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4일 병자 (4)

조회 수 1715 추천 수 43 2006.11.24 07:27:33
2006년 11월24일 병자 (4)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막 3:10)

어제 저는 한미 FTA 체결로 인한 미국 의료시스템에 대해서 한 마디 했습니다. 미국의 의료보험이 다원화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래서 빈곤층이 의료 사각지대라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 제가 독일에 잠시 있었기 때문에 그쪽 이야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복지에 관한한 미국보다는 유럽 나라들이 훨씬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세계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스웨덴만은 못하지만 독일의 복지 시스템도 썩 괜찮습니다. 일단 의료보험에 가입하기만 하면 모든 진료와 치료가 무료입니다. 80년대 초 집사람이 독일 쾰른에서 임신 중일 때의 일입니다. 매월 가는 정기 진료  차 갔다가, 피를 뽑고 약간 어지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택시를 불러서 집에까지 보내주었습니다. 택시비까지 보험처리가 된 것이죠. 그러니 다른 거야 긴말 할 것도 없습니다. 통독 이후로 의료 보험을 비롯한 복지 제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상황이 크게 나빠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원래 사회주의 국가는 복지만은 자랑하고 있었으니까요. 2000도에 잠시 베를린에 들렸을 때 보니까 학생들은 안경까지 보험으로 처리해주더군요.
문제는 돈입니다. 이런 복지 체제를 운용하려면 세금과 보험료를 많이 내야겠지요. 이게 우리나라에는 어렵습니다. 지금도 부동산 보유세를 조금만 올려도 세금폭탄이다, 뭐다 해서 야단입니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로 경쟁력 제고가 최고의 가치로 부각되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이런 사회주의적 정책들은 별로 인기를 얻기 힘들 것 같군요. 어쨌든지 다른 건 몰라도 돈이 없어서 병을 치료받지 못하는 일만은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바우로

2006.11.24 12:11:46

뉴스 위크 기사와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니까 독일민주공화국과 독일연방공화국이 통합된 이후 사회복지정책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더군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라고 하는데, 돈보다 사람이 더 우선이 아닐까요? 그나저나 우리나라도 의료만큼은 예수님처럼 무상의료를 실천해야 한다고 봅니다. - 예수님을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의 모범으로 존경하는 바우로 올림.

[레벨:6]또 하나의 나

2006.11.24 12:32:05

첨단의료가 과연 도움이 될것인가? 예전에는 살리지 못했던 질병을 고칠수 있다는 것이 복인가? 그것을 개발하고 사용하기 위해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다국적제약회사들이 개발해낸 수많은 첨단의 기술과 약들 과연 그것을 무상으로 사용할수 있을까요. 의학은 날로 발전하지만 그것을 이용할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인 이유로 점점 소수에 그치고 말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의료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모든 사람들은 위한 합리적인 의료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고, 반드시 해야할 치료인데도 잘못된정책으로 할수없는 그런 나라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월급이 줄어든다고 해도) 의료라는 단어가 나와서 그저 한번 써봤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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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6.11.25 00:07:15

또하나의나 님,
병원에서 일하시나보군요.
무슨 일을 하시는지.
꼭 밝히라는 건 아니구요.
의료, 교육, 집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오늘 우리의 형편은 거꾸로 가는군요.
열심히 잘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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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24일 당신의 어머니 (2)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 3:32) 마리아가 예수를 임신했을 때의 나이가 대충 15,16세가량이라고 합니다. 지금 의 기준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옛 결혼풍습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조혼이었습니다.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생리학적 준비가 갖추어지기만 하면 가능한 일찍 아기를 낳는 게 그 당시로서의 최선이었습니다. 영아 생존율이 워낙 낮았으니까 일단 많은 아이들을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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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23일 당신의 어머니 (1)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 3:32)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의 어머니”가 밖에서 찾는다고 알렸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복음서기자들이 예수님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침묵하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마리아와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아주 미약합니다. 그리고 그것마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고백된 이후에 새롭게 정립된 진술들이기 때문에 거기서 우리가 예수...

12월22일 불가근불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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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22일 불가근불가원 그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막 3:31) 지금 우리는 매우 미묘한 장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중입니다. 도대체 예수님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21절 말씀에 의하면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예수님을 붙들러 친족들이 왔다고 합니다. 31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또는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왔습니다. 가족들도 역시 친족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걸까요? 그들도 역시 그 소문의 진위...

12월21일 성령모독의 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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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21일 성령모독의 죄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막 3:30) 30절은 20절로부터 이어지는 “예수와 바알세불” 단락의 마지막 절입니다.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으신 예수님을 향해서 오히려 더러운 귀신을 들렸다고 비난하는 서기관들과 그 일행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는 곧 29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성령모독이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성령에 사로잡힌 분이셨던 예수님을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말한다는 것은 곧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그 일행들...

12월20일 용서받지 못하는 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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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20일 용서받지 못하는 죄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막 3:29) 모든 죄가 용서받는다는 28절 말씀에 이어서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는 29절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 말씀을 간직하게 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미 유대교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조상 아브라함의 계약을 파괴한 자, 죽은 사람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 토라가 하느님에 의한 것임을 부인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

12월19일 죄와 용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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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19일 죄와 용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막 3:28) 그리스도교의 인간론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죄라는 대답을 할 겁니다. 물론 성서에는 인간의 죄에 대한 지적이 많기는 합니다. 이미 창세기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사건, 노아 시대에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싹쓸이 하려고 마음먹을 정도로 부패했던 사람들에게 관한 이야기가 모두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에 ...

12월18일 승리한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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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18일 승리한 하나님 나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막 3:27) 오늘 말씀은 흡사 속담처럼 들립니다. 이 말씀이 서기관들의 행태를 나무란 것인지, 아니면 당신 자신의 행위에 대한 논리적 해명인지 제가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아무래도 뒷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는 사탄의 도움이 아니라 그 사탄을 제어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논리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축귀는 ...

12월17일 사탄이 분쟁하면?

  • 200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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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17일 사탄이 분쟁하면?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막 3:26)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사탄을 인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시대의 아들”이니까 그 당시의 세계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생각과 판단에 오류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인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현실에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알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오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보통 인간들과 ...

12월16일 집이 분쟁하면?

  • 200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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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16일 집이 분쟁하면? 만일 집이 스스로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막 3:25) 예수님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제시한 두 번째 비유는 ‘집’입니다. 나라의 분쟁과 마찬가지로 집의 분쟁도 역시 그 집을 파괴합니다. 이 비유도 너무 간단하고 분명하니까 본문 자체에 대한 설명은 필요가 없겠군요. 집의 분쟁이라는 관점만 빌려서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옛날에는 할아버지로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가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지만 요즘은 대개 부모와 출가하지 않은 자식들로만 이루어진 핵가족으로 삽니다....

12월15일 나라가 분쟁하면?

  • 2006-12-15
  • 조회 수 1421

2006년 12월15일 나라가 분쟁하면?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막 3:24) 나라가 분쟁하면 설 수 없다는 말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입니다. 오늘 저는 이 성서 본문 자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대신 ‘나라의 분쟁’에 초점을 두고 두 가지 관점만 말씀드릴까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대통령과 국회와 사법부가 분쟁하면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어느 한쪽의 힘이 일방적으로 득세하지 않도록 서로 견제해야겠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서로 물고 늘어지는 것은...

12월14일 논리의 필요성

  • 2006-12-14
  • 조회 수 1395

2006년 12월14일 논리의 필요성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막 3:23) 예수님은 자신을 비난하고 돌아다니는 서기관들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부른다고 해서 그들이 순순히 따라온 것인지 아니면 어떤 사람이 중간에서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지 이제 예수님은 매우 불쾌한 상황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예수님이 평소에 자기를 비난하는 모든 말에 시시비비를 걸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아무리 입장이 곤란하더라도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

12월13일 서기관들의 비난

  • 2006-12-13
  • 조회 수 1604

2006년 12월13일 서기관들의 비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막 3:22) 마가복음 기자는 친족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로 끝내고 다시 서기관들을 등장시킵니다. 그들은 신학자들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왔다는 건 제사장들이 그들을 파송했다는 뜻이겠지요. 예수님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 제사장들을 비롯한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에게 위험스러운 것으로 비쳐진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 특명을 받고 갈릴리 ...

12월12일 예수의 친족

  • 2006-12-12
  • 조회 수 1815

2006년 12월12일 예수의 친족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 3:21) 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적인 이야기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척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의 친족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나왔다는 오늘 본문은 아주 특이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지금 예수님이 머물고 있는 곳은 가버나움입니다.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상당히 먼 곳입니다. 혹시 예수님을 찾아온 친족들은 재(在)가버나움 나사렛 향우회원인가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31절에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

12월11일 집으로 모인 무리

  • 2006-12-11
  • 조회 수 1460

2006년 12월11일 집으로 모인 무리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막 3:20) 3장19절은 세 문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집에 들어갔다. 무리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 이 집은 물론 가버나움에 있는 어떤 사람의 집입니다. 베드로의 집일 수도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제자의 집일 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신 이유는 식사와 휴식이었겠지요.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밖에서의 일이 끝나면 당연히 집에 들어가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

12월10일 열두 제자 (11)

  • 2006-12-10
  • 조회 수 1654

2006년 12월10일 열두 제자 (11)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막 3:19) 열두 제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가룟 유다입니다. 개역 성서는 유다의 별칭을 ‘가룟’이라고 부르고, 공동번역은 가리옷이라고 하고, 루터 번역은 이스카리오트라고 합니다. 그닐카의 설명에 따르면 앞에서 언급된 가나안은 열광주의자라는 뜻이고, 이스카리오트는 시카리(무법자, 칼잽이)라는 뜻, 또는 “거짓말쟁이”라는 의미로 새길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스카리오트는 유다가 배신적인 행위를 한 다음에 교회 공동체로부터 얻은 별칭이라고 ...

12월9일 열두 제자 (10)

  • 2006-12-09
  • 조회 수 1796

2006년 12월9일 열두 제자 (10)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막 3:18) 앞에서 세 명의 제자가 거명됐고, 17절에는 8명이 거명됩니다.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야고보(2), 다대오, 시몬(2)이 그들입니다. 여기서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이고, 빌립은 그들과 같은 동네 출신이며(요 1:44), 야고보(2)는 알패오의 아들이며, 시몬(2)은 시몬 베드로와 동명이인입니다. 그런데 알패오의 아들이 야고보(2)라는 진술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레...

12월8일 열두 제자 (9) [2]

  • 2006-12-08
  • 조회 수 1525

2006년 12월8일 열두 제자 (9)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막 3:16) 병행구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베드로에 이어서 그의 동생인 안드레를 거명하는데 반해 마가복음은 베드로 뒤로 야고보와 요한을 거명합니다. 예수님은 이들 형제에게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덧붙이셨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서 이들 세 명,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본명 이외의 이름을 받은 셈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들 세 명에게만 특별...

12월7일 열두 제자 (8)

  • 2006-12-07
  • 조회 수 1563

2006년 12월7일 열두 제자 (8)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막 3:16) 열두 제자 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거명된 사람은 역시 시몬 베드로입니다. 원래의 이름은 시몬인데, 예수님이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보태주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전승에 따르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하는 시몬의 신앙고백이 있을 후에 예수님이 그에게 이런 이름을 주셨다고 합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 16:18)는 예수님의 말씀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12월6일 열두 제자 (7)

  • 2006-12-06
  • 조회 수 1286

2006년 12월6일 열두 제자 (7)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5) 어제 설명한 전도와 축귀 능력은 일단 구별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똑같습니다. 이 양자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로 변증되어야 하고, 동시에 축귀의 능력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한 가지 사실, 즉 가까이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그 능력에 사로잡히신 분이었습니다. 복음서의 비유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주제로 한 것입니다. 네 종...

12월5일 열두 제자 (6)

  • 2006-12-05
  • 조회 수 1594

2006년 12월5일 열두 제자 (6)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5)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준 두 번째 사명은 “귀신을 내쫓는 권능”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명인 전도와 두 번째인 축귀의 권능은 약간 성격이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라면, 축귀는 악한 영을 내쫓는 능력입니다. 전자는 그야말로 사명이고, 후자는 권한일지 모릅니다. 전자는 언어의 세계이고, 후자는 능력의 세계입니다. 전자를 논리라고 한다면, 후자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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