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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6일 오병이어 (73)

  • 2007-10-05
  • 조회 수 1345

2007년 10월6일 오병이어 (73)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기독교 신앙을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좋겠습니다.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성서, 계시, 그리고 창조와 종말과 칭의가 무언지 낱말 뜻으로만 알지 실제로는 모릅니다. 그들의 관심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순전히 교회생활입니다. 제가 지금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들보다 제가 많은 걸 안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신...

10월5일 오병이어 (72) [5]

  • 2007-10-04
  • 조회 수 1524

2007년 10월5일 오병이어 (72)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교회 지도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모른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차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이지요. 속인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런 속임수가 잘 통합니다. 기도를 적당하게 하고, 헌금도 남부끄럽지 않게 낼 줄 알고, 주일학교 ...

10월5일 오병이어 (72) [5]

  • 2007-10-04
  • 조회 수 1448

2007년 10월5일 오병이어 (72)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교회 지도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모른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차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이지요. 속인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런 속임수가 잘 통합니다. 기도를 적당하게 하고, 헌금도 남부끄럽지 않게 낼 줄 알고, 주일학교 ...

10월4일 오병이어 (71) [2]

  • 2007-10-03
  • 조회 수 1329

2007년 10월4일 오병이어 (71)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신앙과 일상이 분리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중의 가장 핵심적인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몰이해입니다. 이해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냐,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신앙에 관한 이해가 실제 일상 안으로 들어가려면 오랜 동안의 훈련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 이해의 결정적인 순간을, 즉 큰 깨우침인 돈오(頓悟)의 순간을 경험해야 하...

10월4일 오병이어 (71) [2]

  • 2007-10-03
  • 조회 수 1279

2007년 10월4일 오병이어 (71)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신앙과 일상이 분리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중의 가장 핵심적인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몰이해입니다. 이해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냐,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신앙에 관한 이해가 실제 일상 안으로 들어가려면 오랜 동안의 훈련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 이해의 결정적인 순간을, 즉 큰 깨우침인 돈오(頓悟)의 순간을 경험해야 하...

10월3일 오병이어 (70) [3]

  • 2007-10-02
  • 조회 수 1556

2007년 10월3일 오병이어 (70) -오병이어와 일상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이제 우리는 본문이 전하는 오병이어 사건이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질문할 차례입니다. 아무리 귀한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일상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현실성이 떨어져서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비록 초월적인 현실을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일상을 방기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종교보다도 일상을 중요...

10월2일 오병이어 (69) [3]

  • 2007-10-01
  • 조회 수 2147

2007년 10월2일 오병이어 (69)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어제 저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기는 일은 메시아에게서만 가능한 사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메시아에게서 일어나는 사건을 초자연적 기적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적으로 초보에 속한 사람들만 그런데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은 사과의 껍질을 혀로 핥은 것에 불과합니다. 메시아 경험은 전혀 다른 생명과의 접촉이기 때문에 많은 걸 소유하고 많...

10월1일 오병이어 (68) [2]

  • 2007-09-30
  • 조회 수 1434

2007년 10월1일 오병이어 (68)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마르크시즘만이 아니라 마르크시즘과 대립하고 있는 자본주의도 역시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자본주의가 표면적으로는 유물론을 거부하는 것 같지만 내면적인 작동기제는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을 조금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게 사실이라는 게 드러납니다. 마르크시즘과 자본주의의 차이점은 소위 ‘파이’ 분배냐, 키우기냐에 있습...

9월30일 오병이어 (67) [2]

  • 2007-09-29
  • 조회 수 1506

2007년 9월30일 오병이어 (67)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인류 역사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완성되어 인민이 노동의 소외로부터 해방되고 모두가 배부른 시대가 온다는, 따라서 그런 역사 발전을 위해서 계급투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마르크시즘은 부분적으로 옳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틀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저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사회과학을 설명하거나 마르크스의 주장을 무조건 배척하려는 게 아닙니다. 노동해방과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마...

9월29일 오병이어 (66)

  • 2007-09-28
  • 조회 수 1618

2007년 9월29일 오병이어 (66)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었다는 말은 모두가 만족스러웠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이 오늘 우리에게 실제로 가능할까요? 여기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였던 학자라고 한다면 칼 마르크스가 아닐는지요. 그는 사람이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것만큼 가져가는 사회를 내다보았는데, 이런 사회라고 한다면 분명히 모두가 배부르다는 말에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사회가 이 땅에 하루라도 ...

9월28일 오병이어 (65) [7]

  • 2007-09-28
  • 조회 수 1862

2007년 9월28일 오병이어 (65)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어떤 점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교회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당을 건축하는 일은 가능한 일입니다. 불치병 환자가 치료되는 일도 따지고 보면 가능한 일입니다. 교회 밖에서도 자연치유는 많이 일어납니다. 교회에서 일어나야 할 기적은 무엇일까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일치’입니다. 세상에서 일치는 불가능합니다. 회사끼리의 경...

9월27일 오병이어 (64)

  • 2007-09-26
  • 조회 수 1583

2007년 9월27일 오병이어 (64)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오병이어로 많은 사람들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나 남았습니다. 이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로 바뀐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분명히 기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무엇인 참된 기적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자연 질서가 쉽게 허물어지는 기적보다는 그 자연 질서 안에서 일어나는 참된 기적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것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에게...

9월26일 오병이어 (63)

  • 2007-09-25
  • 조회 수 1497

2007년 9월26일 오병이어 (6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오병이어가 열두 바구니나 남았다고 합니다. 오병이어는 한 바구니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반 바구니나 될는지요. 그런데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실컷 먹고도 원래보다 스무 배나 많이 남았다니,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예수님이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킨 게 분명한 게 아니냐, 하고 주장하실 분들이 계시겠지요. 그런 주장을 제가 무조건 거부할 생각은 전혀 없...

9월25일 오병이어 (62) [1]

  • 2007-09-24
  • 조회 수 1591

2007년 9월25일 오병이어 (62)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것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나 되었다고 합니다. 열두, 오천이라는 숫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성서기자가 이런 숫자를 제시하면서 이 사건을 보도하는 이유는 이 사건이 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간접적으로 어떤 신앙적 의미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은 먹을거리가 열두 바구니이며, 먹은 사람의 숫자가 남자만 5천명이라는 4...

9월24일 오병이어 (61) [1]

  • 2007-09-23
  • 조회 수 1700

2007년 9월24일 오병이어 (61)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사람이 밥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모세의 말이 그렇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어제의 설명을 오늘 조금 더 보충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삶의 안정감은 대개 밥에서 주어집니다. 이건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무도 밥을 먹지 않고 살아갈 사람은 없으니까요. 여기서 밥은 우리가 성취해내려는 모든 삶의 안전장치를 가리킵니다. 사회적인 지위, 건강, 가족 등등이 우리를 배부르게 하는 밥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 것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 스스로 자족하게 되...

9월23일 오병이어 (60)

  • 2007-09-22
  • 조회 수 1437

2007년 9월23일 오병이어 (60)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사람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주님의 대답을 더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은 예수님의 독창적인 말씀이 아니라 신명기 8:3절의 인용입니다. 신명기는 출애굽 이후 40년에 이르는 광야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마지막으로 행산 연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세의 유언인 셈이지요. 신 8:3절에서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만나를 주신 이유는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걸 알게 하기 위한 ...

9월22일 오병이어 (59)

  • 2007-09-21
  • 조회 수 1398

2007년 9월22일 오병이어 (59)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어제의 묵상에서 우리는 돌을 떡으로 만들어보라는 사탄의 요구를 짚었습니다. 그런 요구는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의 메시아 상도 역시 여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과 그런 이데올로기가 메시아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기독교는 이런 세상의 메시아니즘과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우리의 메시야니즘이 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사탄의 유혹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

9월21일 오병이어 (58) [1]

  • 2007-09-20
  • 조회 수 1505

2007년 9월21일 오병이어 (58)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어제의 묵상에서 인용한 판넨베르크의 글에 예수님이 공생애 직전에 당하신 사탄의 유혹 사건이 나옵니다. 마가복음(1:12,13)은 그런 일이 있었다고 간단히 전달하고 말지만 마태복음(4:1-11)과 누가복음(4:1-13)은 세 가지 유혹에 관해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중의 한 가지가 바로 오병이어와 연관된 빵과 생명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이 사십일 동안 밥을 먹지 않고 지내신 후에 사탄이 예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

9월20일 오병이어 (57) [1]

  • 2007-09-19
  • 조회 수 1423

2007년 9월20일 오병이어 (57)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아래는 판넨베르크의 설교 “생명의 밥”의 한 대목입니다. 1974년12월 뮌헨 마르쿠스 교회에서 드린 대학예배의 설교입니다. 생명의 밥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을 배부르게 하고 삶의 조건들을 향상시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돌을 빵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예수님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구원자로 축하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사탄의 유혹보다 더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사실상 인간의 위기와...

9월19일 오병이어 (56) [4]

  • 2007-09-18
  • 조회 수 1302

2007년 9월19일 오병이어 (56)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의 밥이라고 설명한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에서 참된 생명을 경험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죽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생명질서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런 세상의 생명질서와 전혀 다른 생명을 예수님에게서 경험했습니다. 죽음으로 끝나게 될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달리 예수님이 그 죽음으로부터 죽지 않을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다는 경험입니다. 바로 이 부활 생명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이며, 첫 부활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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