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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6월3일 다시 고향으로!

  • 2007-06-03
  • 조회 수 1332

2007년 6월3일 다시 고향으로!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막 6:1) 예수님은 고향을 방문하십니다. 나사렛입니다. 예수님이 출생은 베들레헴이지만 자란 곳은 나사렛입니다. 그곳은 예수님의 가족, 친척, 동네어른들이 계신 곳이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 추억이 긷든 곳입니다. 저는 고향이 없습니다. 서울을 고향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곳의 추억만 남아있지 형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서울시 삼선동에서 초등학교 5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2학기부터 광나루 다리 건거 천호동에서 살았습...

6월2일 메시아 은폐성

  • 2007-06-02
  • 조회 수 1931

2007년 6월2일 메시아 은폐성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막 5:43) 예수님은 죽었다던 소녀가 다시 살아난 사건을 비밀로 하라고 단단히 이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사건이라면 널리 선전하는 게 마땅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이번 경우만이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아성(性)을 감추시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메시아성의 은폐성입니...

6월2일 메시아 은폐성

  • 2007-06-02
  • 조회 수 1460

2007년 6월2일 메시아 은폐성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막 5:43) 예수님은 죽었다던 소녀가 다시 살아난 사건을 비밀로 하라고 단단히 이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사건이라면 널리 선전하는 게 마땅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이번 경우만이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아성(性)을 감추시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메시아성의 은폐성입니...

6월1일 놀라움 (2)

  • 2007-06-01
  • 조회 수 1686

2007년 6월1일 놀라움 (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인문학적 성서공부 강의안 중에서 일부를 여기에 게재합니다. 칼 바르트는 신학적 실존을 바로 이런 두려움, 즉 놀라움에서 찾았다. 거의 글을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누구나 신학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학에서 손을 떼고 편견 없이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가 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놀라움의 경험이 솟아올라서 더 이상 상실된 상태에 있지 않...

6월1일 놀라움 (2)

  • 2007-06-01
  • 조회 수 1464

2007년 6월1일 놀라움 (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인문학적 성서공부 강의안 중에서 일부를 여기에 게재합니다. 칼 바르트는 신학적 실존을 바로 이런 두려움, 즉 놀라움에서 찾았다. 거의 글을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누구나 신학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학에서 손을 떼고 편견 없이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가 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놀라움의 경험이 솟아올라서 더 이상 상실된 상태에 있지 않...

5월31일 놀라움 (1)

  • 2007-05-31
  • 조회 수 1929

2007년 5월31일 놀라움 (1)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녀가 일어나서 걷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반복해서 놀랐다고 하는군요. 놀라움은 성서 전체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복음서만이 아니라 구약성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전승에 대한 공부의 한 대목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이 공부는 오늘 저녁에 있을 서울오프 모임을 위해서 준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보다는 그가 하나님...

5월31일 놀라움 (1)

  • 2007-05-31
  • 조회 수 1231

2007년 5월31일 놀라움 (1)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녀가 일어나서 걷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반복해서 놀랐다고 하는군요. 놀라움은 성서 전체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복음서만이 아니라 구약성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전승에 대한 공부의 한 대목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이 공부는 오늘 저녁에 있을 서울오프 모임을 위해서 준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보다는 그가 하나님...

5월30일 열두 살의 소녀

  • 2007-05-30
  • 조회 수 2272

2007년 5월30일 열두 살의 소녀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죽었다고 생각되던 소녀가 “달리다굼!”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서 걸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질문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기본적으로 질문을 그 바탕에 놓는다는 점에서는 필요하지만, 본문의 중심이 거기에 놓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 중심이 무엇인가는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소녀의 나...

5월30일 열두 살의 소녀

  • 2007-05-30
  • 조회 수 1362

2007년 5월30일 열두 살의 소녀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죽었다고 생각되던 소녀가 “달리다굼!”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서 걸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질문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기본적으로 질문을 그 바탕에 놓는다는 점에서는 필요하지만, 본문의 중심이 거기에 놓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 중심이 무엇인가는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소녀의 나...

5월29일 번역의 신앙

  • 2007-05-29
  • 조회 수 1801

2007년 5월29일 번역의 신앙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본문의 중심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한번 짚어둘만한 것은 성서기자가 달리다굼을 ‘번역’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달리다굼은 그 당시 유대지역의 일상 언어였던 아람어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모두 그 언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성서기자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친절하게 번역해 준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은 기본적으로 번역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언어인 아람어를 헬라어...

5월29일 번역의 신앙

  • 2007-05-29
  • 조회 수 1981

2007년 5월29일 번역의 신앙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본문의 중심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한번 짚어둘만한 것은 성서기자가 달리다굼을 ‘번역’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달리다굼은 그 당시 유대지역의 일상 언어였던 아람어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모두 그 언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성서기자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친절하게 번역해 준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은 기본적으로 번역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언어인 아람어를 헬라어...

5월28일 달리다굼

  • 2007-05-28
  • 조회 수 2226

2007년 5월28일 달리다굼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비웃는 사람들을 내보시고 아이의 부모와 제자 몇 명을 데리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이를 번역하면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황을 오늘 만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저의 입장에서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펄쩍 뛰었을 겁니다. 죽어 누워있는 아이에게 일어나라고 소...

5월28일 달리다굼

  • 2007-05-28
  • 조회 수 1639

2007년 5월28일 달리다굼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비웃는 사람들을 내보시고 아이의 부모와 제자 몇 명을 데리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이를 번역하면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황을 오늘 만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저의 입장에서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펄쩍 뛰었을 겁니다. 죽어 누워있는 아이에게 일어나라고 소...

5월27 비웃음

  • 2007-05-27
  • 조회 수 1964

2007년 5월27 비웃음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막 5:40)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거기 모여서 떠들며 울던 사람들이 비웃었다고 합니다. 비웃는다는 표현이 헬라어로 어떤 뉘앙스인지 제가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요. 말 그대로 비아냥거림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실증적인 사실을 거부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들이 비웃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겠지요. 어떤 점에서 교회는 세상으...

5월27 비웃음

  • 2007-05-27
  • 조회 수 1459

2007년 5월27 비웃음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막 5:40)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거기 모여서 떠들며 울던 사람들이 비웃었다고 합니다. 비웃는다는 표현이 헬라어로 어떤 뉘앙스인지 제가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요. 말 그대로 비아냥거림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실증적인 사실을 거부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들이 비웃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겠지요. 어떤 점에서 교회는 세상으...

5월26 죽음과 잠 (3)

  • 2007-05-26
  • 조회 수 2042

2007년 5월26 죽음과 잠 (3)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막 5:39)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예수님은 떠들며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

5월26 죽음과 잠 (3)

  • 2007-05-26
  • 조회 수 1580

2007년 5월26 죽음과 잠 (3)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막 5:39)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예수님은 떠들며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

5월25 죽음과 잠 (2)

  • 2007-05-24
  • 조회 수 2072

2007년 5월25 죽음과 잠 (2)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막 5:39) 야이로의 딸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하는 말씀에 근거해서 본다면 이 사실이 더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도 떠들며 울었을 것입니다. 물론 복음서 기자들은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선생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그 슬픔과 절망의 무게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

5월25 죽음과 잠 (2)

  • 2007-05-24
  • 조회 수 1435

2007년 5월25 죽음과 잠 (2)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막 5:39) 야이로의 딸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하는 말씀에 근거해서 본다면 이 사실이 더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도 떠들며 울었을 것입니다. 물론 복음서 기자들은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선생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그 슬픔과 절망의 무게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

5월24 죽음과 잠 (1) [1]

  • 2007-05-23
  • 조회 수 1863

2007년 5월24 죽음과 잠 (1)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막 5:39) 열두 살 소녀의 죽음으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인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왜 떠들며 우는가,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겠지요. 그런 신앙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문제...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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