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9일 씨 (7)

조회 수 2428 추천 수 53 2007.01.19 08:13:01
2007년 1월19일 씨 (7)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민들레꽃을 볼 때마다 우주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구는 민들레홀씨의 작은 알맹이이고요. 지구라는 씨 안에서 온갖 생명체가 활발하게 약동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완전한 생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잠시 지구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집니다. 그 어떤 것도 여기서 예외가 없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완전한 생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닐는지요.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서기자들과 더불어 유한한 생명 안에 살아가면서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하다는 게 무엇일까요? 안타깝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잘 모르듯이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유한의 반대개념으로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개념으로만 남아있을 뿐이지 실체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오직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영원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과의 일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곧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씨입니다. 이 씨는 앞으로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 꽃이 피는 때가 곧 예수의 재림이 일어나는 종말입니다. 그때 지구는 더 이상 씨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니 지구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가 전혀 다른 생명 형식으로 변형될 것입니다.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요엘, 그리고 신약성서 기자들은 약간씩 다른 방식으로 그 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영원하고 완전한 생명 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의 종말론적 희망입니다.

breathe

2007.01.19 20:04:11

목사님 말씀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경우 '목숨'과 '생명'은 깊은 의미에서 단어의 차이만큼 차이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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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01.19 23:41:19

과거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친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미래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친다는 건 그렇게 분명하지 않습니다.
위의 명제는 경험적으로, 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정당하지만
아래의 명제는 신학적으로만 정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신학적으로만 정당한 아래의 명제가
보편적으로 정당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지경까지
기독교 정체성을 변증해 나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제 이야기가 전달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미래를 현재로 당겨서 사는 삶이 곧 기독교 영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지평이 아니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겠지요.

[레벨:8]김인범

2007.01.20 02:05:11

참 의미있는 말입니다.
목사님의 댓글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미래가 우리에게 꼭 영햐을 미친다는 사실을 믿고
그래서 미래를 현재로 당겨서 사는 삶
그것이 곧 기독교가 말하는 신앙이군요.
아주 간단하지만 명료합니다.
문제는 미래를 당겨서 오늘을 산다는 것
다른 말로 종말론적인 삶이란 말이겠는데
그것도 역시 은혜로 알고 믿어져 살아지는거겠죠.
역시 더 깊이 하나님을 알아야겠습니다.
여기에 기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바울이 그래서 그 기도를 한 것 같구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breathe

2007.01.20 06:45:52

목사님...미래를 현재로 당겨서 사는 삶, 이땅위에서 천국을 이루라'로 받습니다.
그래서 또한 하나님께서는 과거는 묻지 않겠다고 하셨나봅니다.
'now' 에 나의 미래가 있다'는 거겠고요. 점점 목사님의 신앙관을 들여다봅니다.
아니, 영성을 엿봅니다. 주신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 '아멘'하면서
내가 그리 살지 못함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간절히요...

[레벨:2]조석현

2007.01.20 13:44:45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온전히 임할 하나님 나라가 성큼 성큼 나에게로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미래를 현재로 당겨 사는 삶은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하는 '의지'로 가능한 것인가요?
아니면 은혜로 가능 한 것인가요? 아니면 깨달음을 얻는 순간 이루어 지는 것인가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7.01.21 00:04:23

조석현 님,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실감이 나나요?
그게 중요합니다.
그건 신학적 인식이기도 하고
영적 직관이기도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통해서
아직 우리에게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성서가 계속해서 지시하고 있는 그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점점 또렷해지겠지요.
여기서 또렷해진다는 말은 실증적인 대상이 된다는,
즉 완벽한 논리가 가능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전히 어렴풋하지만
그런 상태가 또렷해지는 거지요.
무의 경험, 어둠의 경험을 통해서
유의 경험, 밝음의 경험이 가능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화두입니다.
이걸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도 역시 이것에 의존해야지요.
일단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이 집중되었다는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깊은 신학적 세계에 발을 디딘 겁니다.
단, 그게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생각이 집중되어야겠지요.
미래를 현재로 당겨 사는 삶이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그게 기독교 영성입니다.
내가 그걸 알면 벌써 뭔가 큰 일을 냈을지도 모르지요.
의지, 은혜, 깨달음 ..이라고 말씀하셨네요.
많은 이야기가 여기에 필요합니다.
사실 신학은 한 주제가 그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바둑에서도 한쪽의 수가 전체와 연결되듯이 말입니다.
성서, 창조, 종말, 계시 등등이 이 주제와 연결되는 거지요.
그런 건 천천히 공부해야 하는 거니까 접어두고,
그래서 질문에 대답을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희망'입니다.
또는 '믿음'입니다.
아니 그것은 '사랑'입니다.
좀 이상한 대답같지요?
종말의 생명을 오늘의 삶으로 선취하는 것이
왜 희망, 믿음, 사랑인지를 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미 신학석사 학위를 받은 거나 다를 게 없습니다.
내가 말을 빙빙 돌리는 거 같지요?
신학은 이렇게 빙빙 돌리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논리가 들어가야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빙빙 돌려도 하나님의 실체는 도저히 따라잡지 못합니다.
다만 그가 자신을 알리는 것만큼 조금 알아들을 준비를 하는 거지요.
오늘 대글로 조금 길게 쓴 이유는
이런 문제가 신학적으로 생각하려는 평신도 지성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답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조석현 님 덕분에 다비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조금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모두들,
좋은 주일이 되시기를.
주현절 후 셋재 주일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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