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43)

조회 수 923 추천 수 0 2019.10.30 21:00:10

영원한 영광

근신하라는 말만 생각하면 기독교인의 삶이 처절해 보인다. 어려움을 당하지만 인내하면서 기도로 버티라는 말로 듣는다.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삶을 버거워하는 인상을 준다. 시쳇말로 찌질해 보인다. 아니다. 기독교인은 어느 순간에도 비관론에 떨어지지 않는다. 실패가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휩싸여 살지 않는다. 굳이 구분한다면 기독교 신앙은 낙관론에 가깝다. 큰 성공과 큰 긍정으로 산다. 즐거움과 희망으로 가득한 삶이다. 하나님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임마누엘 신앙이다. 베드로 사도도 그 사실을 10절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무턱대고 대적 마귀를 대적하라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대적할 수 있도록 기독교인들에게 힘을 주신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대적하거나 싸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대적하고 싸우신다. 그 능력으로 우리도 함께 싸우는 것이다. 10절만 정확하게 이해해도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내용을 대부분 알게 될 것이다.

10절은 길지만 한 문장이다. KJV으로 읽어보자. “But the God of all grace, who hath called us unto his eternal glory by Christ Jesus, after that ye have suffered a while, make you perfect, stablish, strengthen, settle you.” 직역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영원한 영광 가운데로 우리를 부르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서 그대들이 잠시 고난을 겪은 뒤에 여러분을 완전하게, 단단하게, 강하게 하시며, 여러분의 토대를 확실하게 하실 겁니다.” 참고로 <공동번역>은 다음이다. “여러분은 잠깐 동안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에게 당신의 영원한 영광을 주시려고 불러주신 하느님 곧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하게 하여 주시고 든든히 세워주시고 힘을 주시고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루터 성경>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부르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잠깐 고난을 겪은 여러분을 완전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능력 있게 하시고 토대를 확실하게 하실 겁니다.” 이 문장에서 주부는 여러분을 ... 하나님이이고 술부는 잠깐 고난을 겪은 여러분을 ... 확실하게 하실 겁니다.’이다. 더 줄이면 하나님이 기독교인들을 강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이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부르신 분이시다. 여기서 핵심은 영원한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이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베드로전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의 하나다. 17, 8, 11, 21, 24, 212, 411, 13, 14, 16, 514, 10절이다. 앞에서도 짚었지만, 영광은 히브리어 카봇, 헬라어 독사의 번역이다. 성경에서 볼 때 영광은 하나님께만 붙일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사람이 영광을 원한다. 고대 제국의 왕들은 모두 하나님께만 붙일 수 있는 영광을 욕망했다. 왕의 욕망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욕망도 이런 현상에 가세했다. 신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백성은 왕을 신으로 만들어 대리 만족을 구한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이야기는 바로 그 사실을 말한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 수 있다는 뱀의 유혹을 거절할 수 없다. 인간의 신성화가 곧 죄의 뿌리다. 이집트의 파라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로마의 케사르 등은 신이었다. 그들은 죽지 말아야 헸다. 이집트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만들고 본인이 죽으면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피라미드에 안장하게 했다. 현대인도 이런 불사의 꿈을 꾼다. 개인은 의학의 발전으로 생명을 무한정 늘릴 수 있기를 바라고, 인류는 우주 물리학과 항공술의 발전으로 지구 너머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서 영원히 존속하려는 꿈을 꾼다. 그게 가능할까? 그 꿈의 성취로 인간은 구원받을까?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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