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301)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솔직한 사람이다. 베드로를 닮았다. 우리는 그가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의심이 많은 게 아니라 질문이 많은 것이다. 질문이 많아야 진리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간다. 도마의 진술은 그 의미가 명료한 것 같지만 좀 까다로운 편이다. 그는 예수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에 그 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디로 간다는 사실보다는 에 방점이 있는 발언이다. 길은 헬라어 호도스의 번역이다. 4절과 5절과 6절에 연달아 이 단어가 나온다.

호도스는 동양식 표현으로 도(). 노자의 도덕경첫 문장은 이렇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를 도라고 규정하면 그건 이미 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 마디로, 도는 사람에 의해서 규정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성경의 진술과 통한다. 요한복음 기자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몰랐는데도 비슷한 개념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궁극의 진리로 들어가면 서로 만날 수 있다는 뜻이 아닐는지.

도마처럼 우리도 역시 인생의 궁극적인 길을 모른다. 왜 사나? 우리의 궁극적인 미래는 어디인가? 세상에서 얻어들은 풍월로는 대충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안다고 여기기에 이에 관해서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왜 사는지?”에 관해서 아무리 깊이 생각해도 확실한 대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생각을 피하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물리학자들이 시간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알려고 노력하듯이 인생의 궁극적인 길을 우리는 끝없이 묻고 물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가야 할 길의 방향이 잡힐 것이다. 세상 사람들과 달리 우리 기독교인은 그 길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모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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