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1일, 목
인자하심과 성실하심(3)
우리말 성경에 나오는 인자하심을 루터는 Gnade(은혜)로 번역했다고 앞에서 짚었다. 공동번역은 사랑이라고 표기했다. 인자, 은혜, 사랑은 다 통하는 개념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삶과 삶의 모든 조건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선물은 당연히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우리가 기울인 노력의 보상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연봉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적거나 자신의 원하는 일들이 이뤄지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더 나아가서 짜증스럽다. 자신이 원하는 것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분류하기도 힘들다. 내가 잘 알고 있는 목회의 경우에는 교회가 자기 생각처럼 성장하지 않거나 신자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다 자기 기준이다. 자기의 기준만 낮추면 아무 문제도 아니다.
우리가 이미 좋은 것을 다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깨다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더 이상 불평할 게 없다. 편안히 숨 쉬고 걷고 노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기만 하면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욥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 앞에서 자신의 모든 불평과 불만을 넘어설 수 있었다. 이런 삶의 태도를 무기력하다거나 숙명주의적이라고 오해할 분들은 없을 것으로 본다.
3번째 문단 첫 줄 단어 중(굵은체)에 "우리가 이미 좋은 것을 다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깨다는 "의 '깨다는'은 '깨닫는'의 오타로 생각됩니다만.....,
오자를 지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목사님 글들은 기록으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저의 입장에서 바른 표기로 가록되길 바라는 마음에 말씀드리나, 혹 불편해 하시지 않을까 염려 되기도 합니다.
오자와의 숨바꼭질을 하다 느꼈지만, 오자는 교만한 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고로 저는 교만한 마음으로 지적하는게 아니라는 변명...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