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 방문기(5)

조회 수 2578 추천 수 2 2010.04.14 23:02:14

천당 방문기(5)

 

    어제에 이어서 밥 이야기를 더 해야겠소. 천당에는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먹을거리가 넘쳐난다오. 아니 이렇게 말해야겠구려. 천당에는 이 땅에 있던 건 하나도 없고, 모든 게 새로운 먹을거리요. 그 맛도 처음인 것들이오. 내가 어렸을 때 바나나가 참으로 귀했소.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으니 그 맛을 어떻게 알겠소. 나중에 처음 먹었을 때에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었소. 천당에 있는 먹을거리가 다 그런 줄만 알아두시오. 기대해도 좋소.

 

    그런데 천당에는 특별한 규칙이 있소. 천당의 먹을거리를 먹기 전에 자기가 지상에서 처리하지 못한 잔반(殘飯)을 다 먹어야 한다오. 그거 참 신기한 일이오. 그리고 당연한 일이오. 천당에는 잔반이 개인별로 다 비축되어 있는 거요. 그거 한번 들여다보면 아무리 천당이지만 밥맛이 싹없어지오. 그걸로 아무리 맛있게 요리를 해봐야 꿀꿀이죽을 먹는 거나 진배가 없소.

 

    그대도 알고 있는 ‘김 사장’의 형편이 어떤 줄 아시오? 내가 천당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돌아올 때 보니, 여전히 50년 쯤 더 먹어야 할 처지였소. 그 친구가 지상에서 너무 헤프게 먹고 살았나 보오. 잔반 창고에 쌓여 있는 찌꺼기 중에서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대략 5마리 정도 되오. 김치는 통배추로 100 통은 너끈해 보이오. 어쨌든지 그 친구 앞으로 달린 잔반이 컨테이너로 다섯 개 정도 쌓여 있으니, 앞으로 고생 좀 할 거요. 잔반이 상하지 않게 하려면 냉동 창고에 보관해 둬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돈도 좀 필요할 거고, 보기에 좀 안 됐소이다.

 

    내가 목사래서 그런지 종교 지도자들의 잔반이 어떻게 남았는지 궁금했소. 담당 관리인에게 확인을 해 보았소. 승려들의 잔반 창고는 아예 없었소. 평소에 양념 하나 남기지 않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거요. 가톨릭 신부들의 잔반 창고에는 뭔가 남아 있긴 했는데, 대수롭지 않았소. 대충 한달 정도면 다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였소. 목사들의 잔반은, 이거 누워서 침을 뱉는 이야기지만, 일반 사람들과 다를 게 거의 없었소. 아마 10년 정도는 참고 먹어야 할 거요.

 

    그대의 잔반 창고도 슬쩍 들여다보았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그대가 잘 아실 거요. 나중에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내가 함께 먹어드리고 싶소만, 천당에서는 그런 변칙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하오. (2010년 4월14일, 수요일, 비와 눈)


[레벨:1]그루터기

2010.04.15 01:47:14

 교수님!!

 

글이 너무 재미있어요~

 

하지만 우리의 풍족한 생활을, 방탕한 생활을 되돌아 보게 하네요~

 

저도 한 주간 저녁금식을 하면서 음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우리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버리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음식 앞에서 좀 진지해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요...

 

교수님!!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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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우디

2010.04.15 11:24:03

앗! 과연 사실이었군요....

어려서부터 할머니, 할어버지, 어른들께 들어왔던 얘기.

음식 남기면 지옥가서 남긴거 다 먹어야한다던 바로 그 얘기.

다른 점이 있다면, 천당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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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4]프시케

2010.04.15 14:19:32

아 놔... 심하게 오금이 저려옵니다...

남은 음식 버릴때마다 이상하게 가슴 한편 '이러면 안되는 건데'했던 죄책감이

이유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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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토토

2010.04.17 23:22:05

김사장이 누굽니까?

[레벨:5]오영숙

2010.04.20 19:54:59

내일부터는 음식을 조금씩만 만들어야지........... 그래도 한 십년은 먹어야 할 듯...... 탐욕의 노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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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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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6일 고귀한 낭비(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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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16일 고귀한 낭비(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14:3) 미국의 루터교 신학자 마르바 던이 쓴 <고귀한 시간 낭비>가 있습니다. 예배에 관한 책입니다. 그녀는 미국의 대형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소위 ‘열린 예배’의 경박성을 비판했습니다. 복음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한다기보다는 사람들의 종교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학적 깊이가 있는 음악과 예전을 통한 ...

2월15일 등경 위의 등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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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15일 등경 위의 등불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막 4:21)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21-25절에 나오는 두 개의 말씀은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편집자가 이곳에 삽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1-20절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고, 26-3절은 자라나는 씨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간에 등불과 헤아림이라는 말씀이 들어갔습니다. 신학비평 문제는 우리의 묵상에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오늘 ...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12월22일(토)

  • 2012-12-22
  • 조회 수 2569

주님, 오늘 우리는 2천7백 년 전 고대 유대 땅에서 선지자로 활동했던 미가를 통해서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는 신탁을 듣습니다(미 5:2).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작은 부족에게서 민족을 구원할 자가 나올 것이라는 저 외침은 처참한 지경에 빠져있던 유대인들에게 절망과 어둠을 밝히는 빛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2천 년 전 마태복음 기자를 통해서 미가의 신탁을 다시 듣습니다(마 2:6). 마태는 미가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현실이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신비롭고 놀랍습니...

9월13일 의인 (1) [1]

  • 2006-09-13
  • 조회 수 2571

2006년 9월13일 의인 (1)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왜 죄인들과 어울려 다니느냐는 서기관의 불만을 듣고 주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야말로 촌철살인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듯이 의인에게는 예수가 필요 없다는 말보다 더 정확하게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예수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의인(義人)은 구약성서의 중심 사상입...

10월2일 바라바 이야기(3) [5]

  • 2009-10-01
  • 조회 수 2573

2009년 10월2일 바라바 이야기(3)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15:8) 어제의 묵상에서 폭력의 문제를 짧게 말씀드렸지만, 논지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폭력에 늘 따라다니는 ‘혁명’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를 풀고 넘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개혁이 혁명보다 힘들다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혁명을 어딘가 비이성적인 행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혁명은 기존의 가치와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선거를 통해서도 혁명은 가능합니다. 이런 혁명을 반대할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삶의 알맹이와 껍질 [5]

  • 2010-09-06
  • 조회 수 2573

그대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 어렴풋하게나마 그게 눈에 들어오오? 그걸 알고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오. 그걸 완전하게 아는 사람은 없소. 나도 사실은 모르오. 죽는 순간에라도 그걸 알면 다행이겠으나, 쉽지 않을 거요. 지난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위대한 종교인들이나 철학자들이 나름으로 삶에 대해서 말했지만 어느 것도 딱 부러진 대답은 아니었소.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소.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증거요. 오해는 마시오. 예수님도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루살이 [15]

  • 2015-11-14
  • 조회 수 2573

11월14일 하루살이 요즘도 우리 집에는 하루살이 몇 마리가 날아다닌다. 날씨가 이런 정도로 싸늘해졌으면 하루살이들이 번식을 못할 때도 된 거 같은데, 무슨 연유인지 몇 마리가 눈에 뜨인다. 바깥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서 마지막 순간을 견뎌내기 위해서 미로를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온 것 같다. 어쨌든지 기특한 일이다. 하루살이를 볼 때마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빠르고 자유로운지 모른다. 움직이는 물체는 관성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하루살이는 관성의 지배를 안 받는 것처럼 방향전...

11월24일 병자 (4) [3]

  • 2006-11-24
  • 조회 수 2574

2006년 11월24일 병자 (4)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막 3:10) 어제 저는 한미 FTA 체결로 인한 미국 의료시스템에 대해서 한 마디 했습니다. 미국의 의료보험이 다원화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래서 빈곤층이 의료 사각지대라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 제가 독일에 잠시 있었기 때문에 그쪽 이야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복지에 관한한 미국보다는 유럽 나라들이 훨씬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세계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

예수님의 시험 (3), 4월27일 [2]

  • 2006-04-27
  • 조회 수 2574

2006년 4월27일 예수님의 시험 (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 1:13) 예수님이 사탄에게 받은 첫 번 시험은 다음과 같은 요구였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사탄의 요구가 흥미롭습니다. 그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 ”하고 단서를 붙였습니다. 예수님은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숫하게 받았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았을까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

누가복음 읽기 002 [1]

  • 2020-11-04
  • 조회 수 2574

누가복음 읽기 002 https://youtu.be/ZN-NIRY4zWM

누가복음 톺아 읽기 047

  • 2021-01-06
  • 조회 수 2574

대구 성서 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047, 눅 1:73 https://youtu.be/0yQ0Okoe5CU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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