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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12월12일 예수의 친족

  • 2006-12-12
  • 조회 수 1817

2006년 12월12일 예수의 친족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 3:21) 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적인 이야기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척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의 친족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나왔다는 오늘 본문은 아주 특이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지금 예수님이 머물고 있는 곳은 가버나움입니다.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상당히 먼 곳입니다. 혹시 예수님을 찾아온 친족들은 재(在)가버나움 나사렛 향우회원인가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31절에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

12월11일 집으로 모인 무리

  • 2006-12-11
  • 조회 수 2217

2006년 12월11일 집으로 모인 무리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막 3:20) 3장19절은 세 문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집에 들어갔다. 무리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 이 집은 물론 가버나움에 있는 어떤 사람의 집입니다. 베드로의 집일 수도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제자의 집일 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신 이유는 식사와 휴식이었겠지요.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밖에서의 일이 끝나면 당연히 집에 들어가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

12월11일 집으로 모인 무리

  • 2006-12-11
  • 조회 수 1462

2006년 12월11일 집으로 모인 무리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막 3:20) 3장19절은 세 문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집에 들어갔다. 무리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 이 집은 물론 가버나움에 있는 어떤 사람의 집입니다. 베드로의 집일 수도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제자의 집일 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신 이유는 식사와 휴식이었겠지요.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밖에서의 일이 끝나면 당연히 집에 들어가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

12월10일 열두 제자 (11)

  • 2006-12-10
  • 조회 수 2318

2006년 12월10일 열두 제자 (11)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막 3:19) 열두 제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가룟 유다입니다. 개역 성서는 유다의 별칭을 ‘가룟’이라고 부르고, 공동번역은 가리옷이라고 하고, 루터 번역은 이스카리오트라고 합니다. 그닐카의 설명에 따르면 앞에서 언급된 가나안은 열광주의자라는 뜻이고, 이스카리오트는 시카리(무법자, 칼잽이)라는 뜻, 또는 “거짓말쟁이”라는 의미로 새길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스카리오트는 유다가 배신적인 행위를 한 다음에 교회 공동체로부터 얻은 별칭이라고 ...

12월10일 열두 제자 (11)

  • 2006-12-10
  • 조회 수 1660

2006년 12월10일 열두 제자 (11)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막 3:19) 열두 제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가룟 유다입니다. 개역 성서는 유다의 별칭을 ‘가룟’이라고 부르고, 공동번역은 가리옷이라고 하고, 루터 번역은 이스카리오트라고 합니다. 그닐카의 설명에 따르면 앞에서 언급된 가나안은 열광주의자라는 뜻이고, 이스카리오트는 시카리(무법자, 칼잽이)라는 뜻, 또는 “거짓말쟁이”라는 의미로 새길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스카리오트는 유다가 배신적인 행위를 한 다음에 교회 공동체로부터 얻은 별칭이라고 ...

12월9일 열두 제자 (10)

  • 2006-12-09
  • 조회 수 2474

2006년 12월9일 열두 제자 (10)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막 3:18) 앞에서 세 명의 제자가 거명됐고, 17절에는 8명이 거명됩니다.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야고보(2), 다대오, 시몬(2)이 그들입니다. 여기서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이고, 빌립은 그들과 같은 동네 출신이며(요 1:44), 야고보(2)는 알패오의 아들이며, 시몬(2)은 시몬 베드로와 동명이인입니다. 그런데 알패오의 아들이 야고보(2)라는 진술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레...

12월9일 열두 제자 (10)

  • 2006-12-09
  • 조회 수 1799

2006년 12월9일 열두 제자 (10)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막 3:18) 앞에서 세 명의 제자가 거명됐고, 17절에는 8명이 거명됩니다.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야고보(2), 다대오, 시몬(2)이 그들입니다. 여기서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이고, 빌립은 그들과 같은 동네 출신이며(요 1:44), 야고보(2)는 알패오의 아들이며, 시몬(2)은 시몬 베드로와 동명이인입니다. 그런데 알패오의 아들이 야고보(2)라는 진술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레...

12월8일 열두 제자 (9) [2]

  • 2006-12-08
  • 조회 수 2626

2006년 12월8일 열두 제자 (9)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막 3:16) 병행구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베드로에 이어서 그의 동생인 안드레를 거명하는데 반해 마가복음은 베드로 뒤로 야고보와 요한을 거명합니다. 예수님은 이들 형제에게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덧붙이셨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서 이들 세 명,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본명 이외의 이름을 받은 셈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들 세 명에게만 특별...

12월8일 열두 제자 (9) [2]

  • 2006-12-08
  • 조회 수 1528

2006년 12월8일 열두 제자 (9)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막 3:16) 병행구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베드로에 이어서 그의 동생인 안드레를 거명하는데 반해 마가복음은 베드로 뒤로 야고보와 요한을 거명합니다. 예수님은 이들 형제에게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덧붙이셨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서 이들 세 명,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본명 이외의 이름을 받은 셈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들 세 명에게만 특별...

12월7일 열두 제자 (8)

  • 2006-12-07
  • 조회 수 2812

2006년 12월7일 열두 제자 (8)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막 3:16) 열두 제자 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거명된 사람은 역시 시몬 베드로입니다. 원래의 이름은 시몬인데, 예수님이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보태주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전승에 따르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하는 시몬의 신앙고백이 있을 후에 예수님이 그에게 이런 이름을 주셨다고 합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 16:18)는 예수님의 말씀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12월7일 열두 제자 (8)

  • 2006-12-07
  • 조회 수 1567

2006년 12월7일 열두 제자 (8)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막 3:16) 열두 제자 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거명된 사람은 역시 시몬 베드로입니다. 원래의 이름은 시몬인데, 예수님이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보태주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전승에 따르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하는 시몬의 신앙고백이 있을 후에 예수님이 그에게 이런 이름을 주셨다고 합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 16:18)는 예수님의 말씀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12월6일 열두 제자 (7)

  • 2006-12-06
  • 조회 수 2345

2006년 12월6일 열두 제자 (7)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5) 어제 설명한 전도와 축귀 능력은 일단 구별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똑같습니다. 이 양자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로 변증되어야 하고, 동시에 축귀의 능력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한 가지 사실, 즉 가까이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그 능력에 사로잡히신 분이었습니다. 복음서의 비유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주제로 한 것입니다. 네 종...

12월6일 열두 제자 (7)

  • 2006-12-06
  • 조회 수 1288

2006년 12월6일 열두 제자 (7)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5) 어제 설명한 전도와 축귀 능력은 일단 구별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똑같습니다. 이 양자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로 변증되어야 하고, 동시에 축귀의 능력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한 가지 사실, 즉 가까이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그 능력에 사로잡히신 분이었습니다. 복음서의 비유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주제로 한 것입니다. 네 종...

12월5일 열두 제자 (6)

  • 2006-12-05
  • 조회 수 2353

2006년 12월5일 열두 제자 (6)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5)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준 두 번째 사명은 “귀신을 내쫓는 권능”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명인 전도와 두 번째인 축귀의 권능은 약간 성격이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라면, 축귀는 악한 영을 내쫓는 능력입니다. 전자는 그야말로 사명이고, 후자는 권한일지 모릅니다. 전자는 언어의 세계이고, 후자는 능력의 세계입니다. 전자를 논리라고 한다면, 후자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

12월5일 열두 제자 (6)

  • 2006-12-05
  • 조회 수 1595

2006년 12월5일 열두 제자 (6)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5)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준 두 번째 사명은 “귀신을 내쫓는 권능”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명인 전도와 두 번째인 축귀의 권능은 약간 성격이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라면, 축귀는 악한 영을 내쫓는 능력입니다. 전자는 그야말로 사명이고, 후자는 권한일지 모릅니다. 전자는 언어의 세계이고, 후자는 능력의 세계입니다. 전자를 논리라고 한다면, 후자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

12월4일 열두 제자 (5)

  • 2006-12-04
  • 조회 수 2342

2006년 12월4일 열두 제자 (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4) 예수님이 제자들을 밖으로 내보낼 때 맡긴 구체적인 사명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도”입니다. 우리말 성서에 “전도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케뤼소”는 proclaim, make known, preach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what is preached, message, proclamation이라는 뜻의 “케뤼그마”와 이웃지간이기도합니다. 이렇게 볼 때 전도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임했다고 하는 사실을 전하는 ...

12월4일 열두 제자 (5)

  • 2006-12-04
  • 조회 수 1714

2006년 12월4일 열두 제자 (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4) 예수님이 제자들을 밖으로 내보낼 때 맡긴 구체적인 사명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도”입니다. 우리말 성서에 “전도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케뤼소”는 proclaim, make known, preach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what is preached, message, proclamation이라는 뜻의 “케뤼그마”와 이웃지간이기도합니다. 이렇게 볼 때 전도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임했다고 하는 사실을 전하는 ...

12월3일 열두 제자 (4) [2]

  • 2006-12-03
  • 조회 수 2161

2006년 12월3일 열두 제자 (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4) 어제 저는 예수님과 존재론적으로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먼데 있지 않습니다. 존재를 우리가 외면하면서 살아가는데 매우 익숙해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의 일상과 온 우주에 가득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별로 감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여기에” 우리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그 은총이 존재하고 있다...

12월3일 열두 제자 (4) [2]

  • 2006-12-03
  • 조회 수 1477

2006년 12월3일 열두 제자 (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4) 어제 저는 예수님과 존재론적으로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먼데 있지 않습니다. 존재를 우리가 외면하면서 살아가는데 매우 익숙해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의 일상과 온 우주에 가득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별로 감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여기에” 우리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그 은총이 존재하고 있다...

12월2일 열두 제자 (3) [1]

  • 2006-12-02
  • 조회 수 2123

2006년 12월2일 열두 제자 (3)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4) 열두 제자에게 부여된 사명은 우선 예수님 곁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라는 마가의 표현은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요? 저자가 별 생각 없이 한 말일 수도 있겠지요. 본문의 맥락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큐티의 차원에서 이 진술의 의미를 한번 짚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사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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