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23일 고귀한 낭비(1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14:9)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의 결론이 바로 위 구절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이 여인의 일도 기억되어야 한다는 것은 복음과 이 여인의 행위가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정도의 수준에서 제자들의 행위를 인정한 적이 있을까요? 제 기억으로는 없습니다.
복음과 이 여인의 행위가 일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복음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값없이 구원하신다는 사실이 바로 복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원이 우리의 노력에 의한 보상이 아니라 그분의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다 알고 있는 말이지만 아주 쉽게 까먹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여인은 향유를 통해서 상징적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여인은 인류에게 선물로 주어진 구원의 실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여인의 행위는 복음 선포와 똑같습니다. 제자들보다 먼저 복음의 깊이로 들어갔으며, 그 복음을 위해서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낭비했습니다.
우리의 소유와 우리의 삶은 무엇인가를 위해서 낭비될 것입니다. 조금 실제적으로 말씀드릴까요? 우리는 곧 죽습니다. 죽음은 우리가 평생에 걸쳐서 쌓거나 이룬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낭비가 어디 있을까요?
우리의 낭비는 구원을 위한 것이어야겠지요. 이런 말이 너무 뻔한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보다 더 실질적인 말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와 삶이 오직 이 한 가지로 투자되어야 합니다. 헌금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위한 것이라면 모든 것이 낭비되어도 좋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향한 향유의 부음은 앞으로 닥칠 예수님의 고난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위한 준비인가요?
아니면 단순히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의 고귀한 낭비인가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후,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굴로 갔다는 복음서를 보면 아직까지는 부활의 예수님에 대해 깊은 이해는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 전적으로 들어갔다고 하는 가정에서 이 여인의 행위는 고난의 주님을 예시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를 품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