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7일 예수의 가르침 (4)

조회 수 1391 추천 수 48 2007.01.07 08:18:05
2007년 1월7일 예수의 가르침 (4)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가르침은 배움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돼지 앞의 진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히 진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된 배움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선입관이 배움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천동설에 묶여있는 사람은 지동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레드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사람은 북한과의 상생과 평화관계를 꿈꾸지 못합니다. 율법에 묶여 있는 사람은 복음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용납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많은 경우에 배움을 정보의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수학의 집합이나 고차방정식, 독일어 문법, 성서의 역사비평과 본문 주석 방법론 등등,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대한 정보를 가능한 많이 획득하는 것을 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런 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지난 2천년 동안의 신학 역사도 역시 이런 정보에 속합니다. 그러나 정보는 그야말로 정보에 불과하지 현실성(reality)은 아닙니다. 물리학은 온갖 물리적 정보가 아니라, 그것 너머서 물리의 현실성 안으로 들어가는 학문입니다. 미술과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에 버금갈 정도로 그릴 줄 안다고 해서 그가 곧 예술가는 아닙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난 2,3천년의 종교 정보에 머물러 있는 한 참된 배움은 불가능합니다. 그 안에 어떤 세계가 있습니다. 그 세계 자체가 하나님입니다. 거기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은 성서의 가르침이 조금씩 선명하게 들어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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