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일 귀신 들린 딸

조회 수 2055 추천 수 10 2008.02.03 23:18:56
2008년 2월4일 귀신 들린 딸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에 엎드리니 (막 7:25)

예수님이 두로 지방에 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한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그 발아래 엎드렸다고 합니다. 이 여자는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두었습니다. 어린 딸이 귀신 들렸다니, 이것보다 더 애처로운 일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왜 이리도 애처로운 일들이 많은지요. 소아 암 병동에 가보면 말문이 막힙니다. 장애로 태어난 아이들의 미래는 도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요. 풍요롭고 화려한 문명이 꽃을 피우고 있는 오늘날 여전히 아동을 성 노리개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이 있습니다. 푼돈을 받으면서 양탄자를 짜거나 벽돌을 나르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얼마 전에 여자 아이 두 명이 행방불명되었는데, 아직 아무런 단서도 못 잡았습니다. 이 아이들의 부모가 어떤 심정일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엄마가 예수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 여자에게는 이것 밖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 여자는 딸아이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모든 걸 다 했겠지만, 아무런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하나님 경험은 바로 이 여자와 같은 심정에서만 가능합니다. 유유자적하는 소풍길이 아니라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이 여자처럼 그것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영혼의 투쟁 길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절박한 게 없겠지요? 우리는 상대적으로 풍족하고 편안하니까 말입니다. 그건 뭘 모르는 소리입니다. 만약 그 상황을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악!’ 하고 고함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늘 존재의 막다른 골목에 접하고 있습니다. 그걸 외면할 뿐입니다. 우리의 상투적인 삶의 방식들이 우리의 영혼을 게으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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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7]강병구

2008.02.04 13:22:34

아멘!

[레벨:6]ldg

2008.02.04 17:05:47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이 여자처럼 그것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영혼의 투쟁, 하나님 경험은 바로 이 여자와 같은 심정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늘 존재의 막다른 골목에 접하고 있습니다. 그걸 외면할 뿐입니다.
우리의 상투적인 삶의 방식들이 우리의 영혼을 게으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귀한 말씀에 은혜받습니다. 감사해요 목사님~^^

[레벨:2]운몽

2008.02.04 21:15:56

어제 주일예배를 마치고 교우들과 함께 점식식사를 거의 다 먹어가는데 집사님아들이 뛰어 오더니 밖에 아저씨 한분이 오셨는데 밥을 먹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을 안으로 들어 오시게 해서 밥과 국으로 대접했는데 그분의 말씀이 어제(토) 아침부터 굶었을뿐 아니라 일을 못해서 여인숙에도 있을 수가 없어서 밖에서 잤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분앞에 밥과 국이 놓여지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시더군요. 교회니까 기도를 드렸는지, 아니면 그분이 전에 사셨다는 마산에서 신앙생활을 하셨던 분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보여주시기 위함은 아닌 것으로 느껴지더군요. 그분곁에 않아서 속으로 저 같으면 기도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백합니다만 목사님이 말씀하신 '우리에게는 그런 절박한게 없겠지요?' 라는 말에서 걸려서 그분 생각이 났고 속마음이 복잡해서 나머지 글을 다 읽을 수가 없게 되는군요.

[레벨:0]엉클캐빈

2008.02.04 21:42:12

또 한편, 드는 생각은 그런 절박한 심정을 가져야만 하는 속시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바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어쩌면 이미 그 절박함이 내 안에 있지만, 그것을 외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것을 절박하다고 느끼고...그 사건에 사로잡힌 그 한 순간 순간은...매 초 단위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모든 고통가운데 신음하는 분들의 삶에 주님의 평강이 한순간만이라도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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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8.02.04 22:33:05

아멘!
목사님, '늘 존재의 막다른 골목에 접해 있는 우리'가 그 상황을 직시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혹시..우리가 (자신, 아니면 하나님에 대해서도)극도의 상실감,회의,부정..이런 정서가 먼저 올 수도 있나요?
그리고 그런 정서안에서 영혼의 투쟁이 시작될 수도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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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2.04 23:01:47

굳이 실존철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사실 백척간두에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 경험은 바로 그 막다른 골목에서 가능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을 보세요.
바울의 절규를 보세요.
바울이 왜 유대-기독교의 절충주의와 단절하고
오직 예수라는 극단으로 치달았는지 이해하려면
그가 의 문제를 얼마나 절실하게 생각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거스틴, 루터, 웨슬리, 에크하르트, 바르트 등등,
지난 기독교 역사의 모든 위대한 신학자와 영성가들은
그런 절대의 세계에 직면해서 살았습니다.
영적 감수성이 투명하다는 뜻이지요.
저를 포함해서 우리 평범한 기독교인들의 영성은
다음과 같이 둘 중의 하나입니다.
1. 세상에 취해서 흐려진 영성
2.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 과민한 영성
우리가 나가야 할 제 삼의 길을 아래와 같습니다.
3. 하나님 나라와 그 통치에 예민한 영성

클라라 님의 질문은 제 영역을 벗어난 것이라 대답하기가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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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8.02.05 11:16:48

목사님, 제가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존재의 막다른 골목'에 대해서 오해 한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말씀드린 것은 2번의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 과민한 영성'쪽에 기울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어서 여쭈어 봤는데.. 큰 답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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