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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5월27일- 영성과 소유 (1)

  • 2006-05-27
  • 조회 수 2523

2006년 5월27일 영성과 소유 (1)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막 1:20) 본문의 상황 설명을 근거로 추정해본다면, 야고보와 요한은 경제적으로 꽤 괜찮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 품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물론 이 본문만으로 아버지가 선주이고 그 밑에 여러 명의 품꾼을 쓸 정도로 넉넉한 집안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마가복음 기자가 시몬 형제의 소명 장면에서는 단순히 그물을 버렸다고만 묘사한 것에 비해서 여...

신학공부(4) [2]

  • 2014-02-13
  • 조회 수 2524

신학공부(4) 어제 묵상의 끝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에 오해가 있을까 해서 오늘 보충 설명하겠다. 우리 인생과 천국 경험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간혹 ‘천국에 다녀왔다.’는 식의 간증이나 그 유으 책들이 한국 기독교계에 유행을 타는 경우가 있다. 천국에 가서 무엇을 보고 왔다는 식이다. 그걸 무슨 특권처럼 떠벌리고, 청중들은 그런 이들의 말에 혹한다. 그런 건 장사꾼의 상투적인 수단이다. 마태복음이 말하는 천국은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이다. 그냥 쉽게 하나님 나라라고...

5월29일 ‘어록’1(2) [1]

  • 2008-05-28
  • 조회 수 2525

2008년 5월29일 ‘어록’1(2)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른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했다든지, 예수님을 뒤따라 산다는 말을 자주 들었겠지만 그런 신앙의 사태 안으로 들어가는 건 그렇게 간단하게 아닙니다. 왜 그런지 일단 ...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12) [3]

  • 2011-02-04
  • 조회 수 2525

사도들은 ‘역사적 예수’나 ‘신앙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았거나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알고 믿은 바는 구체적인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였으니, 이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이 믿지 않았을 때에도 이들을 만나셨고 이들이 믿을 수 있게 된 후에도 이들을 만나주신 분이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던 사도들에 의한 추상도 아니고, 믿은 후의 사도들의 추상도 아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눈이 부활사건에 의하여 떠져서 부활 전에 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던 그분이 누구신가를 말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역사 비평적’ 전제를 갖...

3월28일 두려움 (2) [7]

  • 2007-03-28
  • 조회 수 2526

2007년 3월28일 두려움 (2)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 4:40) 십여 년 전쯤인가, 저와 같은 지역에서 목회하던 후배 목사가 있었습니다. 성격도 좋고, 체격도 건장하고 잘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간암에 걸렸습니다. 의사는 6개월 시한부를 선고했습니다. 병문안을 갔더니 본인은 믿음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더군요. 신유집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가족과 교회 식구들이 집중적으로 기도를 했지만 결국 죽었습니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라고 하면 어떨까...

1월20일 씨 (8) [2]

  • 2007-01-20
  • 조회 수 2527

2007년 1월20일 씨 (8)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예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씨의 영적인 의미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어떤 결실을 맺는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말씀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선 성서를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문자에 한정되는 건 아닙니다. 이미 계시 사건이 있으며, 선포도 있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큰 의미에서 말씀입니다. 근본적으로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이기...

12월16일 집이 분쟁하면?

  • 2006-12-16
  • 조회 수 2528

2006년 12월16일 집이 분쟁하면? 만일 집이 스스로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막 3:25) 예수님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제시한 두 번째 비유는 ‘집’입니다. 나라의 분쟁과 마찬가지로 집의 분쟁도 역시 그 집을 파괴합니다. 이 비유도 너무 간단하고 분명하니까 본문 자체에 대한 설명은 필요가 없겠군요. 집의 분쟁이라는 관점만 빌려서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옛날에는 할아버지로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가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지만 요즘은 대개 부모와 출가하지 않은 자식들로만 이루어진 핵가족으로 삽니다....

아버지의 품, 요한복음 묵상(12) [1]

  • 2013-05-04
  • 조회 수 2528

요한은 18절에서 예수를 가리켜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자’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의 품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일치한다는 뜻이다. 그 독생자 예수가 아무도 보지 못한 하나님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 진술의 근거가 무엇인가? 앞에서도 몇 번 말했지만 요한은 예수에게서 궁극의 생명을 경험했다. 그 궁극의 생명이 곧 하나님을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것으로도 다 알려지지 않는다.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궁극의 생명으로만 경험할 수 있다. 그 궁극의 생명도 우리가 ...

이명박 정권과 한국교회 [6]

  • 2010-12-14
  • 조회 수 2529

이명박 대통령께서 소망교회 장로라는 사실을 그대도 알고 있을 거요. 주차 관리를 하는 등, 교회 봉사에 열심히 대한하셨다 하오. 많은 교회가 그분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 노골적으로 활동하기도 했소. 지금 이명박 정권의 속성과 한국교회의 속성이 비슷한 것 같소. 그대 눈에는 어떻게 보이오? 나열식으로 말할 테니, 그냥 재미삼아 들어보시오. 첫째,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있소. 과정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이명박 정권이 모든 정책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한다는 걸 그대도 인정할 거요. 교회도 그렇소. ...

설교공부에 대해(2) [1]

  • 2010-10-04
  • 조회 수 2530

앞서의 글에서 설교는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소. 그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소. 공부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로 들리면 곤란하오. 설교 공부가 왜 필요 없겠소. 다만 그것을 기술이나 방법론의 문제로 여기지 말라는 뜻이었소. 설교만이 아니오. 모든 공부는 ‘지시하는’ 진리에 영혼을 여는 일이오. 진리가 지시한다는 말은 진리 자체가 가르친다는 뜻이기도 하고, 진리가 계시된다는 뜻이기도 하오. 성서텍스트 자체가 말을 한다는 뜻이오. 설교자의 첫 걸음은 바로 성서가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오. 그대는 설교를 ...

7월31일 오병이어 (6) [2]

  • 2007-07-31
  • 조회 수 2531

2007년 7월31일 오병이어 (6)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 6:38) 오병이어 사건이 벌어졌을 때 모인 사람의 숫자가 5천명이 되었다는데,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겨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다는 게 이상해보입니다. 옛날에는 밥을 사먹을 데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대개는 자기 먹을 걸 자기가 갖고 다니기 마련입니다. 깜빡 잊고 나온 사람들이 개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웬만한 사람들을 챙겨 나왔을 텐데 오병이어뿐이라니...

10월12일 안식일과 사람 (1)

  • 2006-10-12
  • 조회 수 2534

2006년 10월12일 안식일과 사람 (1)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2:27) 오늘 본문은 보기에 따라서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니요. 그리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니요. 이 말씀은 그 당시에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알고 있는 종교와 인간관계를 완전히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절대규범인 안식일을 상대화하는 이런 진술은 신앙의 본질을 꿰뚫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진리의 성격은...

12월17일 사탄이 분쟁하면?

  • 2006-12-17
  • 조회 수 2535

2006년 12월17일 사탄이 분쟁하면?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막 3:26)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사탄을 인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시대의 아들”이니까 그 당시의 세계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생각과 판단에 오류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인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현실에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알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오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보통 인간들과 ...

11월5일 십자가에 달린 자(4)

  • 2009-11-04
  • 조회 수 2537

2009년 11월5일 십자가에 달린 자(4)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15:29)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라는 말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들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당대의 가장 뛰어난 건축물입니다. 이런 건축물에 사람들이 얼마나 크게 감동했을지는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옛날부터 왕들은 장엄한 건축물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력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정치를 하는 통치자들은 많...

신학생들을 위한 기도, 4월18일, 수

  • 2012-04-18
  • 조회 수 2538

주님, 지금 한국에는 수많은 신학생들이 목사, 신학자, 선교사의 꿈을 꾸며 신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들의 소명이 분명하면 분명할수록, 그들의 영성이 깊으면 깊을수록 한국교회의 앞날은 더 밝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신학의 길이, 목회자의 길이, 선교사의 길이 개인의 소명과 영성만으로 순조롭게 열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과 같은 무분별한 교회 개척과 끝을 모르는 교회 성장주의와 극에 달한 교회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개인이 뚫고 나갈 수는 없지 않...

요단강 (1) 4월4일

  • 2006-04-04
  • 조회 수 2541

2006년 4월4일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 1:5) 요단강 (1) 4절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5절에 따르면 세례를 베푼 곳은 요단강입니다. 지리적으로 볼 때 팔레스타인의 북쪽에 위치한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해서 남쪽의 사해에까지 흘러드는 물줄기를 요단강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요단강을 직접 본적은 없지만 사진을 통해서 대충 감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한강이나 낙동강같이 큰 강을 끼고 살...

설교공부에 대해(6)

  • 2010-10-16
  • 조회 수 2541

인문학이 죽었다는 말을 그대도 종종 들었을 것이오. 그 말은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뜻이오. 인간이 어찌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겠소. 모든 이들은 생각하오. 여기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삶의 근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오. 돈을 버는 데는 머리를 많이 쓰지만 돈이 뭐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소. 집을 장만하는 데는 무조건 달려가지만 집이 뭐냐에 대해서는 아무런 질문도 없소. 이런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소. 오늘 설교자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소. 어...

7월21일 겟세마네(1) [11]

  • 2009-07-20
  • 조회 수 2542

2009년 7월21일 겟세마네(1)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14:32) 막 14:32-42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기 전날 밤에 행한 “겟네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입니다. 겟세마네는 감람산에 있는 작은 정원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기에 적당한 곳이었겠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일렀습니다.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이 제자들은 열두 제자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덟 명이라고 해야겠군요. 베...

책읽기(2), 1월31일(목) [3]

  • 2013-01-31
  • 조회 수 2543

어제에 이어서, 책읽기에서 구체적인 내용보다 느낌으로 남는 게 좋은 이유의 다른 하나는 세상 자체가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바로 그런 세상에서 일어난 것에 대한 진술이자 해석이다. 세상이 구체적이지 않다면 결국 책도 구체적일 수는 없다. 세상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할 게 없다. 보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간다. 나 자신도 언제일지 정확하게는 모르나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년 이상을 버텨내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조금 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와 별 차이도 없다. 20...

예수 어록(018)- 요 2:4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4)

  • 2018-12-27
  • 조회 수 2544

요 2:4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4)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표현은 일종의 선문답처럼 들린다. 잔치 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예수의 때 사이에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예수는 자신이 본격적으로 메시아로서의 활동을 시작해도 좋을만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직은 그런 때가 오지 않았으니 공개적인 자리에 나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신앙에서 ‘때’는 핵심 개념에 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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