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6일 고르반(7)

조회 수 1474 추천 수 12 2008.01.05 23:26:02
2008년 1월6일 고르반(7)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막 7:13)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는 예수님의 비판은 과격하면서도 날카롭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과격하고, 그것이 아주 정확하다는 점에서 날카롭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비판은 오늘 우리 한국교회 설교자들에게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닐는지요.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문적으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설교자의 모든 실존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한 경우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신앙경험을 전하거나 심지어 신앙적인 무용담을 전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는 말은 설교의 중심이 하나님에게 놓이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놓였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은혜 중심주의로, 또는 교회성장 지상주의로 나타나는데, 어느 쪽이든지 사람이 중심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런 사태는 설교자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관한 설교를 듣지 않으려는 청중들의 책임도 막중합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에 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이루어가는 종교적인 업적에만 매달립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자리합니다.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설교비평 작업을 하면서 바로 위의 사실 앞에서 늘 놀라곤 했습니다. 종교적 열정이 산을 옮길 것 같은 설교 현장에서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극도로 축소되어 있더군요. 저는 그런 상황을 존재망각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패러디해서 하나님 망각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려면 이런 상황을 예민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판을 받은 바리새인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흔하게 폐기하고 있으니까요.

[레벨:2]둘로스

2008.01.06 23:33:18

비슷한 주제 혹은 내용이 많이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 주제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근본적으로 텍스트에서 벗어난 담론, 교훈적, 규범적인 설교가 넘쳐나는데서 오는 안타까움의 발로라고 여겨집니다. 목사님의 글에서 거의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동의 합니다. 저도 설교자이지만 때로는 저의 설교를 제가 생각해도 끔찍하게 여겨집니다. 틀리면 틀리는 데로 함께 구덩이에 빠지기 때문이고 맞다해도 내가 전한 말씀대로 내가 살아내는가?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은혜로 지금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앞으로 더욱 더 근신하고 자신을 깨워야할 것 같습니다.

한편, 다양한 해석방법과 분파, 책들이 난무하는 것은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설교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행동하는 신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설교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들이지 부분별하게 설교자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식있고 격식있는 자라면 누구나 인정합니다. 현대교인들이 설교자의 메시지를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침소봉대하는 격입니다. 정말로 목사님들의 말씀이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방만하게 신앙생활할까요? 전통적인 교회에서 30여년 신앙생활하였지만 (전임목회자 4년 포함) 저 또한 평신도때 그렇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뵈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말씀을 받는 자세가 진지하다 해서 100%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하지 않습니다. 만약 설교자로서 자신이 하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순종하라고 가르치는 자가 있다면 그 자야말로 삭군이며 과대망상증 환자일 것입니다. 설교자도 얼마든지 실수 할 수 있고 잘못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웬만한 정통 신학을 한 목회자들은 인정합니다. 일부 과잉충성하는 자들과 과욕을 부리는 사역자들로 있지만 제가 경험하고 만나는 목회자들은 대부분 겸손하고 인격적이며 항상 배우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선한 사례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하고 가르치는지 사례를 제시한다면 교정의 여지가 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QT에는 우리의 삶과 사역에서 좀 더 실천적이고 긍정적인 나눔이 올라오길 개인적으로 소망합니다. 무론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에서 출발해야겠지만 어디로 나아가야할 지 방향제시 같은 거 말이지요...
정목사님..딴지 거는 거 아니니까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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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가을소풍

2008.01.07 16:09:49

둘로스 목사님...
저도 딴지 걸고픈 마음은 없습니다만...

전 개인적으로 이 QT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하는지 사례를....' 제시하시거나
'삶과 사역에서 좀 더 실천적이고 긍정적인 나눔....' 을 보여주시거나
'어디로 나아가야할 지 방향을....' 가르쳐 주시는 일에
과도하게 집중하지 않으시는 모습이 오히려 좋습니다.

말씀과 신앙의 깊이 속으로 들어가다보면
스스로 깨달은 분량만큼
또한 각자가 자리한 모습에 따라
구체적인 삶의 실천들이 자연스럽게 고민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답을 찍어주는 쪽집게 강사가 아닌
스스로 문제를 풀 실력을 길러주는 교사가
참된 스승일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풍토에선 그런 스승을 뵙기가 참 힘들다는 생각도 들고요.

[레벨:2]둘로스

2008.01.07 17:10:43

가을소풍님..감사합니다. 저도 여기서 어떤 쪽집게 같은 대답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확실히 탁월한 스승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본'을 보이는 것은 더 탁월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정목사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잘못일까요?
연배도 한참 위이시고 어떻게 고민하시며 살아가시는가 좀 더 삶 속에서 밀착되고
용해된 말씀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접어야 한다면 할 수 없구요..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 13:15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참음의 본을 삼으라." 약 5:10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빌 3:17

말씀이 이끄는 다비아가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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