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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2월2일 들을 귀 (5) [6]

  • 2007-02-02
  • 조회 수 1581

2007년 2월2일 들을 귀 (5)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막 4:9)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즉 생명의 원초적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기존에 익숙했던 생각과 습관들을 떨어내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들에 의해서 길들여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종교적인 부분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제가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사람들이 어떤 체제, 규범, 이념에 절대적으로 길들여지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직관하고 살아낼 만한 토대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

2월1일 들을 귀 (4)

  • 2007-02-01
  • 조회 수 1624

2007년 2월1일 들을 귀 (4)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막 4:9)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조금 냉정하게 들립니다. 알아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좀더 자세하게, 좀더 구체적으로, 좀더 열정적으로 가르치지는 못할망정 들을 귀 운운할 게 뭐란 말입니까? 천천해 생각해봅시다. 서로 말귀를 못 알아들을 때 무작정 붙들고 매달리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다툼만 일어납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서로 말꼬리 잡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더 이상의 대화는 무...

1월31일 들을 귀 (3) [2]

  • 2007-01-31
  • 조회 수 1503

2007년 1월31일 들을 귀 (3)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막 4:9) 저는 위대한 작곡가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작곡자에게는 먼저 듣는 귀가 있을 겁니다. 그들은 어떤 소리를 듣고 그것을 악보에 적어 넣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귀에 들린 건 분명히 소리 자체는 아니었겠지요. 실제의 소리는 아니지만 실제의 소리처럼 그들은 무언가를 들었을 겁니다. 사...

1월30일 들을 귀 (2)

  • 2007-01-30
  • 조회 수 1405

2007년 1월30일 들을 귀 (2)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막 4:9) “들을 귀”가 있다는 건 곧 듣지 못하는 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귀를 갖고 있는데 듣기도 하고 듣지 못하기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다. 또는 사람은 자기가 관심이 있는 것만을 듣는다. 오랜 만에 친척들이 거실에 모여서 시끄럽게 이야기하면서 놀고 있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갑자가 젊은 엄마가 갑자기 작은 방으로 달려갑니다. 왜 그랬는지 아시겠...

1월29일 들을 귀 (1) [3]

  • 2007-01-29
  • 조회 수 1893

2007년 1월29일 들을 귀 (1)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막 4:9) 예수님이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자체만은 알아듣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에 떨어진 씨의 운명이 제각각 달랐다는 말은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들을 귀 운운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복잡한 게 아닙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그 내용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것을 엉뚱하게 적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납니다. 이 비유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만은 길가...

1월28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3) [2]

  • 2007-01-28
  • 조회 수 1603

2007년 1월28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3)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며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막 4:8) 제가 사는 하양에는 노점상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좋은 땅’이라고 생각되는 한분을 말씀드려야겠군요. 그분은 나이가 쉰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분인데, 다리근처에서 과일 노점상을 합니다. 10년 전쯤 저희가 하양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집사람이 그분에게서 과일을 사면서 막내딸에게 입힐 초등학교 운동복을 어디서 살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자기 딸이...

1월27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2) [1]

  • 2007-01-27
  • 조회 수 1377

2007년 1월27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2)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며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막 4:8) 본문이 가리키는 좋은 땅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동일한 복음을 들었는데도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강도가 다른 걸 보면 마음의 밭이 다르다는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음의 밭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우선 좋은 인격과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의 목회경험을 통해서 보더라도 신자들의 인격이 중요하더군요. 원만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

1월26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1)

  • 2007-01-26
  • 조회 수 1580

2007년 1월26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1)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며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막 4:8) 씨가 아무리 좋아도 땅이 나쁘면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다행히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수십 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합니다. 땅이 중요합니다. 생명을 키울 수 있는 옥토 말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한국 기독교 전체로 넓혀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복음의 좋은 씨는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기독교는 좋은 밭인가요, 아닌가요? 여기에 생명의 씨가 뿌리...

1월25일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 [3]

  • 2007-01-25
  • 조회 수 1943

2007년 1월25일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막 4:7) 어떤 씨들은 가시떨기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가시가 자라서 생명의 기운을 막았고, 결국 이 씨는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했습니다. 본문 말씀에 의하면 씨가 결실을 맺으려면 생명의 기운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서 생명의 기운은 이미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영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운이 가시떨기로 인해서 막힐 수 있다고 하는군요. 성령도 우리의 삶에서 독단적으로 ...

1월24일 돌밭에 떨어진 씨 (2) [3]

  • 2007-01-24
  • 조회 수 1404

2007년 1월24일 돌밭에 떨어진 씨 (2)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막 4:6)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났지만 뿌리가 햇빛에 타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햇빛은 양날을 가진 칼과 같습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생명을 파괴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식물에 한정해서 본다면, 뿌리를 흙에 내리고 있는 식물에게는 햇빛이 생명의 근원이지만 뿌리가 없는 식물에게는 죽음의 힘입니다. 신앙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하나님 경험’입니다. 젊은 연인들의 사랑도 그들이 함께 나눈 경험에 의해서 풍...

1월23일 돌밭에 떨어진 씨 (1) [2]

  • 2007-01-23
  • 조회 수 1820

2007년 1월23일 돌밭에 떨어진 씨 (1)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이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막 4:5) 돌밭에 떨어진 말씀의 씨도 있었습니다. 이 씨는 잠시 뿌리를 내리긴 했지만 온전한 생명으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식물의 생명을 지탱시켜주는 흙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돌과 흙의 차이가 무엇인지 제가 지질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습니다. 상식적의 차원에서 말씀드린다면, 돌과 흙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물기와 미생물인 것 같습니다. 돌에는 물기도 없고 미생물도 ...

1월22일 길가에 떨어진 씨 [4]

  • 2007-01-22
  • 조회 수 1766

2007년 1월22일 길가에 떨어진 씨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막 4:4) 예수님의 이 비유에 등장하는 농부는 전문적인 농사꾼이 못 되는가 봅니다. 그가 뿌린 씨 중에서 길가에 떨어진 것들이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흙을 부드럽게 쟁기질을 한 다음에 씨가 들어갈 구멍을 만들어서 그곳에 정확하게 씨를 뿌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쩌면 고대 유대인들의 농사 방법이 제 상식과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한 겨리의 소가 고랑을 내고, 씨 뿌리는 사람은 뒤 따라가면서 손으로 대충 휙휙 뿌리다 보면 길가...

1월21일 씨 (9)

  • 2007-01-21
  • 조회 수 1434

2007년 1월21일 씨 (9)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를 주제로 한 이 대목의 큐티가 너무 분산되는 느낌이 있군요. 오늘로 이 대목을 끝내야겠습니다. 성서가 은폐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사건을 청중들에게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전문적인 해석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제 짚었는데, 한 마디만 보충하겠습니다. 원래 해석학이라는 낱말은 헬라신화 ‘헤르메스’(hermes)에서 왔습니다. 제우스의 말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메신저인 헤르메스는 신의 말을 인간의 말로 번역, 통역, 해석해야만 합니다....

1월20일 씨 (8) [2]

  • 2007-01-20
  • 조회 수 1480

2007년 1월20일 씨 (8)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예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씨의 영적인 의미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어떤 결실을 맺는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말씀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선 성서를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문자에 한정되는 건 아닙니다. 이미 계시 사건이 있으며, 선포도 있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큰 의미에서 말씀입니다. 근본적으로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이기...

1월19일 씨 (7) [6]

  • 2007-01-19
  • 조회 수 1612

2007년 1월19일 씨 (7)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민들레꽃을 볼 때마다 우주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구는 민들레홀씨의 작은 알맹이이고요. 지구라는 씨 안에서 온갖 생명체가 활발하게 약동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완전한 생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잠시 지구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집니다. 그 어떤 것도 여기서 예외가 없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완전한 생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닐는지요. 우리...

1월18일 씨 (6) [2]

  • 2007-01-18
  • 조회 수 1557

2007년 1월18일 씨 (6)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저는 어제 인간과 나무는 왜 이런 모양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저는 인생의 연륜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그런 것들이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말로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믿음이 좋은 게 아니라 단순한 겁니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에서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무조건 믿...

1월17일 씨 (5) [1]

  • 2007-01-17
  • 조회 수 1229

2007년 1월17일 씨 (5)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는 땅에 들어가야만 생명으로 변화됩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에서 생명의 비밀을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깨닫는다 하여도 그 깨달음이 우리의 삶을 실제로 추동해나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성자, 도사, 진인 등으로 부릅니다. 어쨌든지, 씨가 땅속에 묻히면 무엇으로 변화합니다. 그런 현상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썩는다고 표현합니다. 썩는다는 말은 우리에게 별로 좋은 느낌...

1월16일 씨 (4) [3]

  • 2007-01-16
  • 조회 수 1446

2007년 1월16일 씨 (4)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는 그 안에 생명을 은폐의 방식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볼까요? 나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미래에 씨 안으로의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수억 만분의 일보다 작은 로봇을 만들어서 씨앗의 세계를 여행하면 무엇이 보일까요? 안타깝지만 거기서 잎이나 꽃과 비슷한 그 무엇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열매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씨 속에는 탄수화물, 단백질, 아주 적은 양의 물 등등, 그리고 식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들어있겠...

1월15일 씨 (3)

  • 2007-01-15
  • 조회 수 1439

2007년 1월15일 씨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여기 농부의 손바닥에 볍씨 한 알이 놓여있다고 합시다. 그 농부는 지금 우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셈입니다. 씨는 곧 우주와 동일한 존재의 차원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있다.”는 사실과 나락 한 알이 “있다.”는 말은 존재론적으로 똑같은 무게입니다. “없다”의 반대는 “있다.”입니다. 우주도 있고, 나락 한 알도 있습니다. “있다.”, 즉 존재한다는 차원에서 이 둘은 똑같습니다. 이런 게 말장난처럼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그는 아직 존재의 차원에 대...

1월14일 씨 (2) [3]

  • 2007-01-14
  • 조회 수 1276

2007년 1월14일 씨 (2)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 뿌리는 행위가 곧 예배라는 어제의 말을 뒤집으면, 예배는 곧 씨 뿌리는 행위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철저하게 자연에 깃든 생명의 능력을 의지하듯이 예배도 역시 철저하게 자신과 구별되는 영에 의존합니다. 그 영은 아버지의 영이고 아들의 영인 성령입니다. 우리가 흔하게 들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예배의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예배의 주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물론 형식적으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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