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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샘터교회의 매월 첫째 주일 예배는 성찬예식과 함께 진행된다. 성찬예식의 질료는 일반적인 사물에 불과한 빵과 포도주이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세계는 구원의 깊이만큼 놀랍고 새롭고 신비롭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는 그것의 깊이를 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뚫어보는 것이 영성이고, 구원의 힘이고, 하나님 나라와의 공명이다.
나는 성찬식을 집행하면서 빵과 포도주의 근원을 늘 생각한다. 평소에 익숙했던 빵이 갑자기 낯설게 다가온다. 정물에 불과하지만 살아서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빛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빵의 근원은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과거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밀이 자라는 풍경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밀이 대량 생산되지 않으니 호주나 뉴질랜드나 미국이나 캐나다를 생각하는 게 좋다. 햇빛을 받고 물기를 빨아들이면서 밀은 자란다. 바람이 밀에게는 엄마 품이다. 달과 별은 둘도 없는 친구다. 밀밭 위로 많은 곤충과 새들이 날아다닌다. 비와 안개와 구름도 밀의 이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은 지구 생명의 원초적인 힘이다. 인간보다 훨씬 전부터 지구에 존재했고, 인간보다 훨씬 나중까지 지구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빵과 포도주의 이런 깊이를 실질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성찬의 빵을 향한 외경의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빵에는 또 하나의 다른 깊이가 들어 있다. 밀이 자란다고 해서 그것이 곧 빵이 되는 건 아니다. 밀을 타작하는 사람들, 그걸 말려서 가루로 만드는 사람들, 밀가루를 이곳저곳에 배분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밀가루로 빵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다.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힘은 효소에 있다. 작은 미생물이 마지막 빵이 만들어지는 순간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교회에서 성찬식을 집행할 수 있도록 빵을 구입하여 성찬상에 배설하는 교인의 역할도 역시 중요하다. 이 모든 과정은 우리가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서 그렇지 영혼의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면 빵 한 조각도 신비 중의 신비다. 오죽했으면 하이데거가 사물을 땅과 하늘과 신성들과 사멸할 자들의 회집이라고 했겠는가. 그럴 정도로 낯설고 신비롭다는 뜻이다. 익숙한 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아주 낯선 대상으로 경험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바쳐야할 거룩한 행위인 예배의 중심으로 시나브로 깊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걸 아는 사람은 기쁨으로 예배에 참여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천주교 미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순서가 40가지나 되는 것도 놀랍고 매번 성찬식을 하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우리는 빵과 포도주를 '상징'이라고 하지만 천주교에서는 그것이 진짜로 '곧 예수의 피와 살이다' ‘화체설’(化體說)라며 신부가 500원짜리 동전만한 '빵'을 직접 혓바닥에 붙여 주는데 뭘로 만들었는지 10초만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없어지더라구요(뻥튀기 비슷한 재료?) 진짜로 예수님의 살이 내 몸이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였습니다.
아주 낯선 성찬 경험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