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4:13

조회 수 465 추천 수 0 2023.10.02 07:43:3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42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요한은 다시 하늘에서 울리는 음성을 듣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죽음을 안타깝다고 말하지 않고 복이 있다고 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요? 죽음은 슬픔이고, 절망이며, 참담함 아닙니까. 완전히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니까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요한이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걸 부정하는 말도 아닙니다. 중요한 건 죽음에도 하나님의 위로와 빛과 선하심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영적 통찰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세상에서 볼 때 하나님에게마저 버림받은 사건이었지만 그 자리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영적 통찰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석이라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이 있다는 단어는 헬라어 Μακάριοι입니다. 시적인 표현입니다. 복이 있으리라! 복이 내리기를! 5장에 나오는 팔복문장이 모두 이 마카리오이로 시작합니다. ‘복이 있으리라. 그대 심령이 가난한 자여.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5:3) ‘팔복에 열거된 사람들은 세상의 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복이 없으니까 오히려 복의 근원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위 구절이 말하는 복의 내용은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입니다. 참된 안식을 가리킵니다. 보통 죽음을 영원한 안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세상의 일은 아무리 즐거워도 우리를 쉬게 하지 못합니다. 죽어야만 참되고 궁극적인 안식이 가능하다는 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인정하겠지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허무에 떨어지겠으나, 그래서 세상의 일에 미련이 강하겠으나,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고 믿는다는 데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긴 할 겁니다. 설득시키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로 그들과 다툴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은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는 사실 안으로 조금씩이라도 깊이 들어가는 게 최선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품은 예수께서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신 하늘나라입니다. 그 하늘나라를 지금 여기서 경험한 사람에게는 살아있을 때 이미 죽음조차 복되다는 소리를 하늘에서 들으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마카리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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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23.10.14 07:25:19

수고를 그치고

50대 초반인 아우 목사와 등산을 하는데 나이 50이 넘으니 문득문득 이제는 내 몸이 내 맘대로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네요.”라고 합니다. “나는 60이 가까우니 문득문득 내가 언제든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돼.” 당신 가실 날을 아신 우리 어머니처럼 나도 내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수고를 그치고 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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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10.14 22:01:47

예, 50대와 60대에는 느낌이 제법 강렬한데

저처럼 70대가 되면 그런 느낌마저 미지근해집니다.

재미 삼아 제 이력을 10년 단위로 간추려볼게요.

스무살- 신학교 입학

서른살- 독일 유학

마흔살- 박사 학위

쉰살- 대구샘터교회 시작

예순살- 귀촌

일흔살- 설교 전담 목사 시작

세월의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순식간에 여든살, 아흔살이 되겠지요.

최용우 님 어머니처럼 저도 떠날 날을 대충은 알아차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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