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6월2일- 권위 있는 가르침

  • 2006-06-02
  • 조회 수 1998

2006년 6월2일 권위 있는 가르침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막 1:22) 마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교훈에 놀란 이유를 그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서기관들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게 좀 이상합니다.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전문적으로 가르치던 사람들이었거든요. 오늘의 신학 박사쯤 되는 그들의 가르침이야말로 권위가 담보되어 있고, 거꾸로...

6월1일- 놀라운 가르침

  • 2006-06-01
  • 조회 수 1641

2006년 6월1일 놀라운 가르침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막 1:22) 예수님의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무식한 목수의 아들이 상당히 고급스러운 종교의 본질을 가르쳤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이 놀랐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들었기 때문에 놀랐을까요? 마가는 그것에 대해서 별로 상세한 말을 하지 않고, 단지 ‘놀랐다’는 말만 전합니다. 아마 앞으로 자신이 기록해야 할 마가복음서의 방향을 여기서 암시하는 ...

5월31일- 가르침 [1]

  • 2006-05-31
  • 조회 수 1586

2006년 5월31일 가르침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다는 말은 그가 랍비(선생) 역할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 세미나’에 속한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예수님은 문맹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던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수준을 생각한다면 이런 주장의 개연성은 높습니다. 더구나 복음서도 예수님이 무슨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복음서가 전달하고 있는 예수님의 ...

5월30일- 안식 (2) [3]

  • 2006-05-30
  • 조회 수 1767

2006년 5월30일 안식 (2)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저는 어제의 묵상 말미에서 우리가 참된 안식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약간 모순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안식을 얻으려는 것인데, 그걸 두려워한다면 우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는 거니까요. 형식으로는 그 말이 옳습니다만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 자신을 속일 정도로 은밀하게 이런 두려움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호흡을 가다듬고 천...

5월29일- 안식 (1)

  • 2006-05-29
  • 조회 수 1735

2006년 5월29일 안식 (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아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셨다는 뜻일까요?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런 진술과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좀 곤란합니다. 안식일 논쟁의 핵심도 따지고 보면 안식일을 율법적인 의미에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식일을 민중들에게 억압적으로 적용하지 ...

5월28일- 영성과 소유 (2)

  • 2006-05-28
  • 조회 수 1676

2006년 5월28일 영성과 소유 (2)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막 1:20)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그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하던 거상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외아들인지, 큰 아들인지, 또는 여러 아들 중의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후계자였다는 소문이 많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 2세였던 셈이지요. 프란시스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출가합니다. 그리고 탁발수도회를 창설합니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도 준비하지 않은 채 오직 구걸의 방식으로 살아가...

5월27일- 영성과 소유 (1)

  • 2006-05-27
  • 조회 수 2513

2006년 5월27일 영성과 소유 (1)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막 1:20) 본문의 상황 설명을 근거로 추정해본다면, 야고보와 요한은 경제적으로 꽤 괜찮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 품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물론 이 본문만으로 아버지가 선주이고 그 밑에 여러 명의 품꾼을 쓸 정도로 넉넉한 집안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마가복음 기자가 시몬 형제의 소명 장면에서는 단순히 그물을 버렸다고만 묘사한 것에 비해서 여...

5월26일- 야고보와 요한 [2]

  • 2006-05-26
  • 조회 수 1949

2006년 5월26일 야고보와 요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막 1:19)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도의 대표를 베드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3명의 수제자에는 베드로를 포함해서 야고보와 요한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산위에서 신비한 모습으로 변화하던 그 순간에 함께 했으며, 공생애 마지막에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스럽게 기도하실 때도 함께 했습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가 먼저 부름을 받았고, 그 뒤로 야고보와 요한...

5월25일- 버림과 따름 (3) [3]

  • 2006-05-25
  • 조회 수 1725

2006년 5월25일 버림과 따름 (3)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막 1:18) 우리의 현실적인 신앙에서 “버림”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니까, 이 문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유와 같은 복음찬송에서 볼 수 있듯이 무언가를 크게 버린 것처럼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버렸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딱히 내세울게 없을 겁니다. 물론 여기에도 개인 차이가 큽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을 것...

5월24일 - 버림과 따름 (2) [1]

  • 2006-05-24
  • 조회 수 1850

2006년 5월24일 버림과 따름 (2)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막 1:18) 막 1:18절 말씀에서 “따름”이 핵심이긴 하지만 “버림”과 변증법적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어제 스쳐지나가듯이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서 자기 영혼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그 이외의 것을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버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본문의 묘사를 그대로 따른다면, 시몬 형제는 그물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물은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도구였습니다. 매일 그물을 챙겨 들고 배를 타고 고기...

5월23일- 버림과 따름 (1) [2]

  • 2006-05-23
  • 조회 수 2045

2006년 5월23일 버림과 따름 (1)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막 1:18)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을 들은 시몬 형제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시몬 형제의 그물을 왜 언급했을까요? 사실 어떤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긴박한 순간에 그물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말입니다. 여기에 마가의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아닌지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그것의 명확한 실체를 잡아내기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신앙적인 차원에서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겠지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

5월22일 “나를 따라오라!” (3) [3]

  • 2006-05-22
  • 조회 수 1684

2006년 5월22일 “나를 따라오라!”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예수님은 왜 시몬 형제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본문은 그 대답을 정확하게 제시합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낚는다는 표현이 우리에게 썩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고기를 낚는 것처럼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인다는 의미일 텐데, 번역자들이 그걸 우리말로 아름답게 표현할 길이 없었나 봅니다. 이미 우리에게 잘 적용된 용어...

5월21일- “나를 따라오라!” (2)

  • 2006-05-21
  • 조회 수 1776

2006년 5월21일 “나를 따라오라!”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나를 따라오라!”는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두 번째 단어는 “따라오라”입니다. 예수님은 “네 속의 부처를 찾으라!”라거나 “네 내면의 평화를 확보하라!”고, 또는 “네 사랑의 능력을 키워라!”가 아니라 아주 명백하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두 번째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요? 어제의 말씀묵상에서도 한번 ...

5월20일- “나를 따라오라!” (1) [2]

  • 2006-05-20
  • 조회 수 2292

2006년 5월20일 “나를 따라오라!”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난 2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의지해서 세속에서 이루고 싶었던 모든 삶을 포기하고 수도원으로, 오지로 떠난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인류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위인들의 어록에서 바로 이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말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명령문은 두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나’를 ‘따라...

5월19일- 말의 힘

  • 2006-05-19
  • 조회 수 2029

2006년 5월19일 말의 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6) 예수님은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 형제들을 보시고 이렇게 말을 거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예수님이 구체적인 사람을 보고 말씀하신 첫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군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소리를 내어 말씀하셨답니다. 인간은 언제부터 말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고고학의 도움을 받아야하겠지만, 우리는 정확한 시대를 알 필요가 없으니까 대신 신생아를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

5월18일- 일상의 힘 [2]

  • 2006-05-18
  • 조회 수 2064

2006년 5월18일 일상의 힘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막 1:16)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과 시몬 형제와의 만남을 아주 간단하게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고기를 잡고 있던 그 형제를 보았다고 합니다. 본문이 정확하게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봐도 예수님은 매일 새벽마다 그 해변을 산책하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시몬 형제를 한 두 번 본 게 아닐 겁니다. 어쩌면 그들...

5월17일- 회개와 복음 (4) [3]

  • 2006-05-17
  • 조회 수 2145

2006년 5월17일 회개와 복음 (4)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어제 묵상의 마지막은 신앙적인 업무를 대폭적으로 축소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관심을 쏟는 것이 회개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대목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모이기에 힘써야 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할 마당에 그런 일들을 줄이라는 게 말이 될까요?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 그런 축소가 왜 회개인가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오해되는 것은 그리스도인...

5월16일- 회개와 복음 (3) [1]

  • 2006-05-16
  • 조회 수 2230

2006년 5월16일 회개와 복음 (3)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오늘 본문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면 회개는 복음을 믿는 것의 전제 조건입니다. 혹은 회개가 복음의 선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바꾼다는 의미의 회개 경험이 없다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논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 같은 노파심이 들어, ...

5월15일 회개와 복음 (2)

  • 2006-05-15
  • 조회 수 1996

2006년 5월15일 회개와 복음 (2)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회개는 이 땅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하늘로 관심의 축을 옮기는 신앙적 태도이며 결단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주 공간의 어느 한 지역을 복음서가 말하는 그런 하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하늘은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곧 하늘이 가까이 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까이 온 그 하늘은 우주 물리학적인 차원에서의...

5월14일 회개와 복음 (1) [2]

  • 2006-05-14
  • 조회 수 2696

2006년 5월14일 회개와 복음 (1)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를 뜻한 ‘메타노이아’라는 말은 세례요한이 선포한 설교의 핵심이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서 이 회개라는 사상을 배웠다는 의미일까요? 우리는 그런 내막을 정확하게 풀어낼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먼저 출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세례 요한에게서 나름대...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