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죽는다(9)

조회 수 1041 추천 수 0 2015.10.16 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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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죽는다(9)

 

직접적으로 나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런 질문은 추상적이다. 어떤 식으로 대답해도 말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안 될 수도 있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먼저 말하는 게 옳을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죽을 준비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도 애매하다. 보통은 할 일을 다 마치는 것이 죽을 준비로 여긴다. 좁게는 자식을 키우는 일, 크게는 사회와 국가를 위한 일, 또는 학문적이거나 예술적인 업적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걸 죽을 준비라 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을 해봤자 별로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죽을 준비는 말 그대로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의 강도는 서로 다르겠지만 이걸 완전히 해결한 사람은 없다. 죽는 순간까지 여전히 살아보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노력에 따라서 두려움이 크게 줄어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20미터 높이에서 그 아래 물속으로 뛰어내리는 훈련이 있다고 하자. 처음 그런 장면을 대한 사람은 진땀을 흘릴 것이며, 스스로는 안 되고 옆에서 조교가 떼밀어야만 겨우 뛰어내릴 수 있다. 그러나 적당한 반복 훈련을 하면 좀더 높은 곳에서도 뛰어내릴 수 있다. 죽는 준비도 이와 같다. 죽는 연습을 반복하는 게 최선이다.

기독교 신앙은 죽는 연습이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첫 번 의식은 세례다. 세례는 예수와 함께 죽고 그와 더불어 죽는 의식이다.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어야만 신앙이 깊어지면, 그래야만 죽음 앞에서의 두려움도 줄어든다. 기독교인들이 세례의 영성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와 더불어서 죽고 사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구약읽기도 죽는 연습의 일환이다. 욥은 14:13, 17:13, 16절에서 차라리 스올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스올은 고대 유대인들이 죽은 자가 가게 되는 곳으로 생각한 지하 세계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욥이 스올을 희망한 이유는 살아있음이 죽음보다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의 욥에게는 스올로 들어가는 게 구원이다. 스올에서는 친구들의 조롱을 더 이상 받지 않을 수 있다. 조롱으로부터의 해방이 일어난다. 그것이 안식이다. 고대 유대인들에게 스올이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되긴 했지만, 파편적이나마 안식 개념이 거기에 들어있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사실을 아는 것도 죽음을 준비하는 훈련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내일이라도 시한부 췌장암 선고를 받는다면 그런 운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의 내 대답은 별 의미 없다. 그건 닥쳐봐야 확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내가 죽음 앞에서 버텨낼 수 있는 버팀목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기독교 신앙을 죽음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여전히 희망할 수 있는 빛의 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지금 나에게 최선은 죽음이 닥치는 그 순간까지 기독교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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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잠자는회색늑대

2015.10.17 05:44:42

죽음을 목전에 두고 어머니가 하나님을 외치셨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이제 한달 조금 넘었는데, 너무 멀리있다 보니 임종을 지키지 못했죠. 고인은 분명 육신의 질고로 고통 중에 계셨을텐데, 끝까지 신앙의 중심을 잃지 않으셨다는게 귀감이 됩니다. 달리 순교가 아닌거 같습니다. 힘을 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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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10.17 08:43:19

모친상을 당하셨군요.

늦게나마 조의를 표합니다.

모든 유족들에게 성령의 위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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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잠자는회색늑대

2015.10.17 18:16:34

감사합니다. 글을 통해 많은 위로를 얻습니다.
늘 마음으로 나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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