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4일 씨 (2)

조회 수 2176 추천 수 34 2007.01.14 08:04:21
2007년 1월14일 씨 (2)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 뿌리는 행위가 곧 예배라는 어제의 말을 뒤집으면, 예배는 곧 씨 뿌리는 행위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철저하게 자연에 깃든 생명의 능력을 의지하듯이 예배도 역시 철저하게 자신과 구별되는 영에 의존합니다. 그 영은 아버지의 영이고 아들의 영인 성령입니다. 우리가 흔하게 들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예배의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예배의 주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물론 형식적으로 사람이 예배를 진행하지만 그 예배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과연 그게 무슨 뜻일까요? 말은 들은풍월로 쉽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예배의 영성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열광적으로 설교하는 목사와 찬양하는 성가대원들, 설교조로 기도하는 장로들 등등, 이런 모습들이 우리의 예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조금 괜찮은 경우라고 한다면 예배에서 종교적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설교가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다거나 찬송을 부르는 순간에 울컥하고 감동을 느끼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종교현상만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관하는 예배를 드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실질적으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일까요? 여기에는 어떤 모범 답안이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거룩한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는, 또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쁨이 우리의 영혼을 채우는 예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씨앗을 한줌 쥐고 휙휙 뿌리면서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는 농부의 심정이 바로 이런 예배의 중심입니다. 자신이 처리할 수 없는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어야겠지요. 예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오직 그것 한 가지에 마음을 모아 예배를 드릴 때 성령이 임의의 방식으로 임재하십니다.

breathe

2007.01.14 09:02:46

동감입니다. 그래서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 나도 있다'고 하셨나 봅니다.
목사님, 주일입니다. 습관에 따른 주일일지라도 예배는 목사님 말씀에 따른
저만의 예배를 갖추고자 합니다.
어제는 반나절도보여행에 참가했습니다. 두번 째 참여했는데요. 걸으면서 내내 하나님과 대화하며
걸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자주 하나님을 웃으시게 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웃으시면 저는 기쁩니다. 자주 애통하고 자주 울고 자주...기쁨이고 싶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7.01.14 22:00:38

브레쓰 님,
반나절 보도여행이라, 멋지군요.
삶 자체가 여행이니까 그런 보도 여행을 통해서
삶의 진면목을 조금씩 익혀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일상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건
행복으로 나가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의 웃음이라...

[레벨:8]김인범

2007.01.17 01:31:26

씨뿌리는 행위를 보면서 예배를 말씀하시는 깨우침.
저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느낌은 심한 자기 비하일까요?
그렇지만 예배에 들어가서
그 예배가 그저 종교적 감동 정도로 멈출 수는 없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우리를 예배로 부르시는
그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두려움을 느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쁨과 감격
우리의 육신이 아닌 영혼을 풍성히 채워 흘러넘치는...
그래서 어떤 인간적 언어의 표현이 불가능할 것 같은
그런 예배가 드려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어떻게 란 말이 있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분명 표현의 한계를 느끼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한 진정한 예배가
아니 그것은 아미 우리가 아는 그런 형식과는 상관없는
목사님 말씀하시는 존재 자체가 느끼는 엄위로움과 거룩
우리는 인간이기에 형식과 형태가 필요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들을 초월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 그분만의 독특한 임재하심이
그 한알의 씨에서 우주를 보듯이
그리고 그런 풍성한 생명의 힘을 느끼는 거겠죠.
어디서나 언제든지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으시겠죠.
그것이 진정 예배에의 삶이고
삼위 하나님의 우리와의 동행이시고
우리가 이미 소유한 놀라운 특권이겠죠.
그 하나님의 자녀들로 말입니다.
그것이 풍성히 깨달아지면
한 알의 씨앗에서도 그런 풍성한 하나님을 발견하고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그 분을 찬송하는 거겠죠.(엡1:1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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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4일 예수와 함께 한 사람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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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28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3)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며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막 4:8) 제가 사는 하양에는 노점상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좋은 땅’이라고 생각되는 한분을 말씀드려야겠군요. 그분은 나이가 쉰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분인데, 다리근처에서 과일 노점상을 합니다. 10년 전쯤 저희가 하양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집사람이 그분에게서 과일을 사면서 막내딸에게 입힐 초등학교 운동복을 어디서 살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자기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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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27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2)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며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막 4:8) 본문이 가리키는 좋은 땅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동일한 복음을 들었는데도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강도가 다른 걸 보면 마음의 밭이 다르다는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음의 밭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우선 좋은 인격과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의 목회경험을 통해서 보더라도 신자들의 인격이 중요하더군요. 원만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

1월26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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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26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1)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며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막 4:8) 씨가 아무리 좋아도 땅이 나쁘면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다행히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수십 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합니다. 땅이 중요합니다. 생명을 키울 수 있는 옥토 말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한국 기독교 전체로 넓혀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복음의 좋은 씨는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기독교는 좋은 밭인가요, 아닌가요? 여기에 생명의 씨가 뿌리...

1월25일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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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25일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막 4:7) 어떤 씨들은 가시떨기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가시가 자라서 생명의 기운을 막았고, 결국 이 씨는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했습니다. 본문 말씀에 의하면 씨가 결실을 맺으려면 생명의 기운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서 생명의 기운은 이미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영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운이 가시떨기로 인해서 막힐 수 있다고 하는군요. 성령도 우리의 삶에서 독단적으로 ...

1월24일 돌밭에 떨어진 씨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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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24일 돌밭에 떨어진 씨 (2)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막 4:6)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났지만 뿌리가 햇빛에 타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햇빛은 양날을 가진 칼과 같습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생명을 파괴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식물에 한정해서 본다면, 뿌리를 흙에 내리고 있는 식물에게는 햇빛이 생명의 근원이지만 뿌리가 없는 식물에게는 죽음의 힘입니다. 신앙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하나님 경험’입니다. 젊은 연인들의 사랑도 그들이 함께 나눈 경험에 의해서 풍...

1월23일 돌밭에 떨어진 씨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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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23일 돌밭에 떨어진 씨 (1)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이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막 4:5) 돌밭에 떨어진 말씀의 씨도 있었습니다. 이 씨는 잠시 뿌리를 내리긴 했지만 온전한 생명으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식물의 생명을 지탱시켜주는 흙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돌과 흙의 차이가 무엇인지 제가 지질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습니다. 상식적의 차원에서 말씀드린다면, 돌과 흙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물기와 미생물인 것 같습니다. 돌에는 물기도 없고 미생물도 ...

1월22일 길가에 떨어진 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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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22일 길가에 떨어진 씨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막 4:4) 예수님의 이 비유에 등장하는 농부는 전문적인 농사꾼이 못 되는가 봅니다. 그가 뿌린 씨 중에서 길가에 떨어진 것들이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흙을 부드럽게 쟁기질을 한 다음에 씨가 들어갈 구멍을 만들어서 그곳에 정확하게 씨를 뿌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쩌면 고대 유대인들의 농사 방법이 제 상식과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한 겨리의 소가 고랑을 내고, 씨 뿌리는 사람은 뒤 따라가면서 손으로 대충 휙휙 뿌리다 보면 길가...

1월21일 씨 (9)

  • 2007-01-21
  • 조회 수 2402

2007년 1월21일 씨 (9)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를 주제로 한 이 대목의 큐티가 너무 분산되는 느낌이 있군요. 오늘로 이 대목을 끝내야겠습니다. 성서가 은폐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사건을 청중들에게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전문적인 해석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제 짚었는데, 한 마디만 보충하겠습니다. 원래 해석학이라는 낱말은 헬라신화 ‘헤르메스’(hermes)에서 왔습니다. 제우스의 말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메신저인 헤르메스는 신의 말을 인간의 말로 번역, 통역, 해석해야만 합니다....

1월20일 씨 (8) [2]

  • 2007-01-20
  • 조회 수 2525

2007년 1월20일 씨 (8)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예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씨의 영적인 의미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어떤 결실을 맺는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말씀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선 성서를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문자에 한정되는 건 아닙니다. 이미 계시 사건이 있으며, 선포도 있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큰 의미에서 말씀입니다. 근본적으로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이기...

1월19일 씨 (7) [6]

  • 2007-01-19
  • 조회 수 2431

2007년 1월19일 씨 (7)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민들레꽃을 볼 때마다 우주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구는 민들레홀씨의 작은 알맹이이고요. 지구라는 씨 안에서 온갖 생명체가 활발하게 약동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완전한 생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잠시 지구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집니다. 그 어떤 것도 여기서 예외가 없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완전한 생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닐는지요. 우리...

1월18일 씨 (6) [2]

  • 2007-01-18
  • 조회 수 2480

2007년 1월18일 씨 (6)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저는 어제 인간과 나무는 왜 이런 모양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저는 인생의 연륜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그런 것들이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말로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믿음이 좋은 게 아니라 단순한 겁니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에서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무조건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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