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친근하게 느끼고 있기에 하나님 경험이 근본적으로 낯선 경험이라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을 친근하게 느끼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성경에는 그런 표현들이 종종 나온다.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넘치는 분이라고, 우리를 찾아와서 말을 걸고 사명을 맡기는 분이라고 말이다. 하나님 경험에 그런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은 아니다. 그런 성격들은 하나님이 선한 존재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지 하나님 경험 자체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낯섦을 우리는 일상에서 어떻게 경험하고 있을까? 다시 말해두지만 낯설다는 경험은 거룩하다는 경험과 같다. 낯선 경험과 거룩하다는 경험의 대상은 어떤 일부에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의 깊이에 들어 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스랍들을 경험했지만 강과 산과 사막에서도 스랍들을 경험할 수 있다. 나무와 꽃이 스랍이며, 아침 안개와 구름이 스랍이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을 유심히 보면 낯설지 않은 게 없다. 즉 거룩하지 않은 게 없다. 시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그런 걸 잘 살피면서 놀라워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이다. 이시영 시인의 시집 『사이』에서 겨우 3행으로 된 시 ‘저 잎새 하나’를 읽어보겠다.
나뭇잎 하나에도 신의 강렬한 입김은 스며
바람 불지 않아도 저 잎새 밤새도록 찬란히
은빛 등을 뒤집고 있으니
시인이게는 나뭇잎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 그것 자체가 낯설고 거룩해서 신의 입김이 스며들었다고 본 것이다. 사물에 대한 이런 시각이 없이 우리는 성경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생각할 줄 아는, 그래서 세상을 새롭게 경험하는 신자들이 목사들의 상투적인 설교에서 아무런 영적 감동을 느끼지 않는 현상은 안타깝지만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