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12월21일 헛된 예배(6)

  • 2007-12-20
  • 조회 수 1886

2007년 12월21일 헛된 예배(6)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지난 5일 동안 헛된 예배에 대한 묵상을 나눴는데, 그렇다면 참된 예배는 무엇일까요? 그 대답은 헛된 예배와 반대되는 것을 찾으면 되겠지요. 헛된 예배는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참된 예배는 사람의 계명과 하나님의 계명을 구분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신앙의 본질에 천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사야의 이 발언은 인용하게 된 그 출발점으로 돌...

12월20일 헛된 예배(5) [7]

  • 2007-12-19
  • 조회 수 2040

2007년 12월20일 헛된 예배(5)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어제 저는 가르멜 산에서 벌어졌던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와의 싸움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너무 짧은 글이라서 오해가 있을지 몰라 오늘 부연해서 설명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관점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용납하지 못할 겁니다. 하나는 그의 자해 행위입니다. 칼과 창으로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린 그들의 행위는 성서의 신앙에서 볼 때 이교적인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무조건 매도할 수는 없는 이유가...

12월19일 헛된 예배(4) [1]

  • 2007-12-19
  • 조회 수 1583

2007년 12월19일 헛된 예배(4)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헛된 예배 개념을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종교현상에 관한 몇 가지 예를 들어야겠습니다. 고대 근동의 종교에서는 자극적인 종교행위를 자주 행했습니다. 그런 흔적이 구약성서에도 제법 나오는데, 아마 엘리야 전승이 가장 대표적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엘리야는 갈르멜산에서 바알 선지가 450명과 대결합니다. 엘리야를 위한 제단과 바알 선지자들을 위한 제단 위에 각각 황소 한 마리를 올려놓았습니다. 바알 ...

12월18일 헛된 예배(3) [3]

  • 2007-12-17
  • 조회 수 1955

2007년 12월18일 헛된 예배(3)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우리는 지금 이사야가 언급했고, 예수님이 인용한 헛된 예배에 관해서 묵상을 나누는 중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치는 헛된 예배는 이사야나 예수님 당시만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합니다. 하나님과의 가장 내밀하고 심층적인 영적 소통이라 할 기도가 사람들의 종교적 욕망에 부응하는 특새로 자리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제가 다른 글에서도 지적한 것...

12월17일 헛된 예배(2) [2]

  • 2007-12-16
  • 조회 수 1858

2007년 12월17일 헛된 예배(2)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저는 어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종교적 열정은 헛된 예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이며, 동시에 그것을 인용한 우리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제사를 드려도 인간의 계명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은 헛되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기도를 드렸나, 하는 것에 마음...

12월16일 헛된 예배(1) [4]

  • 2007-12-15
  • 조회 수 2040

2007년 12월16일 헛된 예배(1)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이사야는 오늘 본문에서 ‘헛된 예배’에 대해서 일침을 놓습니다. 헛된 예배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사야 당시의 제사가 너무 허술했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들이 기도를 적게 했다거나 번제물이 형편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 당시의 제사도 다른 때나 마찬가지로 최상의 제사였을 겁니다. 본문에 한정해서 본다면 사람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치는 것이 곧 헛된 예배입니다. 이 주제...

12월15일 가르침(2)

  • 2007-12-14
  • 조회 수 1534

2007년 12월15일 가르침(2)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오늘 목사들은 신앙을 가르치는 선생들입니다. 우리는 이사야의 예언처럼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오늘 교회에서 행해지는 많은 일들이 사람의 계명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일들은 모두 거룩한 것이라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요. 예배, 기도회, 찬양, 전도모임, 성경공부, 요즘 유행하고 있는 목장 모임과 각종 봉사활...

12월14일 가르침(1) [1]

  • 2007-12-14
  • 조회 수 1328

2007년 12월14일 가르침(1)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 당시 민중들을 가르치던 선생들입니다. 선생도 보통 선생이 아니라 선택받은 소수의 선생들입니다. 선생은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인용한 이사야의 오늘 본문에 따르면 그들은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바로 어제 묵상한 내용입니다. 사람의 계명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닐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

12월13일 사람의 계명 [5]

  • 2007-12-12
  • 조회 수 2127

2007년 12월13일 사람의 계명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으니라. (막 7:7) 이사야 시대나 예수님의 시대나 바로 지금이나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호도하는 일은 많은 것 같습니다. 공동번역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계명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헛된 예배입니다. 사람의 계명과 하나님의 계명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는 왜 이것을 구분해야만 할까요? 왜 우리는 사람의 ...

12월12일 입술과 마음 [3]

  • 2007-12-12
  • 조회 수 1802

2007년 12월12일 입술과 마음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막 7:6) 예수님이 인용한 이사야의 선포가 장로들의 전통과 대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더 근본적으로는 율법의 근본의미를 훼손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지적하기 위해서 이사야의 말을 인용한 것뿐입니다. 위의 본문에서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스...

12월11일 토라와 전통 [1]

  • 2007-12-10
  • 조회 수 1891

2007년 12월11일 토라와 전통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막 7:6) 예수님은 장로의 전통 운운하며 따지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이사야 29:13절을 인용해서 반론을 펴기 시작하십니다. 원칙적으로만 말한다면 이사야의 예언 앞에서 장로들의 전통은 보잘 것 없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은 유대교에서 기껏해야 2차 자료에 불과하니까요. 그런데 텐트에서 주인을 쫓아낸 당나귀라는 이솝우화처럼 토라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보...

12월10일 당신의 제자들은?

  • 2007-12-09
  • 조회 수 1482

2007년 12월10일 당신의 제자들은?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막 7:5) 본문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질문이 “당신의 제자들은?”으로 시작하는 걸 보면 예수님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켰다는 뜻일까요? 본문만으로는 그 속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 예수님은 제자들과 달리 손을 씻고 밥을 먹었을지도 모르고,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었지만 바리새인들이 ...

12월9일 씻음의 영성 [2]

  • 2007-12-08
  • 조회 수 2180

2007년 12월9일 씻음의 영성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막 7:4) 요즘 영성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다시피 사용되는 탓에 저도 오늘 말이 되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일단 씻음의 영성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바리새인과 경건한 유대인들은 유달리 씻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본문의 설명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손을 씻지 않으면 먹지도 않았고, 잔과 주발, 놋그릇을 잘 씻었다고 합니다. 물이 귀한 ...

12월8일 장로들의 전통 [4]

  • 2007-12-07
  • 조회 수 2231

2007년 12월8일 장로들의 전통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막 7:3) 손 씻는 장로의 전통은 위생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유대인들의 지혜입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모든 전통은 지혜의 축적입니다. 세속적인 전통도 그렇고, 종교적인 전통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옛 선조들이 지키던 삼강오륜이라는 전통이 오늘 우리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조상시대에는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제사전통도 역시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

12월7일 부정한 손 [4]

  • 2007-12-06
  • 조회 수 2068

2007년 12월7일 부정한 손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막 7:2)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몇 사람이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본문이 설명하는 대로 부정한다는 말은 손을 씻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유대의 정결의식에 따르면 밖에서 돌아오거나 밥을 먹기 전에 물로 손을 씻어야만 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의 파키스탄이나 인도 사람들처럼 손으로 밥을 먹었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손이 아니라 포크를 사용...

12월6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3) [3]

  • 2007-12-05
  • 조회 수 1786

2007년 12월6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3)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막 7: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더 정확하게는 그들을 파송한 예루살렘의 유대교 수뇌부가 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요? 이런 문제를 꼼꼼히 살피려면 그 당시의 종교와 정치상황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짧은 묵상에서는 그렇게 긴 호흡으로 생각을 나눌 수는 없겠지요. 간략하게 진도를 나가더라도 양해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유대교와 충돌했다는 것이 위의...

12월5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2) [1]

  • 2007-12-04
  • 조회 수 1598

2007년 12월4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2)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막 7:1) 어제 저는 마가복음이 기록되던 시기의 교회가 바리새파에게 가졌던 적대감이 마가복음의 진술에도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가복음 기자가 없는 말을 지어낸 건 아닙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는 못했습니다. 한쪽에서 아무리 선의로 대하더라도 다른 쪽에서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12월4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1)

  • 2007-12-03
  • 조회 수 1759

2007년 12월4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막 7:1) 오병이어와 호수에서의 사건을 급한 필치로 보도한 후 한 호흡 쉬어가듯이 예수님의 활동을 스케치한(6:53-56) 마가복음 기자는 이제 7장에서 다시 논쟁적인 구조로 글쓰기의 속도를 낸다. 그 시작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내려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등장이다. 복음서기자가 묘사하고 있는 바리새인은 악명이 높다. 교만하고 음흉하고 비판적이고 논쟁적이며, 또한 비굴하기까지 하다. 서기관들도 역시 비...

12월3일 치유의 능력(3)

  • 2007-12-02
  • 조회 수 1712

2007년 12월3일 치유의 능력(3)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막 6:56) 신앙의 걸음걸이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저의 말을 오해하지는 마세요. 제가 이미 장성한 사람처럼 마음대로 걷고 달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신앙의 깊이로 들어간 것처럼 느끼는 순간에 느닷없이 유치한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어리석은 행동도 합니다. 영적으로 깊은 경지에 들어...

12월2일 치유의 능력(2) [4]

  • 2007-12-01
  • 조회 수 1720

2007년 12월2일 치유의 능력(2)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막 6:56) 저는 어제 전인적 치유가 곧 영적 치유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영’ 혹은 ‘영적’이라는 말은 교회에서 아주 흔하게 사용됩니다. “박 아무개 집사님은 영적인 분이야.”라거나 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의 행위를 영적이라고 표현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영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사실이 그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