천년 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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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5)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 말씀드린 성화론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위 구원파가 그들입니다. 성화론자들이 칭의의 현실을 실제로 드러나는 행동에서 찾으려고 하는 반면에 구원파는 존재론적 깊이에서 찾습니다. 그들은 구원이 이미 실행, 또는 완성되었다는 사실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다만 하늘의 구원과 지상의 구원을 구별합니다. 하늘에서는 이미 완전하게 성취되었지만 지상에서는 그...

4월1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4) [10]

  • 200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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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4)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는 명제는 곧 초기 기독교의 구원론과 직결된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구원론이 바로 칭의론이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질문이 모두 정리되는 건 아닙니다. 칭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현실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칭의(justification)를 얻었다고 해서 실제로 우리가 변화되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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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4-14
  • 조회 수 1349

2008년 4월1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3)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 저는 칭의론을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또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기독교인이 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가 갈립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는 기독교인이 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겠지요. 각자가 결단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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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2)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명제는 예수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신약 성서가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롭다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실제로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죄가 없다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뿐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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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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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요즘 제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 즉 죄, 대속, 하나님, 구원 등등의 개념들이 너무 관념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위 케리그마를 구성하고 있는 이런 개념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이 세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해석하는 통로였습니다. 이 개념들은 그들에게만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을 그대로 지켜오는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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