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7
15: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이제 마지막 재앙이 펼쳐질 순간이 되었습니다. 하늘 성전에 연기가 가득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성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재앙의 관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일까요? 참상은 곧 하나님의 부재나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뜻일까요? 우리 인생살이에서도 종종 막막한 안개의 시간이 찾아온다는,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뜻일까요? 큰 수술을 받을 때 전신 마취가 필요하듯이 말입니다.
그 연기는 하나님의 영광(δόξα)과 하나님의 능력(δυνάμις)에서 옵니다. 그분의 영광과 능력은 우리가 직접 바라볼 수 없는 태양 빛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관한 묘사가 시내산 전승에 나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오를 때 나타나는 시내산 풍광은 다음과 같습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출 19:16) 백성들은 감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모세만 선택됩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출 19:20)
하나님 경험은 일종의 연기 앞에 서는 경험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만물이 사라지고 존재의 아득한 깊이로 떨어집니다. 다행입니다. 우리가 죽음의 실상과 그 너머의 세계를 속속들이 안다면 현재의 삶을 버텨낼 수 없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비슷한 경험에 이른 이들 중에서 미쳐버린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충분히 성숙해지면 연기가 걷히겠지요. 우리는 연기가 걷히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면서 성숙해져야 합니다. 연기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어린아이를 둔 가족이 영화관에서 갔을 때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부모가 아이의 눈과 귀를 손으로 가려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찬 것은 성막을 완성했을 때이고(출 40:34-35),
하나님의 연기가 성전에 가득 찬 것은 이사야가 주님을 보았을 때이다(사 6:4).
성전이 연기로 가득 찬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두려움을 주며 타오르고 있음을 상징하는데, 여기서 영광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출애굽기 19장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보다 40장과 이사야 6장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더 요한계시록 15장 8절과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