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1일 바람이 그치다.(4)

조회 수 1743 추천 수 5 2007.11.20 23:27:26
2007년 11월21일 바람이 그치다.(4)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 6:51)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바람인지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살이의 구체적인 어려움을 가리킬까요? 물론 그런 것들은 평범한 우리가 감당하기가 어려운 짐들입니다. 그런 문제들로 인해서 우리의 삶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그런 구체적인 어려움들이 해결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말씀을 한번 짚은 게 좋겠군요. 이 말씀은 인생살이에서 당하는 짐을 예수님이 해결해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예수님에게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실제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 무거운 짐은 오히려 종교적인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교의 종교적인 짐이 민중들의 삶을 지치게 했거든요. 예수님은 아무런 종교적 짐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길은 우리의 수고가 아니라 회개만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자연마저 굴복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위를 설명하고 있는 이 본문을 굳이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의 영혼을 피곤하게 하는 악한 힘들이 잠잠해진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 악한 힘은 외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내부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근본적으로 피곤하게 만드는 자기집중, 자기연민이 악한 힘입니다. 그 악한 힘을 제어할 수 있는 길은 우리의 인격이나 의지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가 우리 인생의 배에 오르시면 거친 바람이 그친다는 말씀은 옳습니다.

[레벨:0]求道者

2007.11.21 01:47:35

아멘!
인생살이에서 만나는 바람과 거친 파도.....
등에 지고 가야 할 짐의 무게는 사실 별 것 아닌 것 같아요.
그것들은 강한 의지와 인내로 버터낼 수도 있으니까요.

돌아보니,
그리고 지금도....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이 드는군요.
나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려는 악한 힘들,
그것들과의 전투에서 패하지 않고자
오늘도 주님의 도우심과 긍휼을 구합니다.

[레벨:2]런너

2007.11.21 10:43:46

늘 목사님의 풀어주시는 말씀이 제겐 힘이됩니다.
현실을 참고 인내 할 수 있는....
문득 제가 자람을 느낄수도 있고...
감사합니다.
오늘도 아자 아자,,,,^------------------^

[레벨:0]불꽃남자

2007.11.21 17:15:24

자기집중, 자기연민,,,자기사랑
하나님을 바라봄에 있어서
하나님을 복을 받기 위한 수단적인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은연듯 내재되어 있는
증거가 자기집중, 자기중심적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루하루 생각을 하며, 스스로의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할 필요성을 새삼느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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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2]자유의꿈

2007.11.21 17:36:53

우리영혼을 피곤하게 만드는 악한 힘,
자기 집중, 자기연민...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데 공감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profile

[레벨:23]모래알

2007.11.21 23:18:35

제자들은 왜 폭풍 가운데 있었을까
왜 맞바람을 맞으면서도 강건너로 가야 했을까
왜 뒤돌아가지 않았을까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
그 모든 질문들에 분명한 정답을 만날 날을 기대하며
매일 묵상 참 좋습니다. 목사님.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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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11.21 23:43:53

성구묵상에 대해서 한 마디.
신학은 텍스트의 해석이랍니다.
그 텍스트는 성서를 비롯해서
지난 기독교 2천동안 생성된 수많은 신앙적, 신학적 문서들이지요.
그중에도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성서에요.
성서와 다른 문서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늘 말씀드리지 않겠어요.
성서해석이란 무엇일까요?
이 해석이 무언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전혀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이게 무언지 빨리 감을 잡는 게 핵심이에요.
저는 이 묵상에서 가장 정확한 해석을 제시할 자신이 없답니다.
영적 경지가 한참이나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소경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에요.
그래도 이렇게 발버둥치듯이 성구와 씨름하는 이유는
독자들에게 성서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그 성서의 세계는 바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나님은 그 세계에, 또는 그 역사에서
자신을 계시하는 분이니까요.
그 세계 안에 드러난 구원 사건이 곧 하나님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성서 앞에 서면 정신이 아득해진답니다.
높고 깊은 산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이요.
모든 분들께 말씀의 영이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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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9일 씻음의 영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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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9일 씻음의 영성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막 7:4) 요즘 영성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다시피 사용되는 탓에 저도 오늘 말이 되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일단 씻음의 영성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바리새인과 경건한 유대인들은 유달리 씻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본문의 설명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손을 씻지 않으면 먹지도 않았고, 잔과 주발, 놋그릇을 잘 씻었다고 합니다. 물이 귀한 ...

12월8일 장로들의 전통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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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8일 장로들의 전통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막 7:3) 손 씻는 장로의 전통은 위생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유대인들의 지혜입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모든 전통은 지혜의 축적입니다. 세속적인 전통도 그렇고, 종교적인 전통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옛 선조들이 지키던 삼강오륜이라는 전통이 오늘 우리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조상시대에는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제사전통도 역시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

12월7일 부정한 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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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7일 부정한 손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막 7:2)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몇 사람이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본문이 설명하는 대로 부정한다는 말은 손을 씻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유대의 정결의식에 따르면 밖에서 돌아오거나 밥을 먹기 전에 물로 손을 씻어야만 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의 파키스탄이나 인도 사람들처럼 손으로 밥을 먹었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손이 아니라 포크를 사용...

12월6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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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6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3)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막 7: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더 정확하게는 그들을 파송한 예루살렘의 유대교 수뇌부가 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요? 이런 문제를 꼼꼼히 살피려면 그 당시의 종교와 정치상황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짧은 묵상에서는 그렇게 긴 호흡으로 생각을 나눌 수는 없겠지요. 간략하게 진도를 나가더라도 양해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유대교와 충돌했다는 것이 위의...

12월5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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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4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2)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막 7:1) 어제 저는 마가복음이 기록되던 시기의 교회가 바리새파에게 가졌던 적대감이 마가복음의 진술에도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가복음 기자가 없는 말을 지어낸 건 아닙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는 못했습니다. 한쪽에서 아무리 선의로 대하더라도 다른 쪽에서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12월4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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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4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막 7:1) 오병이어와 호수에서의 사건을 급한 필치로 보도한 후 한 호흡 쉬어가듯이 예수님의 활동을 스케치한(6:53-56) 마가복음 기자는 이제 7장에서 다시 논쟁적인 구조로 글쓰기의 속도를 낸다. 그 시작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내려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등장이다. 복음서기자가 묘사하고 있는 바리새인은 악명이 높다. 교만하고 음흉하고 비판적이고 논쟁적이며, 또한 비굴하기까지 하다. 서기관들도 역시 비...

12월3일 치유의 능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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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3일 치유의 능력(3)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막 6:56) 신앙의 걸음걸이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저의 말을 오해하지는 마세요. 제가 이미 장성한 사람처럼 마음대로 걷고 달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신앙의 깊이로 들어간 것처럼 느끼는 순간에 느닷없이 유치한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어리석은 행동도 합니다. 영적으로 깊은 경지에 들어...

12월2일 치유의 능력(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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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2일 치유의 능력(2)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막 6:56) 저는 어제 전인적 치유가 곧 영적 치유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영’ 혹은 ‘영적’이라는 말은 교회에서 아주 흔하게 사용됩니다. “박 아무개 집사님은 영적인 분이야.”라거나 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의 행위를 영적이라고 표현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영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사실이 그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

12월1일 치유의 능력(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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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1일 치유의 능력(1)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막 6:56) 사도행전 5:15절에도 오늘 본문과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침대와 요 위에 누인 병자를 예루살렘 거리로 데리고 나와 베드로가 지날 때 그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이런 보도를 단지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사도들이 예수님보다 훨씬 더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유한 셈입니다. 마가복음에서 병자들은...

11월30일 병든 자들

  •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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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30일 병든 자들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막 6:55)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 채로 들고 왔다고 합니다. 침상 채로 들고 왔다는 말은 병자들의 병이 아주 깊었다는 뜻이겠지요. 난치병, 불치병을 안고 산다는 건 오늘처럼 의학이 발달한 시대에도 벅찬 일인데, 2천 년 전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복음서에 예수님의 치병 이야기가 왜 그렇게 많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또는 반대로 예수님이 병자...

11월29일 게네사렛 땅에서 [1]

  • 2007-11-28
  • 조회 수 3076

2007년 11월29일 게네사렛 땅에서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막 6:53,54) 풍랑으로 고생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풍랑이 그친 뒤 게네사렛 호수 서안의 게네사렛 지역에 배를 대고 배에서 내렸습니다. 팔레스틴의 북쪽 지역을 크게 갈릴리라고 하는데, 오른편에 큼지막한 호수가 있습니다. 그 호수를 갈릴리 호수, 또는 게네사렛 호수라고 합니다. 그 호수가 없었다면 팔레스틴 문명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게네사렛 호수에서 발원해서 남쪽 사해에 이르는 강을 요단강이라고 합...

11월28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7)

  • 200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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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28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7)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어제 묵상의 마지막 대목에 나온 ‘구원의 현실’이라는 말을 보충해서 설명해야겠군요. 구원이면 구원이지 구원의 현실이 뭐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구원의 문제를 더 엄밀하게 규정하려면 이런 언어 조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현실(reality of God)이라는 말도 역시 똑같습니다. 하나님으로 충분하기는 하지만 그 하나님을 더 엄밀하게 규정하기 위해서 하...

11월27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6) [2]

  • 200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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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27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6)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졌다.”는 마가복음 기자의 진술은 아마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일어난 신앙적 위기를 내포하는 게 아닐는지요. 2천 년 전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사도행전만 보면 복음이 일사천리로 전파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교회가 계속 유지되지 못할 수도 있는 위기가 계속되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

11월26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5) [3]

  • 200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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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26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5)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우리는 어떻게 자기염려, 자기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마음의 경직을 피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는 사실 기독교보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더 세밀합니다. 불교는 근본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거든요. 그들에게 집착을 없애는 것, 즉 멸집(滅執)이 가장 핵심적인 공부입니다. 멸집에 이르는 깨우침을 돈오(頓悟)라고 하는데,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멸도(滅道: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수행)를 행합니...

11월25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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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25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4)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여러분들은 어떤 순간에 마음이 둔해지시나요? 제 경우를 말한다면 나 자신에게 집착하는 순간이 바로 그렇습니다. 나 자신에게 집착한다는 것은 곧 나에 대한 염려입니다. 염려하지 않는다면 집착할 필요가 없겠지요. 자신을 염려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둔해지면서 글쓰기나 설교 중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집니다. 나에 대한 염려가 결국은 나를 파괴하는 지름길인 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일 일을 ...

11월24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3) [4]

  • 200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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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24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3)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성서해석이 하나님 경험에 이르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에게 이르는 가장 바람직한 길의 하나라는 말은 곧 언어가 담지하고 있는 존재론적 능력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성서라는 언어의 세계를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사실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결코 완벽한 해석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할 ...

11월23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2) [2]

  • 2007-11-22
  • 조회 수 1535

2007년 11월23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진 이유는 오병이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의 표징인데, 그것은 곧 하나님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의 온갖 걱정거리로 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둔해진 마음은 현재 하나님의 통치를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시나브로 악순...

11월22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1) [4]

  • 200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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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22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1)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예수님이 물위를 걸은 이 사건 앞에서 보인 제자들이 모습에 대해서 마가복음 기자는 비판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앞서 일어났던 오병이어 사건에 나타난 예수님의 메시아적 능력을 깨닫지 못했다고, 결국 마음이 둔해진 것이라도 말입니다. 이런 보도를 읽는 오늘 우리는 제자들을 이상한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직전에 오병이어를 경험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호수에서의 사건을 ...

11월21일 바람이 그치다.(4) [6]

  • 200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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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21일 바람이 그치다.(4)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 6:51)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바람인지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살이의 구체적인 어려움을 가리킬까요? 물론 그런 것들은 평범한 우리가 감당하기가 어려운 짐들입니다. 그런 문제들로 인해서 우리의 삶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그런 구체적인 어려움들이 해결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

11월20일 바람이 그치다.(3) [3]

  • 200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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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20일 바람이 그치다.(3)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 6:51) 오늘 우리는 바람이 그쳤다는 이 진술의 신앙적 의미를 짚으려고 합니다. 일종의 적용입니다. 성서읽기에서 적용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대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그래도 가끔은 한 두 마디를 해도 좋겠지요. 묵상에서 삶의 현실들을 찾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가 봅시다. 호수 위에서 바람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와 꼭 닮은 것 같습니다. 호수 건너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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