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5 죽음과 잠 (2)

조회 수 1422 추천 수 39 2007.05.24 23:25:29
2007년 5월25  죽음과 잠 (2)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막 5:39)

야이로의 딸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하는 말씀에 근거해서 본다면 이 사실이 더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도 떠들며 울었을 것입니다. 물론 복음서 기자들은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선생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그 슬픔과 절망의 무게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복음서가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서 놀라우리만큼 침묵하는 이유는 복음서 기자의 관심이 오직 예수님에게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사건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일이 아니면 과감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성서기자들의 글쓰기 스타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관해 서술할 때도 철저하게 절제미를 발휘했습니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감정은 생략하고, 그의 행동과 가르침과 그의 운명만 담담하게 따라갔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왜 이렇게 떠들며 우는가? 사람이 때에 따라서 떠들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사태의 진면목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떠드는 것이 문제겠지요.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선정적인 데에 마음을 쏟고 사니까 그렇다 치고, 교회 신자들마저 공연한 일에 떠들어 댄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닐는지요.
지난 노무현 정부 아래서 한국교회는 참으로 많이 떠들었습니다. 노 정권이 자신을 박해한다고 주장합니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입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떠들고,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서 영락교회당 안에서 삭발투쟁을 했습니다. 무엇이 문제라고 그렇게 떠들고 우는 소리를 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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