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1일 놀라움 (1)

조회 수 1226 추천 수 15 2007.05.31 07:18:00
2007년 5월31일  놀라움 (1)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녀가 일어나서 걷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반복해서 놀랐다고 하는군요. 놀라움은 성서 전체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복음서만이 아니라 구약성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전승에 대한 공부의 한 대목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이 공부는 오늘 저녁에 있을 서울오프 모임을 위해서 준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보다는 그가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실이 이 대목에서 관건이다. 개역은 “경외한다.”고 했으며, 루터는 “두려워한다.”고 번역했다. 성서 언어가 가리키고 있는 경외, 또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일은 고대인들의 언어인 ‘루아흐’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장엄한 자연 앞에서 외경을 경험하기도 하고, 역사의 오묘함 앞에서도 그런 걸 느끼고, 때로는 철학적 사유의 깊이에서도 그걸 경험할 때가 있다. 오늘 본문이 지시하는 경외가 종교 일반에서 말하는, 예컨대 루돌프 오토의 누미노제 같은 경험인지 아닌지는 학자들에 따라서 약간 씩 다르게 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성서는 종교일반이 말하는 그런 종교적 현상에 머물지 않고, 즉 자연종교에 머물지 않고 아주 독특한 인격적인 하나님 경험에 닿아있다. 아브라함의 외경을 단순한 종교적 차원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폰 라트의 입장을 따르는 게 좋을 듯하다. 어쨌든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이다. 이 두려움은 곧 놀라움이기도 하다. 생명의 현재와 미래를 한 손에 쥐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 놀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놀라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전혀 민감하지 않거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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