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에 대한 기억

조회 수 2486 추천 수 0 2013.08.27 23:23:11

8월27일(화)

 

빌라도에 대한 기억

 

사도신경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돌리는 대목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유대교 지도자들과 빌라도 총독 모두에게 문는다. 복음서의 문맥으로 보면 유대교 지도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 총독 빌라도에게는 비교적 우호적이다. 이에 반해서 사도신경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아예 묻지도 않는다. 실체적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사도신경과 초기 기독교 전반적인 전통에서 본다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없다. 만약 유대교가 예수님의 죽음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면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와 처음부터 단절했을 것이다. 더구나 구약성경도 배척했어만 했다. 초기 기독교는 계속해서 유대교 전통 안에 머물러 있었으면 그들이 결정한 경전 서른일곱 권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복음서가 이야기 형태로 전하고 있는 것처럼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돌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것이 초기 기독교의 실체적 진실이 아니겠는가.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 아무런 충돌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문제는 여기서 다 설명하기 힘드니 넘어가자.


기독교 신앙의 요약이라 할 사도신경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본디오 빌라도에게 묻는다는 것은 로마 제국에 대한 입장 천명이다. 그 죽음의 방법인 십자가도 곧 로마 제국의 형벌이었다. 초기 기독교는 당시 로마 황제에게 붙여진 호칭인 ‘퀴리오스’(주)를 예수님에게 붙였다. 그들이 그렇게 로마 제국과의 충돌로 보일 수밖에 없는 태도를 취한 이유는 제국의 우상 숭배적 경향 때문이었다. 실제로 로마 황제들은 자신들의 신상을 곳곳에 세워놓고 경배하도록 강요했다. 그것을 통해서 전체 제국의 일치를 도모하려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다가 순교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신경을 통해서 제국의 적(敵)그리스도적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알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른 한편으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런 입장과 어긋나 보인다. 당시의 기독교는 가능한 로마 제국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로마 제국으로부터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일종의 정교(政敎)일치의 시작이었다. 이를 포스트 아우구스투스라고 한다. 그 이전까지 로마와 대립하던 기독교가 아우구스투스 이후로 친밀한 관계로 나갔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도신경은 변하지 않았다. 기독교 예배가 드려지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도신경이 암송되었다. 그것을 로마 제국은 불편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기독교는 왜 서로 모순되는 태도를 취한 것일까?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기독교는 한편으로는 로마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립적인 관계를 놓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본질에 충실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초기 기독교의 이러한 태도는 오늘의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가와 일부러 충돌할 필요는 없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면서 동시에 세속 국가의 백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절대 권력은 우상숭배를 요구한다. 예배 공동체인 교회는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국가의 자기 절대화를 경계했다. 오늘 한국교회는 어떤가?

<'월간목회'에 연재하는 원고에 들어갈 내용 중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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