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8일 승리한 하나님 나라

조회 수 1484 추천 수 43 2006.12.18 08:07:49
2006년 12월18일 승리한 하나님 나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막 3:27)

오늘 말씀은 흡사 속담처럼 들립니다. 이 말씀이 서기관들의 행태를 나무란 것인지, 아니면 당신 자신의 행위에 대한 논리적 해명인지 제가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아무래도 뒷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는 사탄의 도움이 아니라 그 사탄을 제어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논리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축귀는 사탄의 행위가 아니다. 둘째, 축귀는 사탄을 제어하는 예수님의 능력이다. 이 두 가지 논리가 말하려는 핵심은 예수님에게서 귀신의 우두머리인 사탄이 제압당하는 하나님의 통치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는 악한 영에 의한 불의, 고난, 불행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신 십자가 사건과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의 선취인 부활 이후에도 이 세상은 여전히 구원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이미 사탄을 제압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우리가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아래와 같은 신앙적 태도는 분명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악과 불행은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폭력과 고난도 역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에서 끊지 못합니다. 이미 죽음이 극복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고난이 두렵기는 하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사탄이 쫓겨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악한 일들이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그것이 최종적으로 끝장날 날은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런 희망을 아는 사람은 악과의 투쟁에서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는 고난 받고 ‘투쟁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승리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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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4일 씨 (2) [3]

  • 2007-01-14
  • 조회 수 1276

2007년 1월14일 씨 (2)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 뿌리는 행위가 곧 예배라는 어제의 말을 뒤집으면, 예배는 곧 씨 뿌리는 행위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철저하게 자연에 깃든 생명의 능력을 의지하듯이 예배도 역시 철저하게 자신과 구별되는 영에 의존합니다. 그 영은 아버지의 영이고 아들의 영인 성령입니다. 우리가 흔하게 들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예배의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예배의 주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물론 형식적으로 사람이...

1월13일 씨 (1)

  • 2007-01-13
  • 조회 수 1490

2007년 1월13일 씨 (1)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예수님은 출가하기 전에 분명히 목수로 살았을 겁니다.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에 보면 유대의 무장 독립운동가 한 사람이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 그 십자가를 만든 인물이 예수님으로 그려집니다. 작가의 재미있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장면입니다. 그 사형수의 어머니는 예수를 향해 저주를 퍼붓습니다. 당신도 결국 내 아들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리라! 어쨌든지 목수로 생계를 유지하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목수 일과 연관된 말씀을 전혀 하지 ...

1월12일 예수의 비유 (4) [1]

  • 2007-01-12
  • 조회 수 1478

2007년 1월12일 예수의 비유 (4)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막 4:2) 예수의 비유에 대해서 한 마디 하려다가 나 스스로 빠져나오기 힘든 신학적 사유 안에 갇히고 말았군요. 대충 정리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신학적 개념 안으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타자성과 내재성의 변증법적 관계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타자성만 강조하게 된다면 예수의 신성은 존립될 수 없습니다. ...

1월11일 예수의 비유 (3) [1]

  • 2007-01-11
  • 조회 수 1423

2007년 1월11일 예수의 비유 (3)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막 4:2) 예수도 하나님의 실체를 완전히 알지 못했다는 말이 많은 분들에게 당혹스럽게 들릴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걸까요? 만약 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훗날 교정하도록 하고, 일단 이런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역사적 예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놓여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도대체 예수가 하나님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

1월10일 예수의 비유 (2) [3]

  • 2007-01-10
  • 조회 수 1457

2007년 1월10일 예수의 비유 (2)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막 4:2)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고, 하나님을 직접 본 분인데 왜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을 간접적인 방식인 비유로 가르치셨을까요? 그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는 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적으로만, 암시적으로만, 간접적으로만 가르쳤을까요? ...

1월9일 예수의 비유 (1) [1]

  • 2007-01-09
  • 조회 수 1438

2007년 1월9일 예수의 비유 (1)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막 4:2) 예수의 가르침은 주로 비유의 방식을 취하셨습니다. 구약성서에 대한 재해석이나 간단한 경구를 제외하고는 대개가 비유로 진행되었었습니다. 비유는 어떤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다른 것을 빗대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비유를 많이 사용하신 이유는 가르침의 내용이 다른 방식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며, 또한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우리는...

1월8일 예수의 가르침 (5)

  • 2007-01-08
  • 조회 수 1357

2007년 1월8일 예수의 가르침 (5)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불교의 선종(禪宗)에서는 화두(話頭)가 가르침과 배움의 매우 중요한 방법입니다. 이는 말 그대로 스승이 제자에게 말의 머리만 제시하고 제자가 스스로 깊은 사유를 통해서 어떤 깨우침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콩놔라팥놔라 하고 일일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제자가 생각할 수 있는 방향만 제시한...

1월7일 예수의 가르침 (4)

  • 2007-01-07
  • 조회 수 1390

2007년 1월7일 예수의 가르침 (4)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가르침은 배움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돼지 앞의 진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히 진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된 배움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선입관이 배움을 방...

1월6일 예수의 가르침 (3)

  • 2007-01-06
  • 조회 수 1382

2007년 1월6일 예수의 가르침 (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오늘 본문에 “큰 무리”가 모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대중성이 있었다는 뜻일까요? 그런 질문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대중성 여부보다는 예수님에게서 발생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청중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일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유익한 일이 ...

1월5일 예수의 가르침 (2)

  • 2007-01-05
  • 조회 수 1388

2007년 1월5일 예수의 가르침 (2)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예수님은 좋은 선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와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진리 자체에 집중하셨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선생은 늘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 그는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 애를 쓰지 않습니다. 그는 당연히 청중을 기만하지도 않고 선동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단지 진리의 물결에 자신을 맡길 뿐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

1월4일 예수의 가르침 (1) [1]

  • 2007-01-04
  • 조회 수 2079

2007년 1월4일 예수의 가르침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막 4:1) 마가복음 기자는 3장 뒷부분에서 매우 살벌했던 장면으로부터 껑충 뛰어넘어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면으로 독자들을 인도합니다. 앞 대목은 분명히 바알세불, 용서받지 못하는 죄,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이냐 등등, 상당히 격한 분위기였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본문의 장면은 분명히 앞의 장면과 대조적입니다. 그 장소...

1월3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5)

  • 2007-01-03
  • 조회 수 1383

2007년 1월3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범주를 어디에 놓습니까? 교회에 나오는 사람, 교회에 나와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것과 상관없이 윤리적으로 사는 사람 등등, 누가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일까요? 하나님의 뜻과 실천을 조금 예민한 문제와 연관해서 생각해볼까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타종교입니다. 불교인들 중에서 매우 성실한 사람, 실제로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

1월2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4)

  • 2007-01-02
  • 조회 수 1399

2007년 1월2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4)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예수의 가족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인식과 행위가 일치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만 그럴듯하게 할 뿐이지 실제로 행동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특히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게 많을수록 손발이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식인들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각종 이...

1월1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3)

  • 2007-01-01
  • 조회 수 1526

2007년 1월1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3)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결국 우리의 질문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문이 막힙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누구일까요? 아무도 이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세례 받을 때 배운 대답을 알기는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며, 종말에 이 세상을 완성하실 분이십...

12월31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2)

  • 2006-12-31
  • 조회 수 1530

2006년 12월31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2)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이제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예수의 가족이라고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제 교회 공동체가 소중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이 곧 교회라는 형식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으면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과거 교회의 역사를 뒤돌아보...

12월30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1)

  • 2006-12-30
  • 조회 수 1456

2006년 12월30일 하나님 나라 공동체 (1)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31-35절의 결론이 바로 35절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의 가족입니다. 가족 개념이 혈연공동체로부터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 전환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누구일까요?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면 지금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그걸 오늘에 적용한다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또는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

12월29일 혈연 공동체

  • 2006-12-29
  • 조회 수 1634

2006년 12월29일 혈연 공동체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막 3:34) 자기를 찾아온 어머니와 동생들을 일단 접어두고 예수는 자기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제자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1” 가족에 대한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혈연의 가족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이지만 우리 한민족처럼 혈연 공동체를 강조하는 민족도 이 세상에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피는 물보...

12월28일 신앙공동체와 가족공동체

  • 2006-12-28
  • 조회 수 1743

2006년 12월28일 신앙공동체와 가족공동체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막 3:33)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은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뒤의 두 구절에서 조금 더 냉정한 말씀을 하지만 이미 이 구절에서도 예수님은 상식적이지 않은 발언을 하신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몇 가지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출가하면서 가족과의 연(緣)을 완전히 끊었는지 모릅니다. 승가에서도 출가한 사람들은 집안 식구들과의 세속적인 관계를 버리고, 가톨릭의...

12월27일 예수의 동생들과 누이들

  • 2006-12-27
  • 조회 수 4637

2006년 12월27일 예수의 동생들과 누이들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 3:32) 예수를 찾으러온 가족 중에는 어머니 마리아만이 아니라 동생들과 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동생들이 몇 명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오늘 본문에 따르면 제법 여러 명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후 예루살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였습니다. 야고보 이외에도 교회 지도자 역할을 한 동생들이...

12월26일 당신의 어머니 (4) [1]

  • 2006-12-26
  • 조회 수 1530

2006년 12월26일 당신의 어머니 (4)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 3:32) 우리 개신교회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약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마리아가 이미 신의 영역에 들어간 것 아니냐, 하는 문제 제기입니다. 예컨대 그들은 마리아에게 기도를 올립니다. 제가 지금 가톨릭의 마리아 숭배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할만한 입장은 아닙니다. 실제로 마리아를 대상으로 하는 기도인지, 아니면 주님에게 대신 아뢰어달라는 요구인지 찬찬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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