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1일 두려움과 믿음

조회 수 1731 추천 수 20 2007.05.20 23:13:27
2007년 5월21일 두려움과 믿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막 5:36)

본문은 딸의 부음을 들은 회당장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습니다. 반응은 둘째 치고 입 벙긋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지금 회당장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복음서의 보도 방식은 늘 이렇습니다. 오직 예수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예수님의 행위를 드러나게 할 경우로 한정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회당장의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곧 회당장이 깊은 두려움에 빠졌다는 의미이겠지요. 딸의 죽음 앞에서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향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요? 지금 우리는 이 이야기의 전개과정을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주님의 말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두려운 사건 앞에서 어떻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건가요?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그 사태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거나 전혀 다르게 인식해야만 하겠지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성서기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두려움이 믿음을 통해서만 극복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믿음은 곧 예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광신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딸이 죽은 상황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믿음마저도 그분의 은사입니다. 은사가 아니고는 우리는 믿을 수 없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믿음의 은사를 허락해주십시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온갖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를, ‘존재의 용기’(courage to be)를 주십시오.

[레벨:8]流水不爭先

2007.05.21 09:23:20

목사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저를 위한 목사님의 기도를 바라며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는 다윗의 고백이 생각나며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솟구쳐 이 아침에 감사드립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7.05.23 19:58:02

씽크바이블 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니
감사드립니다.
저도 기도를 잘 못하는 사람이지만
기도를 부탁하시니
기억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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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17일 무소유 (2)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막 6:8,9) 어제 우리는 무소유와 사유재산의 극복이라는 말을 던지기만 했습니다.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지요. 그것은 사도행전이 약간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듯이 원시 기독교공동체의 재산공유 개념을 가리킵니다. 행 4:32절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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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16일 무소유 (1)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막 6:8,9)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지팡이와 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행을 떠나려면 오히려 꼼꼼히 많은 걸 챙겨야 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두 벌 옷도 입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옷을 갈아입지도 말라는 건가요? 그 당시 유대인들의 옷이라고 해봐야 부대자루처럼 그냥 뒤집어쓰는 거니까 굳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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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15일 귀신 제어 권능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막 6:7)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다고 합니다. 축귀는 예수님에게서 많이 발생한 사건입니다. 이제 제자들도 예수님의 이런 일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서에 귀신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성서시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오늘 우리보다 훨씬 신비로운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영의 작용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불치병은 그들의 ...

6월14일 열두 제자 파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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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14일 열두 제자 파송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막 6:7) 예수님이 실제로 열두 제자를 두 명씩 짝을 지어 파송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렇다와 아니다로 나뉩니다. 우리는 그런 전문적인 부분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요. 일단 성서의 보도를 충실하게 따라가기만 해도 좋습니다. 이 말은 파송의 역사적 근거가 없어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 성서는 근거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간혹 그 근거를 모를 뿐...

6월13일 방랑설교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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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13일 방랑설교자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막 6:6b) 고향에서 푸대접을 받은 예수님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시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방랑설교자의 모습입니다. 발길 닿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떠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말입니다. 방랑설교자는 일정한 조직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자유롭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합니다. 조직은 사람들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유를 억압합니다. 교회도 나름으로 조직입니다. 특히 정통교회는 이런 조직의 속...

6월12일 믿음이 없는 사람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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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12일 믿음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막 6:6)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고향사람들을 이상하게 여기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섭섭하게 생각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안타까워하셨다는 뜻이겠지요. 믿음이 없기는 고향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당시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물론이구요, 심지어 제자들도 역시 믿음이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말씀하셨겠습니까? 새들도 보금자리...

6월11일 권능의 역동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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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11일 권능의 역동성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막 6:5) 예수님은 고향에서 아무런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다고 합니다. 몇몇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셨다는 보도가 뒤따르는 걸 보면 권능을 완전히 행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은 예수님의 권능이 발휘될 수 없었던 곳이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향의 비극이겠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권능이 기계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향 사람들이 ...

6월10일 선지자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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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10일 선지자의 고향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막 6:4) 선지자와 고향 운운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아마 유대인들의 속담인 것 같습니다. 그런 속담을 빗대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신 거겠지요. 복음서가 보도하는 예수님의 진술 중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도 있고, 사도들에 의해서 추가된 것도 있고, 혹은 성서기자의 가필도 있으며,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구약이나 속담에서 인용한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일...

6월9일 배척당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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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9일 배척당한 예수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 6:3) 본문은 고향 사람들이 예수의 형제들을 열거한 다음에 예수님을 “배척했다.”고 표현합니다. 성서기자는 이미 여기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암시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예수님을 가장 잘 아는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했듯이, 예수님과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이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입니다. 저는 유대교 신학을 접해...

6월8일 예수의 형제들

  • 200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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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8일 예수의 형제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 6:3) 본문이 나열하고 있는 예수의 가족에서 아버지 요셉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게 조금 이상합니다. 그가 일찍 죽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대목만이 아니라 복음서는 전반적으로 요셉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예수님 탄생설화에 잠간 등장하고 맙니다. 복음서 이외의 다른 신약성서는 요셉에 관해서 더 철저하...

6월7일 마리아의 아들 (2)

  • 2007-06-07
  • 조회 수 1827

2007년 6월7일 마리아의 아들 (2)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 6:3) 어제 저는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초기 기독교가 예수님의 인성을 끝까지 붙드는데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그런 분들은 아마 예수님과 마리아의 관계를 생각할 때마다 즉시 동정녀라는 단어를 기억할 겁니다. 예수님이 동정녀에게 태어나셨다는 사실은...

6월6일 마리아의 아들 (1) [6]

  • 2007-06-06
  • 조회 수 1954

2007년 6월6일 마리아의 아들 (1)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 6:3)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이유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이 자기들과 별로 다를 게 하나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곳에 있는 사람이 뛰어난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자기들과 함께 있는 사람이 뛰어난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들이 예수님을 깎...

6월5일 예수의 지혜와 권능

  • 2007-06-05
  • 조회 수 1884

2007년 6월5일 예수의 지혜와 권능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막 6:2) 고향사람들은 예수의 지혜와 권능에 놀랐습니다.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일들이 예수에게서 일어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자기의 예상으로 재단하면서 살아갑니다. 수능이 높게 나온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거나 경쟁력이 높은 사람이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는 예상...

6월4일 고향 회당에서

  • 2007-06-04
  • 조회 수 2458

2007년 6월4일 고향 회당에서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막 6:2)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서 안식일을 맞아 회당에 들어가 가르쳤다는 사실은 그가 고향에서도 이미 랍비로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만 그들은 곧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그 상황을 이렇게 이해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이 방랑 설교자로서의 입지를 굳혔기 때문에 비록 고향사람들이 내...

6월3일 다시 고향으로!

  • 2007-06-03
  • 조회 수 1588

2007년 6월3일 다시 고향으로!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막 6:1) 예수님은 고향을 방문하십니다. 나사렛입니다. 예수님이 출생은 베들레헴이지만 자란 곳은 나사렛입니다. 그곳은 예수님의 가족, 친척, 동네어른들이 계신 곳이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 추억이 긷든 곳입니다. 저는 고향이 없습니다. 서울을 고향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곳의 추억만 남아있지 형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서울시 삼선동에서 초등학교 5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2학기부터 광나루 다리 건거 천호동에서 살았습...

6월2일 메시아 은폐성

  • 2007-06-02
  • 조회 수 1917

2007년 6월2일 메시아 은폐성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막 5:43) 예수님은 죽었다던 소녀가 다시 살아난 사건을 비밀로 하라고 단단히 이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사건이라면 널리 선전하는 게 마땅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이번 경우만이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아성(性)을 감추시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메시아성의 은폐성입니...

6월1일 놀라움 (2)

  • 2007-06-01
  • 조회 수 1677

2007년 6월1일 놀라움 (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인문학적 성서공부 강의안 중에서 일부를 여기에 게재합니다. 칼 바르트는 신학적 실존을 바로 이런 두려움, 즉 놀라움에서 찾았다. 거의 글을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누구나 신학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학에서 손을 떼고 편견 없이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가 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놀라움의 경험이 솟아올라서 더 이상 상실된 상태에 있지 않...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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