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40)

조회 수 1119 추천 수 0 2019.10.22 20:40:36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사물(Ding)을 사중자, 즉 네 가지 힘의 회집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네 가지는 하늘과 땅, 사멸할 자들과 신성들이다. 그에 의해서 사물은 신비의 차원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게오르그 트라클(Georg Trakl)의 시를 설명하는 대목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오스트리아 시인 트라클(1887-1914)의 시 어느 겨울 저녁을 보자.

 

눈이 창가에 내릴 때

저녁 종이 길게 울리고

식탁은 여럿을 위하여 차려지고

집안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방랑하다가

어두운 오솔길로 문밖에 이른다.

은혜의 나무는 금빛으로 꽃피운다.

서늘한 땅의 물기에서.

 

방랑자는 조용히 들어선다.

고통은 문지방을 돌이 되게 했다.

그때 순수한 밝음 속에 빛난다.

식탁 위의 빵과 포도주가.

 

이 시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눈이 내리는 저녁, 삶의 나그네들이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선다.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빵과 포도주에 거룩한 빛이 감돈다. 인간의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이 사물이 거룩해지는 순간이다. 하이데거는 이 시를 이렇게 해석한다.

 

말하기는 겨울 저녁 시간을 명명한다. 이 명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확정 가능한 대상들과 표상들을 기호표시에다 매다는가? 그 명명은 제목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 명명은 부른다! 부름은 불리는 것을 더 가까이 부른다. ... 부름은 물()들을 초대하여, 그것들이 인간에게 ... 관여하게 한다. 눈 내림은 인간을 밤 깊이 어두워지는 하늘 밑으로 데려간다. 저녁 종의 울림은 사멸할 자들로서의 인간을 신성들 앞으로 데려간다. 집과 식탁은 사멸자들을 땅에 매어둔다. 그러니까 명명된 물들은 부름을 받으며 자기에게로 하늘과 땅, 사멸할 자들과 신성들을 회집한다. 이 넷은 본원적으로 하나가 되는 상호향성(相互向性)이다. 물들은 이 넷의 사중자(四重者, Gevierte)를 자기에게 머물게 한다. 이처럼 회집하면서 머물게 함을 우리는 물의 물화라고 명명한다. 물들 속에 머무는 사중자가 세계이다. (하인리히 오트, 사유와 존재, 204쪽에서 재인용)

 

빵과 포도주

기독교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의 하나는 성찬식이다. 성찬식에서 우리는 구원과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는 사람들이다. 트라클의 시 마지막 행에 나오는 빵과 포도주를 예수의 몸과 피로 믿는다. 이게 세상 사람들에게는 근거가 불확실한 환상이겠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궁극적인 현실이다. 질료의 차원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예수의 몸은 우리의 몸과 같은 질료로 구성되었다. 그가 먹었던 음식도 우리가 먹는 음식과 같다. 그의 육체는 우리와 같다. 그 모든 육체의 근본은 원소다. 그의 머리카락도 자랐고, 발톱도 자랐다. 그리고 땅에 떨어져 다른 사물의 원소가 되었다. 그 원소의 하나가 지금 성찬상에 올라온 빵과 포도주에 들어가 있을 개연성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빵과 포도주는 하나의 질료다. 그 질료는 형상을 만나야만 구체적인 사물이 된다. 현재 우리 눈에 빵과 포도주로 보이지만 더 궁극적으로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사건이라는 형상에서 볼 때 예수의 몸과 피라고 봐도 틀린 게 아니다.

이런 영적인 시각이 시인들에게서 종종 드러난다. 이번 사경회 순서지에 함민복 시인의 시 사과를 먹으며가 실렸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에서 울던 새소리를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

사과를 연구한 식물학자의 지식을 먹는다

사과나무 집 딸이 바라보던 하늘을 먹는다

사과에 수액을 공급하던 사과나무 가지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세월, 사과나무 나이테를 먹는다

사과를 지탱해온 사과나무 뿌리를 먹는다

사과의 씨앗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자양분 흙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흙을 붙잡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먹는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이런 시인이 감수성으로 성경을 읽어야만 그 은폐된 속살을 이해할 수 있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스데반처럼 환상적인 방식으로 궁극적인 생명의 현실을 보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보는 사람들이다. 예수가 하나님과 같은 생명의 능력을 행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즉 예수가 구원자라는 사실을 삶의 가장 궁극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그 사실의 증인이 바로 기독교인들이다. 신약성경 언어인 헬라어 마르투스는 순교자와 증인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기에 당하게 되는 불이익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삶의 태도가 바로 순교 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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