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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예수 어록(416) 요 21:18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 2020-09-11
  • 조회 수 1077

예수 어록(416)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내 양을 먹이라.”라는 말씀에 이어서 베드로가 겪을 고난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는 사실과 그 일을 감당하려다 보니 고난을 겪게 된다는 사실이 베드로의 운명이다. 이런 운명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가 어떤 빛을 볼 수 있을 때만 이게 가능하다. 그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운명을 더 과감하...

나의 묵시적 대파국 [2]

  • 2015-11-17
  • 조회 수 1077

11월17일 나의 묵시적 운명 나는 아직 씩씩하게 걸을 수 있다. 테니스장에 나가면 젊은 사람 못지않게 뛴다. 나는 아직 숨을 편안히 쉴 수 있다. 음식을 씹을 수 있고, 물을 마실 수 있고, 적당하게 소화시켜서 필요한 양분을 섭취하고 나머지는 배설할 수 있다. 샤워도 할 줄 알고, 양말도 내 손으로 신고, 신발도 스스로 신는다. 뭘 볼 줄도 알고 냄새를 맡을 수도 있고, 손을 만져서 촉감을 느낄 수도 있다. 생각할 줄도 알고 성경을 해석할 줄도 알며, 음악을 감상할 줄도 안다. 이렇게 일일이 열거하다보니 내가 할 줄 아는 게...

예수 어록(335) 요 15:10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2020-05-20
  • 조회 수 1076

예수 어록(335)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4:15절과 21절에 나오는 사랑과 계명의 관계가 여기 요 15:10절에 다시 나온다. 이에 앞서 요 13:34절에도 언급되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구절만 본다면 “서로 사랑”이 새 계명이다. 원칙적으로만 본다면 계명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랑은 하나님의 존재 능력이고 계명은 우리가 거기에 기대서 실천...

예수 어록(310)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2020-04-18
  • 조회 수 1076

예수 어록(310)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예수를 “사랑하면” 당연히 예수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 여기서 계명은 앞에서 새 계명이라고 언급된 “서로 사랑”(요 13:34)이다. 예수 사랑이 사랑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예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예수에게서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사랑받은 자만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단지 어떤 이를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다. 감정은 사랑의 능력에 뒤따르는 현상이지 사랑의 능력 자체는 아니다. 사랑은 삶의 능력이다. 예를 들어 바람을 통해서 삶...

거룩한 몰입

  • 2016-03-04
  • 조회 수 1076

3월4일 거룩한 몰입 나는 지난 설교의 마지막 단락에서 믿음이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즉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믿음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와 죽음을 이기게 하셨다는 사실에 몰입하는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거룩한 몰입입니다. 왜냐하면 그 몰입이 우리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살린다는 말은 죽음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예수 사건에 몰입하는 것이 왜 삶의 길인가?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말인가? 그것이 오늘 여기서 어떤 의...

예수 어록(278) 요 13:12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 2020-03-12
  • 조회 수 1075

예수 어록(278) 요 13:12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제자들의 발 씻기를 마친 뒤에 예수는 제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첫 마디는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이다. 예수는 공생애를 거쳐서 많은 말씀을 하셨다. 대상은 여럿이다. 일반 대중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시비를 걸러 온 사람들이기도 하고, 이번처럼 제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잘 알아들은 건 아니다. 오히려 알아듣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알아듣지 못하면 믿음이 생길 수 없고, 믿음이 없으면 예수를 따를 수도 없다. ...

목사 구원(120)

  • 2018-06-16
  • 조회 수 1075

(120)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 역시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또는 왜곡된 종말 표상을 연상하게 만든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주장처럼 예수가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재림하고, 그 순간에 구원받을 사람들이 공중으로 휴거되는 그림이다. 정통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종말을 절실하게 기다리는 것은 바람직하나 묵시적 진술을 사실적인 진술로 읽는다는 게 문제다. 예수가 재림한다는 게 실질적으로 무얼 가리키나?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예수 재림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슨 ...

예수 어록(075) 요 5:6 네가 낫고자 하느냐

  • 2019-03-23
  • 조회 수 1075

예수 어록(075) 요 5:6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2:13절에 예수가 유월절을 맞아 성지순례 차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 요 5:1절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는 보도가 나온다. 요 7:14절에 또 한 번 예수가 명절 중간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한다. 요 12:12절에도 예루살렘 방문 이야기가 나온다. 요한복음에는 예루살렘 방문이 공관복음에 비해서 잦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 이야기를 육하원칙에 따라서 정확하게 전하는 게 아니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변증하는 것을 목표로 집필했기에 이...

인자하심과 성실하심(4) [2]

  • 2017-12-22
  • 조회 수 1075

12월22일, 금 인자하심과 성실하심(4) 우리말 개역개정의 성실하심을 공동번역은 ‘미쁘심’으로 번역했다. 믿고 의지할만하다는 뜻이다. 루터 성경의 Treue도 비슷한 뜻이다. 시편 기자의 인생살이가 잘 풀려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들의 삶은 우리와 다를 게 없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았다.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사기도 당했고, 천재지변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신앙을 붙든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렇게 여길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어렵던 일이 해결되...

주간일지, 2022년 12월25일, 성탄절 [5]

  • 2022-12-25
  • 조회 수 1074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2년 12월25일, 성탄절 1) 구원의 보편성- 오늘 성탄 설교의 본문에 나오는 ‘온 백성에게 미칠’이라는 표현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하는 점에서 매우 주 중요합니다. 이는 곧 구원이 선택적이냐, 보편적이냐 하는 질문과 닿아 있습니다. 저는 보편성에 무게를 두는 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모든 동물과 온 우주를 구원하시리라고 말입니다. 이런 생각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자리합니다. 아마 다음과 같은 반론이 즉시 제기될 것...

예수 어록(157) 요 7:33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1]

  • 2019-07-17
  • 조회 수 1074

예수 어록(157) 요 7:33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는 공개적으로 자기 생각을 거기 모인 군중들에게 전했다. 그 내용은 유대인들의 기분을 언짢게 할 만하다. 예수는 하나님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반면에 유대인들은 모른다는 뜻으로 예수가 발언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이 예수를 결박하려고 시도했으나 동조하는 이들이 없어서 실패했다. 대부분은 예수의 말을 듣고 예수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 사실을 요 7:31절이 이렇게 전한다. “무리 ...

목사 구원(41) [2]

  • 2018-02-27
  • 조회 수 1074

(41)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의 운명에 참여한다는 말을 세상 사람들은 공허하다고 느낄 것이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예수 사건이 오늘의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니 어쩔 수 없다. 짧은 동화 방식으로 말해보겠다. 초등학교 4학년인 홍길동이라는 어린이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산다. 이혼한 어머니가 돈벌이로 타지로 나가는 바람에 역시 시골에서 혼자 사는 외할머니 댁에 온 것이다. 길동이는 할머니와 3년 살면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갑자기 비가 오면 할머니는 ...

생명의 깊이 [2]

  • 2017-05-10
  • 조회 수 1074

5월10일, 수 생명의 깊이 지난 5월7일 설교 제목은 ‘생명의 깊이’였다. 부활절 절기에 딱 들어맞는 제목이다. 부활은 생명의 깊이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부활은 기독교 용어이고, 생명의 깊이는 인문학적 용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내용적으로는 동일하다. 기독교 용어를 인문학 용어로 풀어내지 못하면 성경을 회중들에게 전할 수 없다. 설교에서 생명의 깊이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시간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개념이다. 시간은 태초와 종말이다. 우리의 생명은 태초와 종말에 연결되어 있다. 지금 우리의 몸을...

그리스도의 낮춤

  • 2017-04-11
  • 조회 수 1074

4월11일, 화 그리스도의 낮춤 지난 설교의 본문은 빌 2:5-11절이다. 그중에서 6-11절은 소위 ‘그리스도 찬송’이다. 초기 기독교에 널리 알려진 찬송이다. 찬송에는 신앙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당시 사람들에게 별로 구미가 당기는 교리가 아니다. 십자가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사건이고, 부활은 증명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선, 십자가 죽음은 바울이 고전 1:23절에서 분명하게 짚었듯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

생명의 빛 [1]

  • 2016-12-30
  • 조회 수 1074

12월30일, 금 생명의 빛 예수가 태초의 로고스라는 요한복음 기자의 진술은 예수가 창조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창조는 생명 사건이다. 예수가 창조의 근원이라는 말은 곧 예수가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를 생명의 빛이라고 말했다. 태초, 로고스, 생명, 빛이 다 통하는 성서 언어다. 요한복음 기자를 포함해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생명의 빛’으로 경험했다는 말은 예수를 통해서 생명을 파괴하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뜻이다.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 곧 생명 구원이다. 이...

예수 어록(062) 요 4:23(2)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2)

  • 2019-03-06
  • 조회 수 1074

예수 어록(062) 요 4:23(2)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2)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고, 거짓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혼의 관심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두는 사람이며, 거짓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겉으로만 하나님을 향할 뿐이지 실제로는 자기에게 몰두하는 사람이다. 이걸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

누가복음 톺아읽기 174

  • 2021-07-02
  • 조회 수 1073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174, 눅 7:18~23 세례 요한의 제자들 https://youtu.be/RMstRPAJfmA

예수 어록(218) 요 10:11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2019-12-20
  • 조회 수 1073

예수 어록(218)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가 자기 목숨을 버리고 싶어서 버린 건 아닐 것이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을 뿐이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가능하면 십자가 죽음을 피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고 고백했다. 예수의 관심은 거대한 인류 구원이 아니다. 그에게 인류 구원에 관한 소명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소박하게 자신에게...

겨울여행(2) file

  • 2019-01-23
  • 조회 수 1073

낙조 시간은 확인하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대략 3시간 30분 만에 심방 목적지인 무안 망운면 목동1길에 도착했다. 마을 회관 옆에 차를 주차시키고 김정관 백은선 집사를 불러냈다. 우선 어두워지기 전에 낙조를 보려는 판단이었다. 내가 인터넷 지도로 미리 점찍어둔 곳은 ‘조금나루 해수욕장’이다. 우리를 맞는 김 집사 부부는 오래 전부터 낙조가 아름다운 장소를 여러 군데 물색해두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일상적으로 늘 낙조를 보기에 일부러 일정한 장소를 찾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손님들에게 멋진 풍경을 보여주기 위...

북핵 문제(1)

  • 2017-09-19
  • 조회 수 1073

9월19일, 화 북핵 문제(1) 지난 13일(수) 서울을 다녀오면서 KTX에 비치된 조선일보에서 두 편의 글을 읽었다. 하나는 뇌과학계에서 나름 이름이 알려진 KAIST 김대식 교수의 글이었다. 자연과학자의 글이니 조선일보에 실렸다고 하더라도 유익할 거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과학이야기가 아니라 남북문제였다. 그는 북한을 절대악으로 전제하고 힘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기 전에 전술핵과 ‘아시아태평양 나토’라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화를 내듯이 글을 썼다. 그에게 북한은 완전히 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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