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비

조회 수 2848 추천 수 0 2013.10.30 23:15:14

10월30일(수)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 나오는

세리의 기도는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했다는 뜻이다.

 

말이 그렇지 저런 기도를 드리기가 쉽지 않다.

겉으로 기도를 드릴 수는 있겠으나

그런 기도의 영성으로 살아가기는 어렵다.

그런 삶이 무엇인지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손에 잡히는 건 주로 실증적으로 확실한 것들이다.

그것이 뭔지는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우리 모두가 붙잡으려고 맹렬히 따라가는 그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 것들로부터 우리가 완전히 초월할 수도 없다.

특히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오늘의 시대에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런 현실은 어쩔 수 없으나

그런 삶이 우리의 영혼까지 잠식해 들어옴에 따라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는 삶이 공허하게 되었다는 게 문제다.

 

어떤 사람은 저런 기도를 입에 붙이고 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런 기도의 영성에 들어갔다는 보장은 없다.

자칫 저런 기도가 상투성에 떨어지면

삶의 무게를 벗어버리는 도피로가 될 때도 있다.

자기의 무책임한 삶을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로 벗어나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비가 무엇인지 모르는 태도다.

본회퍼의 말로 바꾸면 값싼 은혜다.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하는 신앙은 공중에 떠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실존을 철저하게 뚫어볼 때만 가능한 영성이다.

그 실존은 인간의 한계 상황을 가리킨다.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해도, 아무리 인생을 엔조이 해봐도,

아무리 맛난 걸 많이 먹어도 참된 만족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 한계상황이다.

거기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궁극적으로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퀴리에 엘레이송이라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라면

오늘 하루의 내 삶도 불가능했다.

호흡과 먹는 일도 다 하나님의 자비이다.

내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온통 주변으로부터 빚진 것이니

내가 어찌 하나님의 자비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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