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484
어제 묵상인 간질병 치유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복음서에 적지 않게 나온다. 예수님은 십 수 년 된 난치병 환자도 고치시고, 시각장애인을 비롯해서 온갖 종류의 지체 장애인들을 고치신다. 심지어는 죽었던 이들을 살리기도 하셨다고 한다. 환자나 장애인들을 고치는 일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실제로 죽었던 사람이라기보다는 죽은 것으로 간주되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봐야 한다. 2천 년 전 당시에는 그렇게 오해된 경우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요즘도 그런 일들이 있긴 하다.
종교의 힘으로 난치병을 고치려는 염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실제로 그렇게 치료받은 일도 허다하다. 무속종교에서도 그런 일들은 일어난다. 속칭 순복음교회는 신유 은사로 유명하다. 그 교파가 크게 성장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신앙심으로 병을 고쳐보겠다는 간절한 마음과 그걸 기독교 신앙으로 오도하는 선교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각론하고, 예수님이 실제로 병을 고치셨을까? 사람들이 오해한 것은 아닐까? 그것은 성서의 관심사가 아니다. 치유, 축귀 이야기들은 어떤 궁극적인 사실을 말하려는 징표다. 궁극적인 사실은 아니라는 말이다. 병이 치료되어도 사람은 늙고 병들고 죽는다. 기독교의 구원은 그런 상대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병 치료는 의사들에게 맡기고 목사들은 영적인 치료에 관심을 기울여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