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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4월3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7)

  • 2008-04-29
  • 조회 수 1577

2008년 4월3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7)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주는 그리스도시다.”는 명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독자들께서 이미 눈치 챘겠지만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바로 생명의 완성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 예수님이 생명의 완성자라는 뜻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우리의 생명이 왜 불완전한지를 알아야 하는데, 저는 그걸 앞에서 간단하게 짚은 것입니다. 우리는...

4월2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6) [3]

  • 2008-04-27
  • 조회 수 1685

2008년 4월2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이 세상의 생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더 설명해야겠군요. 이건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대한 작은 통찰만으로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먹어야만 합니다.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늘 식욕이 넘치는 게 아닌데도 우리는 먹어야 합니다. 이틀만 잠을 자지 않아도 우리는 견뎌 내지를 못합니다. 먹는 것과 잠만이 아니라 우리...

4월2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5) [1]

  • 2008-04-26
  • 조회 수 1385

2008년 4월2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5)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술적인 경험, 시인들의 언어경험, 철학자들의 존재경험은 세속적인 소유를 통한 경험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런 경험은 소유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지 않습니다. 배가 고파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서 우리는 소유와 다른 삶의 경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그림 그리기와 음악 연주 등을 통해서 정말 살아있다는 경험을 합니다. 지난 인류 역사는 그런 행위들을 가치가 높은 것...

4월2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4)

  • 2008-04-25
  • 조회 수 1372

2008년 4월2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4)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사실 어제 말씀드린 시인, 예술가 등등의 어떤 영적인 경험도 쉬운 게 아닙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오랜 훈련을 통해서 얻는 도의 경험이니까요. 대개의 사람들은 그런 것보다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데서 생명을 경험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소유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가장 자극적으로 확인해주는 어떤 마성적 힘입니다. 어린아이들도 인형...

4월2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3) [2]

  • 2008-04-24
  • 조회 수 1456

2008년 4월2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3)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부활과 생명 경험에 관한 어제의 묵상이 어떤 분들에게는 너무 관념적으로 들렸을 것 같군요. 또는 다 아는 이야기처럼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게 바로 언어의 한계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언어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언어 자체의 한계이기도 하고, 양 측의 전이해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족 같겠지만, 어제의 이야기를 조금 더 설명해야겠습니다. 우리는...

4월2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2)

  • 2008-04-23
  • 조회 수 1620

2008년 4월2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2)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부활은 생명 경험입니다. 주는 그리스도라는 명제의 핵심도 역시 생명입니다. 메시아는 구원자인데, 구원은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 생명의 현실이 부활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부활 현현 경험을 통해서 이제 예수가 생명의 토대라는 사실을 믿게 된 것입니다. 부활과 생명의 관계를 조금 더 설명하는 게 좋겠군요. 부활은 일단 죽음을 전제합니다. 이런 죽음에서 벗어난 사...

4월2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1) [2]

  • 2008-04-22
  • 조회 수 1344

2008년 4월2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지난 며칠 동안의 묵상이 본문에서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한 문장을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와 묵시문학으로 끌고 들어갔으니까요. 그 이외에도 더 많은 문제들이 그 명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묵상에서 모두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앞의 진술을 바탕에 놓고 본문과 가장 가까운 문제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예...

4월2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0) [4]

  • 2008-04-21
  • 조회 수 1776

2008년 4월2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원초적인 신앙고백이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관점은 구약의 묵시문학적인 배경입니다. 묵시문학만이 이런 우주론적 기독론의 토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구약으로는 다니엘, 에스겔, 이사야 등등의 여러 문서에서, 그리고 신약으로는 요...

4월2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9) [2]

  • 2008-04-20
  • 조회 수 1439

2008년 4월2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고백은 어제 말씀드린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가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었다, 또는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그런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를 염두에 두고 이런 고백을 했다는 건,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철학자나 물리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학자도 아닌 베드로가 그런 고상한 개념...

4월2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8) [3]

  • 2008-04-19
  • 조회 수 1622

2008년 4월2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하나님의 현실을 경험하는 데에는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또는 “주는 그리스도시다.”는 명제를 우주론적 지평으로 확대하면 결국 기독교의 정체성이 훼손된다고 주장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말은 기독교 신앙이 무언지 잘 모르는데서 나오는 염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창조자’입니다. ‘전능하사 천지...

4월1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7) [3]

  • 2008-04-18
  • 조회 수 1596

2008년 4월1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7)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하나님의 현실을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에서 모색”하는 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의 현실을 획득하는 데 중요하다는 어제의 말씀을 조금 더 보충해야겠군요. 그에 앞서 위에 언급된 ‘현실’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잠간 짚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건 기독교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랍니다. ‘하나님’도 사실 단어거든요. 그 단...

4월1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6) [2]

  • 2008-04-17
  • 조회 수 1556

2008년 4월1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성화론도 아니고, 구원파도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칭의의 현실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성화론의 행동주의도 아니고 구원파의 열광주의도 아닌, 제 삼의 길은 무엇일까요? 제 삼의 길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유별나게 다른 데 있는 건 아닙니다. 기독교 정통이 말하는 데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이 말은 곧 한국교회에서 득세하고 있는 성화론과 구원파는 지난 2천년 기독교 ...

4월1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5) [2]

  • 2008-04-16
  • 조회 수 1682

2008년 4월1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5)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 말씀드린 성화론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위 구원파가 그들입니다. 성화론자들이 칭의의 현실을 실제로 드러나는 행동에서 찾으려고 하는 반면에 구원파는 존재론적 깊이에서 찾습니다. 그들은 구원이 이미 실행, 또는 완성되었다는 사실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다만 하늘의 구원과 지상의 구원을 구별합니다. 하늘에서는 이미 완전하게 성취되었지만 지상에서는 그...

4월1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4) [10]

  • 2008-04-15
  • 조회 수 1962

2008년 4월1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4)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는 명제는 곧 초기 기독교의 구원론과 직결된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구원론이 바로 칭의론이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질문이 모두 정리되는 건 아닙니다. 칭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현실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칭의(justification)를 얻었다고 해서 실제로 우리가 변화되는 건 아닙니다....

4월1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3) [1]

  • 2008-04-14
  • 조회 수 1347

2008년 4월1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3)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 저는 칭의론을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또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기독교인이 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가 갈립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는 기독교인이 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겠지요. 각자가 결단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4월1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2) [1]

  • 2008-04-13
  • 조회 수 1237

2008년 4월1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2)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명제는 예수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신약 성서가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롭다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실제로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죄가 없다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뿐입니...

4월1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1) [1]

  • 2008-04-12
  • 조회 수 1277

2008년 4월1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요즘 제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 즉 죄, 대속, 하나님, 구원 등등의 개념들이 너무 관념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위 케리그마를 구성하고 있는 이런 개념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이 세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해석하는 통로였습니다. 이 개념들은 그들에게만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을 그대로 지켜오는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

4월1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0)

  • 2008-04-12
  • 조회 수 1401

2008년 4월1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사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만 본다면 그건 결코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없는 정도가 아니라 대립적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십자가 처형은 두 가지 결정적인 실체를 가리킵니다. 하나는 죽음이며, 다른 하나는 저주입니다. 구원은 이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죽음이 아니라 삶이며,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는 바로 그런 십자가 처형을 구원...

4월1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9) [2]

  • 2008-04-10
  • 조회 수 1503

2008년 4월1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명제에서 ‘예수’는 아주 명백합니다. 예수는 자연인이었던 어떤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해 있던 1세기 초반에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나 30대 초반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에 흔했던 이름인 예수로 살았습니다. 그는 아주 정상적이고 아주 평범한 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의 ...

4월1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8) [10]

  • 2008-04-09
  • 조회 수 2151

2008년 4월1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저주 받은 운명이 구원의 길로 인식된 이 맥락에 바로 기독교의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걸 놓치면 기독교의 본질을 잃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을 계승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이걸 잃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십자가가 축복의 비법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흔합니다. 예수 믿고 범사에 모든 것이 잘 된다는 기복적인 신앙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승리의 길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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