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6일 귀신들린 사람 (22)

조회 수 1431 추천 수 21 2007.04.26 08:32:26
2007년 4월26일 귀신들린 사람 (22)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막 5:18)

이곳을 떠나라는 마을 사람들의 요구를 듣고 예수님이 무슨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성서는 일절 말이 없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곳을 떠나라는 말이오, 내가 어디를 가든지 그건 내 자유이니 상관 마시오, 하면서 옥신각신했는지, 아니면 발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내면서 똥이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고 말씀하셨을까요? 아니면 오늘 성서본문의 묘사처럼 한 마디 말씀도 없이 그냥 타고 오셨던 배에 다시 오르셨을까요?
예수님은 경우에 따라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심문을 당하실 때 지나칠 정도로 말이 없으셨습니다.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던 빌라도는 자기를 전혀 변명하지 않는 예수님을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각론보다는 총론이 중요했기 때문이겠지요.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에 적대적인 일이 아니라면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소통의 단절이나 부재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 게 지혜로울까요? 아주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굳이 맞서 싸우거나 대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옳은 주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자꾸 맞서 싸우다가는 문제의 핵심은 어디론가 실종되고 본질적이지 않은 사태로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교회는 국가(정부)가 하나님의 나라에 순종하도록 경고하고 권면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과 헤게모니 싸움에 빠져들 수는 없습니다. 바울이 로마 정권과 극한적으로 대립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고, 루터가 농민전쟁을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늘 타협하는 게 능사는 아니겠지요. 싸울 때와 물러설 때를 분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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