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3) 3월25일

조회 수 4402 추천 수 100 2006.03.26 23:12:19
2006년 3월25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3>

저는 앞서 출애굽과 포로귀환을 ‘기쁜 소식’으로 이해하는 구약의 해석이 신약에서는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이 말에 오해가 있을까 해서 변명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억압된 삶의 구조가, 그런 것들은 대개 경제와 정치에 연관된 것인데, 해방의 구조로 바꾸는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사는 분들이 한국 사람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일은 교회가 선포해야 할 복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연대해서 극복해야 할 문제들은 국내외적으로 끝없이 널려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가 이 땅의 삶에서 구체화할 수 있도록 교회는 깨어있는 영성으로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저는 오랫동안 KNCC 대구경북 인권위원회와 목협에 참여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생태운동까지 포함됩니다. 이 지구가 지속 가능한 별로 남게 하기 위한 오늘 이 시대의 필요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전개해나가야 하겠지요. 이런 것들도 총체적인 차원에서 우주론적 복음 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천들이 최선의, 또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한다면 굳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게 필요할까요? 이런 일들은 양심과 윤리와 휴머니즘으로 가능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런 일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런 일들이 유보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것 너머의 어떤 것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들에게 복음이었습니다. 그런 신앙적 전통은 오늘 우리에게 연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우리는 여전히 복음의 실체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서 실증적인 대답을 찾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이건 한 두 마디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비밀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이해하고 해명하기 위해서 최선을 기울이면서, 더 궁극적으로는 그 비밀이 완전히 드러나는 시간을 기다려야하겠지요.
이게 왜 비밀인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복음의 실체를 조금 엿볼 수 있게 하는 소위 ‘팔복’ 말씀의 첫 마디는 이렇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누가복음은 ‘심령’이라는 단어를 생략했습니다만, 물질적으로 가난했든지, 아니면 심령이 가난했든지, 이런 사람들이 결국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가르침은 우리의 현실적인 삶과는 좀 동떨어진 느낌이 듭니다. 우리의 경험은 그것과 정반대입니다. 이 세상은 그런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킬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말씀을 읽고 “마음을 비우라는 거구나.”하고 간단하게 생각해버리는 것도 그렇게 정확한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은 단지 마음을 수양하는 종교는 아니니까요. 가난한 사람이 왜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훨씬 복잡한 논의를 거쳐야 합니다. 우선 가장 간단한 대답으로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그 모든 물적인 차별이 종식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희망한다는 것이겠지요. 이런 방식으로 그 말씀을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실체는 아직 비밀입니다. 천국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두 관계를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려면 우선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가 정리되어야 합니다. 마가는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이 복음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이는 게 그리스도교적 신앙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우선적인 태도입니다.

[레벨:18]눈꽃

2008.10.30 18:32:10

기쁜소식!... 지금이순간에는 ... 마지막 연에서 .." 그가 무슨 말씀을하는지 귀를기울이는게 그리스도적 신앙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우선적인 태도입니다" 라는말씀이 .... 요즈음 제가 가장많이 생각하고있는것이기에 아니 가끔씩.... 심령이 가난한사람은 복이있나니! ,...심령이 가난하면 복을 받는다는의미도있겠지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받은 사람이 아닐까요? 제가 지금보다 훨 물질, 마니 마니 가난해본적이있었는데.. 그때 그계기로 하나님에대하여 마니마니 목말라지던데요...... 가난해지는것도 복이다!!!!! 그런데 다시 가난해지라고하면... 글쎄 쉬이 네! 라고 답하기 싫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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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2), 3월30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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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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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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