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5일- 구멍 난 지붕

조회 수 3263 추천 수 27 2006.07.25 23:16:17
2006년 7월25일 구멍 난 지붕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막 2:4)

중풍병자를 들것으로 옮겨온 네 사람은 예수님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거처하신 그곳은 그야말로 만원사례입니다.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 줄 수 없으니 사람들이 많다고 늘 좋은 것은 아니군요. 이 사람들은 지붕 뒤로 올라갔습니다. 마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지붕을 뜯어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냈다고 하네요. 유대인들의 집이 그렇게 순식간에 지붕을 뜯어낼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다는 건지, 아니면 이들의 극성이 대단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상황이 아주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림처럼 묘사되어 있는 이 장면은 마치 키가 작아 사람들 뒤에서 예수님을 쳐다볼 수 없다고 생각한 삭개오가 뽕나무 위로 올라간 장면과 비슷합니다. 삭개오는 적극적으로 액션을 취한 건 아니지만 결국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오늘 지붕을 뜯어낸 사람들의 액션은 매우 적극적입니다. 삭개오보다 이들의 상황이 더 절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지붕에 올라간 이 네 사람이 지붕에 구멍을 냈을 그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장면은 불경스럽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올라앉은 형국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외면적인 모양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과 예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지붕에 생긴 구멍이 중요합니다. 하늘로부터 땅으로 뚫린 구멍 말입니다. 이 구멍은 그들과 예수님 사이를 소통시켜주는 통로이며, 다리였습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통로나 있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착각도 있고, 바른 생각도 있을 겁니다. 이 소통의 문제를 가장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지요. 기도 중에 어떤 소리를 듣거나 모양을 보는 것이 곧 주님과의 만남이라고 말입니다. 또는 기도한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진 걸 보고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주님과의 영적인 소통에 대한 증거로 제시됩니다. 반면에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로 주님과 소통하고 있는지 아닌지 불안하게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신비적 방식이 아니라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게 곧 주님과 소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일반화해서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본질인 주님과의 소통이라는 게 보편적인 성격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매우 개인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실제로 그런 경험이 없으면서도 얼마든지 사람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게 좋겠군요. 시인들은 사물의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 구름, 별, 소리, 죽음, 존재 등등, 자신 앞에 직면해 있는 어떤 세계로부터 울려나는 비밀스러운 소리를 듣고 그것을 언어로 형상화합니다. 그들과 세상 사이에 놓인 통로를 다른 사람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짜 시인도 많습니다. 생명의 깊이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으면서도 단지 언어 기술로 시를 쓰는 사람들 말입니다. 진짜 시인과 가짜 시인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그걸 구별해낼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생명과 조우한 경험이 있는 진짜 시인만 진짜 시(詩)와 가짜 시를 구별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직 영적인 시인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우리는 스승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어거스틴,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 에크하르트, 루터, 칼빈, 쉴라이에르마허, 헤겔, 바르트, 틸리히 같은 스승들의 글을 읽는 게 영적인 길을 뚫는 가장 좋은 공부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주님과 소통할 수 있는 구멍이 뚫릴 겁니다.

주님, 우리가 뜯어내야 할 지붕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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