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5일 절망

조회 수 1779 추천 수 14 2008.03.04 22:59:37
2008년 3월5일 절망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막 8:4)

군중에게 먹일만한 충분한 떡을 구할 수 없다는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제 말씀드린 거짓 환상에 속을 뿐만 아니라, 그것과는 반대로 지나친 절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한국 민중들의 절망감이 표출된 것이겠지요.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밝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88만원 시대라는 말이 바로 그것을 풍자하는 것이겠지요. 서울에서 아직 집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집 마련을 절망적으로 생각할 겁니다. 이미 오래된 것이지만,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도 역시 대한민국의 교육을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 아닐는지요.
삶의 구체적인 조건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이고 내면적인 절망도 우리를 압박합니다. 제가 1980년대 초중반에 잠시 유학 공부를 하면서 경험한 유럽사회에는 간혹 이상한 사회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는 일들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직장, 가정, 이웃관계를 모두 절망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때만이 아니라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심리적 절망감에 빠져 있는 건 아닐는지요.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의식에서 그렇게 절망하고 있겠지요.  
거짓 환상에 속는 것과 절망에 빠지는 이 두 현상은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한 것처럼 착각하는 거짓 환상에 자주 접하다보면 결국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따라서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절망은 다시 거짓 환상을 찾게 만듭니다. 현대인들의 삶은 환상과 절망의 악순환에 묶여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기독교 신앙은 어떤 대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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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8]정성훈

2008.03.05 01:10:39

바닥(절망)에서 살아도 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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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이방인

2008.03.05 10:17:07

절망의 끝에 가 본 사람은 희망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대부분 절망의 언저리에 다가갈 뿐 그 끝에 서려고 하지 않는 듯 합니다. 절망의 끝에 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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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08.03.05 08:09:18

거짓 환상으로 인한 절망이라면 희망으로 이끄는 것은 믿음인가요?
거짓 환상이 아닌 믿음이라..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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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3.05 10:30:28

환상과 절망의 문제를
제가 너무 도식적으로 접근한 것 같지요?
그래도 그런 현상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모래알 님이 믿음이라는 제 3의 길을,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하셨는데,
일단 옳은 대답이지요.
문제는 그것이 거짓 환상과 어떻게 변별되는가 하는 건데요,
천천히 생각해보십시다.
좋은 하루.

[레벨:7]늘오늘

2008.03.05 11:44:43

치질이 저절로 낫기를 기대한다면,
또는 안수기도로 낫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거짓 환상입니다.
그런 사례를 간증하는 자들이 있더라도.

경쟁사회에서 발탁되는 일이,
기도만으로 가능하다거나,
기도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런 사례를 광고하는 자들이 많더라도.

몸에는 몸의 질서가 있고,
사회에는 각 시기마다 게임의 법칙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풍랑을 꾸짖는 초능력이 아니라,
바람을 이용할 돛단배를 고안, 제작하는 일입니다.
하다못해 노라도 저어, 건너가든 좌초되든 하는 일이구요.

광대한 질서의 신비가
작은 먼지 하나에까지
관통하고 있다는 착상.
믿음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신과 자연을 도구화하는 어쭙잖은 삽질을 자제하겠다는 것,
희망은 여기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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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8]정성훈

2008.03.05 14:12:06

늘오늘님... '어쭙잖은 삽질' 이 표현 너무 마음에듭니다.. 한번 웃고가네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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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1]유목민

2008.03.05 15:21:20

그래서 우리에게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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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김재남

2008.03.05 19:45:04

목사님께 말씀하시는 다른 차원의 희망,
모래알님께서 말씀하시는 일단의 믿음,
목사님의 답변처럼 어떻게 변별해 나갈 수 있는 것인지 앞으로의 큐티를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그리고 혹여나 드리는 말씀인데요, 전 목사님의 글에 딴지를 걸 나이도, 수준도 안되는 학생입니다.
목사님의 글을 통해서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차원의 희망'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냐고 물어주셨습니다.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질수록,
우리는 막막함에, 절망에 이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같은 차원'과 '다른 차원'은 결국 그것을 인지할 수 없는
자 앞에서 동일한 것 같습니다. 혹은 인지할 수 없지 않을까 합니다. 그 희망에 대해 말할 수 있음은 오로지
그 궁덩이 속에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바라는 자신을 돌아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떠올리고 생각하는 것이
'삽질'은 아닐지 사뭇 두렵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것과 '전하고 이야기하는 것'사이에는
환상과 왜곡은 끼어들 틈이 없는것인가요?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목사님, 아침과 저녁으로 아직 공기가 차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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