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4일 백배의 은총

조회 수 1680 추천 수 25 2007.02.14 08:04:19
2007년 2월14일 백배의 은총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 4:20)

20절 말씀은 8절 말씀의 반복입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무슨 이유로 이 비유를 반복하고 있을까요? 1-8절과 13-20절은 거의 똑같은 내용의 반복입니다. 앞 구절의 내용은 단순한 비유이고 뒤 구절은 그것에 대한 해명이라고 하지만 독자들의 눈에는 그런 차이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기껏 해봐야 ‘씨’가 ‘말씀’으로 바뀐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몇 단어가 첨가될 뿐입니다. 8절과 20절 말씀도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양쪽 모두 좋은 땅에 떨어져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합니다. 씨를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긴 구절을 똑같이 반복한다는 것은 조금 이상합니다.
저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문제는 신약학자들의 몫이겠지요. 개인적인 상상력으로 한 마디 한다면, 씨와 말씀이라는 이 비교가 그 당시에 매우 중요하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말씀은 곧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에도 말씀인 로고스는 빛이신 예수님을 가리켰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어도 반복적으로 설명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비유에는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가복음 공동체만의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지 좋은 땅에 뿌려진 씨, 곧 말씀이 놀라운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습니다. 복음에는 바로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속된 표현으로 복음은 ‘로또’입니다. 모험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비슷합니다. 물론 복음은 진정한 의미에서 모험이지만 로또는 요행에 불과하겠지요. 복음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씨 하나로 백 알을 얻듯이 우리에게 생명의 풍요로움을 허락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미 오늘 우리의 삶에는 그런 풍요로움의 은총이 담겨있습니다. 백배의 은총!

[레벨:0]복음자랑

2007.02.14 08:46:37

요한복음의 로고스가 빛이신 예수님을 가르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 로고스가 개역 성경과 같이 '말씀'으로 번역되어 위와 같이 연결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로고스는 중보자라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데요.

그리고 이 비유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이 일차적으로 예수님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제자들, 교회로 확장되는 것은 당연하고요.

또한 백배의 은총이란 '좋은 땅'을 전제하고 있음도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좋은 땅'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그 믿음은 현재적이고요.
즉 현재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백배의 은총에 전제되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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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02.15 00:39:00

복음자랑 님,
로고스가 중보자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군요.
멀리 돌아가면 그렇게도 가능하겠지요.
파라클레토스는 곧 예수님이 보내시는 영이시니까요.
그러나 말씀이라는 번역이 옳습니다.
헬라어 자체의 의미이기도 하고
말씀으로 창조한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에서도 옳습니다.
매튜 폭스는 로고스와 다바르를 창조능력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의견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아니라 제자들이고,
씨가 바로 예수님이지요.
이거야 비유니까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긴 합니다.
감사.

[레벨:0]복음자랑

2007.02.15 10:06:18

로고스가 중보자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은 멀리 돌아가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대의 로고스가 철학 용어로서 그 의미는 중보자이니까요.
절대자와 현상 세계를 매개하는 존재로서, 그리고 인간에게 부여된 이성으로서.
그 로고스에 상응하는 구약 용어가 잠언의 지혜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요.

그리고 씨뿌리는 비유에서 씨뿌리는 이는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맞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자체가 지금 씨를 뿌리고 계시는 것이니까요.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이 밭이고요.

물론 계시 역사의 진행을 따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심 이후에는 그 밭이 온 세상으로 확장되고
제자들과 사도 바울 나아가 교회를 통하여 말씀이 전파되는 것이 역시 씨를 뿌리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비유는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비유로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곧 새 시대를 알리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성령님께서는 그렇게 제자들에게 알려진 예수님과 새 시대를 우리에게 알리시고자 그것을 기록하여 전하여지도록 하셨고요.

복음서의 모든 내용은 일차적으로 예수님 자신에 대한 예수님 자신의 증거입니다.

[레벨:23]브니엘남

2007.02.17 10:43:49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씨뿌리는 자는 예수님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마 13장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는 "천국은 ~과 같으니"라는 말씀이 없는데 가라지 비유에서 부터 "천국은 ~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주님께서 씨를 뿌리고 난 후에 천국인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씨뿌리는 자는 주님 자신이십니다(마 13:37).

씨도 말씀이기도 하고 (마 13;39, 벧전 1;23), 하나님의 씨(요일 3:9) 즉 하나님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골 3:4)가 그 안에 생명으로 들어 있는 천국 말씀 이기도 하고(요 12:24, 마 13:19) 또한 천국의 아들들인 우리들이기도 하다(마 13;38). 즉 세 가지 천국의 말씀과 천국의 아들들과 씨 안에 있는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 이 셋은 분리될 수 없다. 천국의 말씀은 사실상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결국 씨뿌리는 자도 씨도 다 주님 자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씨는 나서 자란다고 말씀하십니다(막 3:27). 주님은 천국이 자랄 수 잇도록 생명의 씨이신 주님 자신을 민든 이들 안으로 뿌려서 천국을 수립하십니다.

씨의 자람은 고전 3;6-9절에 나와 있고 씨의 자람의 결국인 추수는 계14:14-15절에 나와 있습니다. 결국 씨는 자라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와 새예루살렘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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