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8일 헤롯의 근심

조회 수 1364 추천 수 13 2007.07.08 09:33:36
2007년 7월8일  헤롯의 근심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막 6:26)

헤롯은 헤로디아의 딸이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요. 아마 거기에 모였던 그 어떤 사람도 그걸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헤롯은 지금 어디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외통수에 걸린 셈입니다. 요한을 죽인다는 건 양심을 땅에 묻는 일이며, 뭐든지 주겠다는 자신의 말을 거두어들인다는 왕의 체통이 구겨지는 일입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일구이언의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근심에 싸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로 근심하지만, 어떤 때는 자기가 쏟아내는 무책임한 말로 인해서 근심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교적 말을 많이 하고 살아가는 설교자들은 이런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습니다. 지난 6월10일 영락교회 이 아무개 목사님은 설교 도중에 극단적으로 정치적인 말씀을 하셨다는군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건 “자유주의냐 반미친북사회주의냐”라면서, 진보와 보수라고 표현하지 말고 좌파와 우파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라고 다그치셨더군요. 방송을 책임진 CBS 피디는 그 대목을 편집해서 내보냈다고 합니다. 영락교회는 해당 피디를 문책하고 사장이 공식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다네요.
일부 보수적인 입장의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쏟아내는 매우 노골적인 반공, 반북, 친미적인 발언은 정치 선전이지 설교가 아닙니다. 정치도 모르고 신학도 모르는 사람의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그걸 어떻게 뒷감당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군요.
제가 보기에 이렇게 무책임한 발언은 오늘 본문의 헤롯에게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목사들에게서 나옵니다. 정치적 권위주의도 이렇게 경솔하고 공격적이지만 종교적 권위주의도 이에 못지않은 것 같습니다.

김한국

2007.07.08 14:10:31

영락교회 담임목사가 설교시간에 한 발언을 듣고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홈피로 들어가서 보니 연세대에서 역사를 공부하셨더군요.
역사를 공부하신 분이라면 누구보다 냉철한 역사의식과
시대를 분별하는 통찰력이 있을 법한데.... 쩝,
안타깝습니다.
수많은 영락의 청중들은 도대체 뭐 하는고!
그런데 참 이상하다.
대체로 보수적 성향의 교회 강단에서
설교자가 자유주의적(?)발언을 하면
보수진영의 청중들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반면
강단에서 설교자가 친미반북, 반공 발언을 할 때는
왜 진보쪽 청중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지
난 지금도 그게 미스테리다.
영락교회는 몽땅 그쪽 사람들인가?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7.07.08 23:09:57

제가 잘 모르지만
영락교회는 월남한 분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한 교회라는 걸
염두에 두고 그런 현상을 바라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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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13일 쉼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막 6:31) 막 6:30-44절은 소위 오병이어 사건을 중심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두 전승을 하나로 묶은 것입니다 31-33절은 파송에서 돌아온 사도들의 보고를 중심으로 한 전승이며, 34-44절은 오병이어 전승입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나름의 시각으로 이 두 전승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었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31절 말씀도 파송에서 돌아온 제자들에게 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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