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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잡수시는 예수

  • 2006-09-01
  • 조회 수 1627

2006년 9월1일 잡수시는 예수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막 2:15)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은 세리 레위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성서기자는 예수님이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셨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그 당시는 오늘과 달리 먹을거리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불어서 무엇을 먹는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특히 오늘 본문 뒤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보면 먹는 문제는 나사렛 예수 ...

8월31일- 세관에 앉은 사람 (5) [5]

  • 2006-08-31
  • 조회 수 1463

2006년 8월31일 세관에 앉은 사람 (5)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아내와 나는 어젯밤 시몬의 집에서 돌아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거나, 회개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말입니다. 아내도 그렇지만 나도 그런 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물론 어렴풋이는 알겠는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의 그 말은 마치 과녁 중심에 꽂힌 화살처럼 내 ...

8월30일- 세관에 앉은 사람 (4)

  • 2006-08-30
  • 조회 수 1543

2006년 8월30일 세관에 앉은 사람 (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마침내 나는 어제 밤에 예수라는 사람을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나를 찾아왔던 친구가 헤어지면서 알려준 그 집에서 말입니다. 그 집은 예전에 한번 가보았던 곳입니다. 시몬이라는 어부의 집이죠. 나는 어렸을 때 내 친구와 함께 시몬의 집에 놀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와 시몬이 사촌 간이었거든요. 시몬과는 그 뒤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친구...

8월29일- 세관에 앉은 사람 (3)

  • 2006-08-29
  • 조회 수 1575

2006년 8월29일 세관에 앉은 사람 (3)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나는 어젯밤 선잠을 잤습니다. 아무래도 그 낯선 사람 생각이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가 누군지, 그가 한 말과 그가 한 일은 정말 옳은 건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잊을 수가 없네요. 내 영혼의 심층을 뚫어보는 것 같았으니까요. 밤새도록 뒤척이는 나를 보고 아내가 잠결에 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변소에 간다고 한 마디 하고 ...

8월28일- 세관에 앉은 사람 (2)

  • 2006-08-28
  • 조회 수 1928

2006년 8월28일 세관에 앉은 사람 (2)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나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그날도 내 자리에 앉아서 내가 맡은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세관에서 내가 맡은 일은 유대인들에게서 징수한 세금을 상부에 납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서 로마 공무원 시험을 보고 벌써 5년 동안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마음이 복잡합니다. 가버나움에 사는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점점 힘들어지고, ...

8월27일- 세관에 앉은 사람 (1)

  • 2006-08-27
  • 조회 수 1762

2006년 8월27일 세관에 앉은 사람 (1)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든 제자들은 아니고 다섯 명이 그 대상입니다. 베드로 형제, 야고보 형제, 그리고 레위입니다. 앞의 네 사람은 어부였고, 레위는 세리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이 레위는 알패오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의 목록인 마가복음 3:18절에 따르면 알패오의 아들은 야고보입니다. 어느 구절이 옳...

8월26일- 가르침 [2]

  • 2006-08-26
  • 조회 수 1425

2006년 8월26일 가르침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막 2:13) 예수님은 바닷가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평소에 사람들에게 ‘랍비’라는 호칭을 얻었듯이 예수님은 가르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기독교 교육학자들은 healing, teaching, preaching을 예수님의 삼대업무였다고 말하지만, 여기서 가르침과 설교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구분은 가능합니다. 설교는 선포의 성격이 강한 반면에 가르침은 설득의 성격이 강합니다. 선포는 계...

8월25일- 바다 이야기 [4]

  • 2006-08-25
  • 조회 수 1503

2006년 8월25일 바다 이야기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막 2:13) 본문의 바다는 물론 갈릴리 호수를 가리킵니다. 갈릴리 호수와 그 호수를 낀 몇몇 마을, 그리고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벳세다 광야 등등, 갈릴리 호수는 예수님 활동의 실질적인 중심무대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출생지는 베들레헴이지만 그가 성장한 고향은 갈릴리 지역의 한 작은 동네 나사렛입니다. 복음서의 개괄적인 보도에 따르면 때가 되어 출가하신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

8월24일- 놀라움 (6)

  • 2006-08-24
  • 조회 수 1620

2006년 8월24일 놀라움 (6)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일반적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습니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교 신앙의 신비와 놀라움을 모르거나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이 현상은 우리에게 두 가지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냉담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냉담한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교회생활에 게으를 뿐만 아니라 그리...

8월23일- 놀라움 (5)

  • 2006-08-23
  • 조회 수 1885

2006년 8월23일 놀라움 (5)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우리가 놀라움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앞에 놓인 이 세계가 너무 익숙하게 여겨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뜬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해서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족이 있고, 직업이 있고, 친구들도 있습니다. 하늘과 산, 새와 나비는 늘 그렇게 있어왔던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들은 그...

8월22일- 놀라움 (4)

  • 2006-08-22
  • 조회 수 1531

2006년 8월22일 놀라움 (4)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아래의 글은 <복음주의신학 입문>에 나오는 바르트의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그는 “신학적 실존”을 놀라움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잠시 귀를 기울여 봅시다. 누구든지 신학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학에서 손을 떼고 편견 없이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숙고해야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놀라움의 경험...

8월21일- 놀라움 (3)

  • 2006-08-21
  • 조회 수 1485

2006년 8월21일 놀라움 (3)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오늘 본문에서 중풍병자가 침대를 들고 나가는 걸 보고 청중들이 놀란 이유는 그들이 그런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일상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일을 실제로 경험한 그들은 놀랐습니다. 놀람의 실체는 바로 이것입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질 때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근거가 흔들리...

8월20일- 놀라움 (2)

  • 2006-08-20
  • 조회 수 1525

2006년 8월20일 놀라움 (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오늘 그리스도교가 경전으로 삼고 있는 성서 전체는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구약성서 중에서 어느 곳이라도 펼쳐보십시오. 그곳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론 매 구절마다 ‘놀람’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일상이 기록...

8월19일- 놀라움 (1)

  • 2006-08-19
  • 조회 수 1777

2006년 8월19일 놀라움 (1)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일어나 네가 누웠던 침대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중풍병자는 그대로 따랐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신 예수님이나 그 대상이 된 중풍병자가 아니라 그것을 보고 있던 청중들의 시각으로 이 사건을 재구성해야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복음서 기자도 역시 독자들에게 바로 그것을 요구하고 있을 ...

8월18일- 예수의 명령 (3) [1]

  • 2006-08-18
  • 조회 수 1933

2006년 8월18일 예수의 명령 (3)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막 2:11) 중풍병자였던 이 사람에게 예수님이 내리신 세 번째 명령은 “집으로 가라.”입니다. 예수님은 왜 “나를 따르라.” 하지 않고 집으로 가라 말씀하셨을까요? 이 말씀을 자칫 오해하면 이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달리 출가해서 예수님을 따를만한 능력이 없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물로 그런 말씀은 아니겠지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출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 따를 사람은 따르고 집...

8월17일- 예수의 명령 (2)

  • 2006-08-17
  • 조회 수 1635

2006년 8월17일 예수의 명령 (2)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막 2:11) 예수님의 두 번째 명령은 “네 상을 들라.”입니다. 그 상은 그가 실려 왔던 들것, 곧 침대입니다. 병이 나았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충분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침대를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병이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일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조금 더 섬세한 시각으로 이 말씀을 들여다보는 것도 나름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더구나 ‘큐티’ 공부는 객관적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그 말씀을 ...

8월16일- 예수의 명령 (1)

  • 2006-08-16
  • 조회 수 1553

2006년 8월16일 예수의 명령 (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막 2:11) 이제 시나브로 중풍병자 이야기가 마지막 순간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사죄, 신성모독, 치유와 연관된 논란이 끝나고 예수님에게 사죄의 권세가 있다는 사실의 증명만 남은 셈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이 말씀은 좀 의외입니다. “네 병이 다 나았다.” 하고 말씀하실 거로 예상했는데 말입니다. 고대인들은 병의 치유를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이렇게 간접적...

8월15일- 권세(2)

  • 2006-08-15
  • 조회 수 1699

2006년 8월15일 권세(2)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막 2:10) 본문이 말하는 권세는 헬라어 ‘엨수시아’의 번역입니다. 이것의 가장 일반적인 영역은 ‘authority’, ‘supernatural power’, ‘government’입니다. 일반적으로 ‘권위’로 번역됩니다. 루터는 그 단어를 ‘Vollmacht’(폴마흐트: 권능)라고 번역했더군요.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언행에 특별한 권위가 깃들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권위는 단지 기적을 행한다는 사실에만 있는 게 아니라 ...

8월14일- 권세(1)

  • 2006-08-15
  • 조회 수 2038

2006년 8월14일 권세(1)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막 2:10)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의해서 인자로 일컬어진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죄의 권세가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론의 핵심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이에 대한 증거는 중풍병자 치유입니다. 그러나 카리스마가 강한 구약의 예언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고대인들은 위대한 스승들에게서 이런 기적적인 사건들을 자주 경험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예수님의 사죄 권위를 무조건 담보하...

8월13일- 땅에서

  • 2006-08-13
  • 조회 수 1411

2006년 8월13일 땅에서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막 2:10) “땅에서”라는 문구는 오늘 본문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걸 빼놓고 읽어보십시오.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병행구도 역시 이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걸 보면 나름으로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게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정확하게 찾아내기는 쉽지 않지만, 성서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는 공부를 한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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