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1일, 토
생명 집중
지난 설교에서 나는 농경사회로 뒤돌아갈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영적인 금식을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생명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 무엇인지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바로 이 대목부터 또 한편의 설교가 필요했다. 생명에 집중하는 것을 설교했었어야만 했다. 한 번의 설교에서 모든 것을 전할 수 없으니 비약적으로 들려도 어쩔 수 없다. 도대체 생명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을 철학적이고 신학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한이 없다. 그냥 상식적으로 보자. 생명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 있으려면 숨을 쉬어야 하고 먹어야 한다. 그리고 가족을 꾸려야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살기 위한 것이다. 우리에게 문제는 삶 자체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먹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무엇을 얼마나 더 멋있게 먹느냐에 마음을 두는 것과 먹는 것 자체에 마음을 두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생명에 집중한다는 것은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먹는 것에 치중하는 삶의 태도다.
살아있다는 것은 단지 숨 쉬고 먹는 것으로 다 해명되는 게 아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살아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극단적인 예로 마약에 취해 있는 사람을 살아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거와 같다.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평화와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할 것이다.
한걸음 더 나가서 우리는 다 죽는다. 세상에서의 생명이 언젠가는, 아니 곧 끝장난다. 기독교인은 죽음으로 생명이 끝장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오히려 삶의 완성이다. 이런 문제는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더 이상 언급하지는 말자.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죽음 너머의 삶도 오늘 여기서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 분명히 하면 된다.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한다. 이런 것에 집중하는 사람은 생명을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