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5일 치유

조회 수 1336 추천 수 17 2007.06.25 09:17:54
2007년 6월25일  치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막 6:13)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을 파송할 때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현상들은 제자들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도 제자들을 통해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복음서에서 이런 일들은 드뭅니다. 대개는 예수님이 직접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십니다. 예수님이 앞으로 제자들만 남았을 때를 위해서 미리 준비시키신 걸까요? 아니면 초기 기독교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예수님의 공생애로 편입된 것일까요? 이런 문제는 역사비평의 차원이니까 여기서는 일단 접어두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경우이었든지 중요한 것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 더 나아가서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치유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냈다는 말은 정신적으로 치유가 일어났다는 뜻이고,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다는 것도 역시 육체적으로 치유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종말론적 메시아 공동체인 교회에는 지금도 치유가 일어나야만 하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의 몸과 사회와 생태에서 치유가 일어나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 해야겠지요. 밥을 나누어 먹는 것도 일종의 치유입니다. 가장 궁극적인 치유는 영적인 것이겠지요. 영적인 것은 곧 생명(삶)을 가리킵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다시 그것을 찾는 일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치유를 일으키는 공동체입니다. 영의 치유는 심리학이나 윤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치유되는 가장 궁극적인 길입니다. 그것이 단지 정보의 차원이 아니라 실질의 차원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구원공동체로 자리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레벨:1]하깃

2007.06.26 10:48:40

가열차게 동의하고 동감하고 지지하나이다!

공동체 서로의 일상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예민한 사랑의 촉수를 세우고 깨어있을 때
치유는 가능하겠지요.

구원의 실질이 혼동되는 교회의 타락은
이미 서로를 고쳐내고 회복할 수 없는 무능함을 스스로 드러낼 뿐입니다 .
치유는 회복의 다른 말이니까요.
첫 창조의 온전함으로 회복되어가는 것이 구원이요, 치유일 것입니다.

영성치유가 유행처럼 맴도는 요즈음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명에 접목되어
그 생명의 권세로 살아가게 하는 치유가 아니라면
심리적이고 현상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레벨:0]chunsa1052

2007.06.26 08:15:53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영적 치유....오늘 지금 이순간 다비안 식구들과 저의 영적 치유가 되는 시간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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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15일 민중과 예수 (1)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막 6:33) 본문의 보도를 그대로 따른다면, 예수님 일행이 한적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을 눈치 챈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예수님 일행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배를 탄 사람보다 걷는 사람이 빨리 도착했다는 게 모순이긴 하지만, 마가복음 기자는 그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건 예수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전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본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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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0일 헤로디아의 분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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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8일 헤롯의 근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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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8일 헤롯의 근심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막 6:26) 헤롯은 헤로디아의 딸이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요. 아마 거기에 모였던 그 어떤 사람도 그걸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헤롯은 지금 어디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외통수에 걸린 셈입니다. 요한을 죽인다는 건 양심을 땅에 묻는 일이며, 뭐든지 주겠다는 자신의 말을 거두어들인다는 왕의 체통이 구겨지는 일입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일구이언의 모습을 보일 수는 ...

7월7일 헤로디아의 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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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6일 헤로디아의 야심 그가 곧 와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막 6:25)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서 이 춤꾼 소녀는 헤롯에서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말했습니다. 헤로디아는 단순히 세례 요한의 머리라고 했는데, 딸은 ‘소반에 얹어’ 달라고 약간 틀어서 말했습니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해도 좋겠군요. 앞에서도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듯이 이게 과연 정확한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 단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상황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잘 잡...

7월6일 헤로디아의 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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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6일 헤로디아의 야심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막 6:24) 춤꾼 소녀는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원래는 큰 아버지였다가 이제는 새 아버지가 된 헤롯 안티파스의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는데, 무얼 구할까요? 헤로디아의 대답입니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헤로디아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이미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이 일은 헤로디아의 연출인가요? 그 내막이야 누가 알겠습니까만 딸에게 대뜸 세례 요한...

7월5일 헤롯의 허풍

  • 2007-07-05
  • 조회 수 1179

2007년 7월5일 헤롯의 허풍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막 6:23) 헤롯은 22절에 이어서 23절에서도 춤추는 헤로디아의 딸에게 뭐든지 구하라고 맹세합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마가복음의 설명에 따르면 헤롯의 조카인데, 헤롯이 헤로디아와 결혼했으니 이제는 헤롯의 딸이 되었습니다. 그 소녀의 춤이 거기 모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휩싸인 헤롯은 이 소녀에게 거듭해서 청을 들어주겠다고 큰 소리쳤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헤롯의 성품이 경솔하다는 것...

7월4일 춤꾼 소녀

  • 2007-07-04
  • 조회 수 1258

2007년 7월4일 헤롯의 생일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막 6:22) 마가복음 기자가 끌어가는 이 이야기는 이 대목부터 속도가 붙습니다. 헤로디가의 딸이 직접 춤을 추었다고 하네요. 이 장면에서 독자들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낌새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공주는 이렇게 대중 앞에서 춤을 출 수 없었다고 하네요. 어떤 성서학자는 헤로디아의 딸이 ...

7월3일 헤롯의 생일

  • 200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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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3일 헤롯의 생일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 새(막 6:21) 헤롯 안티파스는 생일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즐거운 날입니다. 더구나 헤롯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한 지역에서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으니 생일잔치가 얼마나 거나하게 준비되었을지는 불을 보듯 훤합니다. 먹을거리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이겠고, 요염한 무희들의 춤과 노래가 흥을 돋웠겠지요. 연극배우들도 데려왔을지 모릅니다. 사실 생일잔치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이...

7월2일 헤롯의 번민

  • 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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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2일 헤롯의 번민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막 6:20) 마가복음 기자는 19절에서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 싶어 한 헤로디아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20절에서 헤롯이 요한의 말을 옳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헤롯이 요한의 생명을 보호했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해석이 과연 역사적 진실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당시에 요한으로 인해 헤롯과 헤로디아의 입장이나 관계가 아...

7월1일 헤로디아의 원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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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1일 헤로디아의 원한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못한 것은(막 6:19) 요한을 원수로 여긴 사람은 헤롯 안티파스가 아니라 헤로디아라는 게 마가복음 기자의 입장입니다.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마태복음 기자와는 미묘한 입장의 차이를 보입니다. 사건의 전개과정을 따라가면 마태복음에서도 헤로디아가 요한의 죽음에 깊이 연루되지만 마가복음처럼 초장부터 원수 운운은 없습니다. 어쨌든지 강도의 차이는 보이지만 두 복음서 모두 요한이 죽게 되는 원인을 헤로디아에게서 찾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

6월30일 요한의 비판 [4]

  • 2007-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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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30일 요한의 비판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막 6:18) 헤롯 안티파스가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둔 이유는 요한이 헤롯의 재혼을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에 왕왕 이루어지던 황실의 비정상적인 혼인에 대해서 당시 최고의 영적 권위를 확보하고 있던 요한이 비판했으니, 헤롯의 기분이 놓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헤롯의 행위가 어느 정도로 부도덕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2천 년 전 그 당시의 황실에서 일어나던 관행들을 오늘의 잣대로 판단하기는 힘...

6월29일 헤롯, 헤로디아, 요한

  • 2007-06-29
  • 조회 수 1645

2007년 6월29일 헤롯, 헤로디아, 요한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막 6:17) 헤롯 안티파스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았다는 사실은 유대인 로마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의 역사기록에도 나오는 사실입니다. 동생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은 것은 아니고 동생이 죽은 다음에 정식으로 아내로 맞은 겁니다. 그런 것이 정력적인 결혼에 익숙했던 왕궁의 관습으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민중들의 정서에는 맞지 ...

6월28일 헤롯의 양심

  • 2007-06-27
  • 조회 수 1336

2007년 6월28일 헤롯의 양심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을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막 6:16)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헤롯은 예수님을 세례요한의 환생으로 생각했습니다. 요한을 죽인 사건이 그의 양심을 찌르고 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려한다거나 뺨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고 때린 사람은 오므리고 잔다는 옛말이 헤롯에게 그대로 적중되는 것 같군요. 물론 양심이 늘 이렇게 바르게 작동되는 건 아닙니다.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은 어떤 일을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드뭅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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