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8일 땅 (5)

조회 수 1280 추천 수 38 2007.02.28 08:05:34
2007년 2월28일 땅 (5)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는 본문 말씀은 설교행위에 관해서도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서는 청중들과의 만남에서 스스로 청중들의 영성을 키워냅니다. 설교자는 단지 씨를 뿌릴 뿐이고 성령이 그들을 변화시킵니다. 청중들의 생명 사건에서 설교자는 무능력합니다.
이런 걸 모르는 설교자는 자신들이 신자들을 변화시킬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일이 모든 걸 가르칩니다. 헌금, 예배출석, 봉사, 선교, 기도, 심지어 방언 까지 가르칩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신자들의 신앙과 삶이 조금이라도 건전하게, 더 나아가서 모범적으로 변화된다면 좋겠지요. 실제로 그런 변화가 많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설교자들이 계몽적인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변화는 별로 본질적인 게 아닙니다. 제가 여러 번 언급했지만 그건 상식이고 교양입니다. 상식적이고 교양적인 사람으로 된다는 게 참된 변화는 아닙니다. 그래도 그런 변화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지 않느냐, 하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교양의 변화는 오히려 존재의 변화를 가로 막습니다. 무늬와 포장에 만족하다보면 결국 실질의 변화에 관심을 잃게 됩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교양이 무의미하다거나 사람의 참된 변화가 전혀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의 변화는 생명과 연관되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설교자가 아니라 생명의 영이 일으키는 사건입니다. 설교자는 신자들의 삶을 자신의 수준에 맞추어 억지로 변화시킬 생각을 말고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좋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존재론적으로 담지하고 있는 성서는 스스로 사람들의 참된 생명을 자라게 합니다.

[레벨:23]브니엘남

2007.02.28 10:43:25

변화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내적인 신진대사의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으로(엡 3:8) 우리 전 존재 안으로 조성해 넣으신다. 그러면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된다(엡 4:22-23). 이러한 변화는 밖의 표현뿐 아니라 내적 본성의 변화까지도 일으킨다. 그러한 과정의 결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다(고후 3:18). 즉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맏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될 것이다(롬 8:29). 이러한 변화의 기초는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롬 12;2). 생각을 새롭게 함이 바로 회개이다.

변화에 대한 예를 환자를 통해서 들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병이 들어서 얼굴이 보리 고개에 누렇게 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1. 화장: 회칠한 무덤 같음
2. 약 복용: 그 병을 약을 통해 고침, 얼굴이 본 얼굴 아니 더 좋은 말고 깨끗한 얼굴로 돌아옴
화장이 옳을까요 약복용이 옳을까요.

그러므로 변화란 외적인 바뀜이나 바르게함이나 조정이 아니라 우리의 타고난 본성이 신진대사적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낡은 어떤 것이 버려지고 새로운 어떤 것이 더해지는 세포내 과정이 변화인 것 같이 영적인 변화도 역시 그렇다.

변화(transformation)는 헬라어로 ‘metamorpheo’인데 이 단어에서 변태란 영어 ‘metamorphosis’가 나왔다. 변화의 헬라어 '메타모르페오'는 변태 즉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문에 羽化登仙이란 말이 잇다. 인간이라는 번데기를 벗고 신선의 나비날개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뱀과 바닷가재와 매미 등이 변태를 이룬다.

우리의 변화는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러야 한다.(고후 3:18). 즉 영광의 한 단계에서 또 다른 단계로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탈피하지 못한 뱀은 죽는다"는 말과 같이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죽어 간다. 뱀은 동면을 할 때 그 허물에 상처가 있으면 동면후 허물을 벗지 못하므로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이와같이 우리의 영적인 삶도 허물과 죄로 죽으면 영적인 삶이 점점 죽어가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성서는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하고 있는 것이다(마 24;12, 25:13, 26;18 벧전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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