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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4월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 [7]

  • 2008-04-02
  • 조회 수 2206

2008년 4월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접어두고,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말입니다. 며칠 전 이 단락을 시작하면서 저는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는 누군가, 하는 질문이 현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도, 우리의 후손들에게 여전히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세상...

목사공부(84)- 예수의 족보 이야기

  • 2014-07-15
  • 조회 수 2205

예수의 족보 이야기 앞에서 구약의 첫 구절을 인용했으니 이제 신약의 첫 구절인 마 1:1절을 인용하겠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이 문장의 뜻은 단순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진술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족보를 거론할 필요가 있었겠냐, 하는 점이다. 족보 이야기가 없어도 복음을 전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족보 이야기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신성이 족보 이야기로 인해서 약화될 수 있기 ...

팔복(15)- 절대 생명

  • 2013-07-10
  • 조회 수 2205

종말에 완성될 생명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완전하고 절대적인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답을 찾기도 힘들다. 우리가 지금 상대적인 생명 세계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생명을 생각해낼 수가 없다. 기껏 해봐야 배고프지 않고, 병들지 않고, 싸움이 없고, 죽지 않는 생명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쉽게 생각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면 생명이 완성될까?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배고프지 않으면 배부름도 모른다. 배부름을 모르면 행복...

근본주의(8) [1]

  • 2010-07-17
  • 조회 수 2204

근본주의의 태동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사실은 앞에서 언급했소. 극과 극은 통한다고, 인간 중심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필사적으로 막아보려던 근본주의는 또 다시 인간 중심적으로 흘러갔소. 이게 무슨 말인지 몇 가지 예를 들겠소. 쉴라이어마허는 현대신학의 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있소. 그의 활동 시기는 19세기 전반기요. 그가 강조한 것은 인간의 절대의존 감정이오. 그가 말하는 감정은 단순히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감정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 오히려 내면의 깊은 종교성을 가리키오. 그를 비판하는 한국의 근본주...

8월15일 “귀신아!”(3) [5]

  • 2008-08-14
  • 조회 수 2204

2008년 8월15일 “귀신아!”(3)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위 구절의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십시오. 한 남자 아이가 땅에 구르면서 거품을 흘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무슨 큰 구경이라도 난듯이 몰려들었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하고 명령을 내리셨다고 보도합니다. 이게 과연 사실일까요,...

2월17 일 들으라! [1]

  • 2007-02-17
  • 조회 수 2204

2007년 2월17 일 들으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막 4:23) 오늘 본문의 ‘들을 귀’는 9절 말씀과 똑같습니다. 9절 묵상에서 저는 주로 들을 귀에 집중해서 설명했지만, 오늘은 주로 ‘들으라.’는 관점으로 묵상의 문을 조금 열어보겠습니다. 신앙이 들음에서 시작한다는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다바르)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계속 말씀하셨고, 사도들을 통해서도 역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

삶(15)

  • 2013-10-04
  • 조회 수 2203

10월4일(금) 삶(15) ‘예수 우리의 생명’이라는 문장의 두 번째 의미는 살아있을 때 예수를 통해서 생명을 누린다는 뜻이다.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표현으로는 생명에 참여한다거나 생명이 풍요로워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거나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죽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실수도 하고 상처 받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외로움도 느끼고 절망하기도 한다. 삶에 우여곡절이 많다. 기독교인이라 해서 늘 삶을 윤택하게 사는 ...

트레킹 file [4]

  • 2014-02-07
  • 조회 수 2203

오늘 이른 아침부터 원당리에 눈이 왔다. 눈발이 제법 굵어지더니 제법 쌓였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설교를 준비하는 날이니 가능하면 꼼짝 말고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나 이런 날은 특별한 날이니 뭔가 이벤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집사람과 둘째딸을 불러서 트래킹을 가자고 했다. 그래봤다 왕복 한 시간 거리다. 우리집에서 북쪽으로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면 저수지가 나온다. 별로 크지 않은 저수지다. 살얼음이다. 단단하게 얼었으면 동네 아이들 썰매타기 딱 좋을 거 같다. ...

교회의 공공성(3), 1월6일(주일)

  • 2013-01-06
  • 조회 수 2203

우리는 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사도신경을 고백한다. 사도신경에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새번역 사도신조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한다. 독어 사도신경은 이 대목을 “die heilige christliche Kirche”로, 영어 사도긴경은 “the holy universal church”로, 니키아-콘스탄티노플 사도신경은 ‘사도적’이라는 낱말을 보충해서“ecclesia una sancta, catholica et apostolica”이라고 한다. 교회의 보편성이 신약성서에 나오는 용어는 아니다. 그런 개념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

12월24일 그가 살아나셨다(7) [1]

  • 2009-12-23
  • 조회 수 2203

2009년 12월24일 그가 살아나셨다(7)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16:5) 세 명의 여자들이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두리번거리면서 예수님의 시체를 찾았겠지요. 시체를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삼일 전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매장할 때 눈여겨 보아두긴 했지만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을 테니까요. 또한 당시는 해 돋을 때이니 아직 주위가 밝지는 않았을 것이고, 더구나 무덤 안이었으니 더 어두웠을 겁니다. 그들이 횃불을 준비했을까요? 아니...

예수 어록(380) 요 16:32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 2020-07-23
  • 조회 수 2202

예수 어록(380) 요 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가 수난당할 때 제자들은 흩어질 것이다. 대표적으로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다. 제자 중에 아무도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자리에 없었다. 여자들은 여러 명이 있었다. “사랑하는 제자”(요 19:26)가 요한일까? 확실하지 않다. 십자가 처형 장면에서만 제자들이 예수를 혼자 두고 흩어진 게 아니라 그 사건 뒤에 모든 걸 포기하고 각각 고향...

확실성의 근거는 무엇인가?

  • 2010-10-20
  • 조회 수 2202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 내 주변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소. 그대 주변도 똑같을 것이오. 일단 1억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으로부터 달려온 빛이 세상을 밝히고 있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하양 전체가 그 햇살로 빛나오. 엷은 구름으로 햇살이 강하지는 않소. 아파트 두 층 위에 오늘 이사 오는 집이 있소. 짐을 나르는 고가사다리 소리에 귀가 멍멍하구려. 찻길에는 여러 종류의 차들이 지나고 있소. 아파트 베란다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예쁘게 피어 있소. 아마 지금도 열심히 탄소동화 작용을 하...

1월17일 씨 (5) [1]

  • 2007-01-17
  • 조회 수 2202

2007년 1월17일 씨 (5)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는 땅에 들어가야만 생명으로 변화됩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에서 생명의 비밀을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깨닫는다 하여도 그 깨달음이 우리의 삶을 실제로 추동해나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성자, 도사, 진인 등으로 부릅니다. 어쨌든지, 씨가 땅속에 묻히면 무엇으로 변화합니다. 그런 현상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썩는다고 표현합니다. 썩는다는 말은 우리에게 별로 좋은 느낌...

팔복(18)- 죽음의 극복

  • 2013-07-13
  • 조회 수 2201

예수의 부활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가, 아니면 제자들의 특별한 종교 경험에 불과한 것인가? 부활이 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경험된 것일까? 부활의 주님이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요즘은 왜 우리가 제자들과 같은 부활 경험을 하지 못하는가? 지금 이 자리에서 부활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할 수는 없다. 한 가지 관점만 짚도록 하자. 예수의 부활은 죽음의 극복이다. 죽음은 모든 생명을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그 죽음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없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아...

12월20일 그가 살아나셨다(3)

  • 2009-12-19
  • 조회 수 2201

2009년 12월20일 그가 살아나셨다(3)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16:2) 2절에 다시 ‘때’가 언급됩니다. 1절에서도 때가 언급되었습니다. 양쪽 모두 안식일이 그 중심입니다. 1절은 단순히 안식일이 지났다는 사실만 거론합니다. 여성 제자들이 향품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전하려는 것이었겠지요. 안식일이 지났다는 것은 토요일 저녁이 되었다는 뜻인데, 그때 향품을 사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다음날 낮이 돼야 물건을 살 수 있었겠지요. 이런 논리적인 모순을 성서기자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

예배(14) [6]

  • 2011-09-21
  • 조회 수 2200

경배와 찬양 유의 열린 예배에 대해서 한 마디만 더 하겠소. 일단 재미있소. 주로 젊은이들이 앞에 서서 몸동작을 하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를 인도하오. 어떤 경우에는 대형 프로젝터로 가사를 보여주든지 아니면 멋진 사진을 보여주오. 이런 분위기에 들어가면 일단 흥이 나오. 예배 시작하기 전에 20-30분 동안 뜨겁고 간절한 찬송을 부르면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청중들의 마음이 똑같이 동화되오. 모두 한결같이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소. 이게 문제라오. 은혜를 너무 사모하는 것이오. 은혜가 안 되면 은혜를 받는 척이...

9월12일 베드로의 울음(3)

  • 2009-09-11
  • 조회 수 2200

2009년 9월12일 베드로의 울음(3)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14:68) 하인들 사이에 끼어서 불을 쬐고 있던 베드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부딪쳤습니다. 대제사장의 여종을 통해서 그의 정체가 들통 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산헤드린 공의회를 통해서 사형 선고를 받은 나사렛 예수와 일당이라는 겁니다. 돌아가는 형편이나 파악할 요량으로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온 그에게 당혹스런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여종의 말을 반...

8월23일- 놀라움 (5) [1]

  • 2006-08-23
  • 조회 수 2200

2006년 8월23일 놀라움 (5)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우리가 놀라움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앞에 놓인 이 세계가 너무 익숙하게 여겨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뜬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해서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족이 있고, 직업이 있고, 친구들도 있습니다. 하늘과 산, 새와 나비는 늘 그렇게 있어왔던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들은 그...

김·근·태, 1월3일 [4]

  • 2012-01-03
  • 조회 수 2199

주님, 지난 12월30일 숨을 거둔 김근태 선생이 겨울의 한 복판인 오늘 모란공원 묘지 땅에 묻혔습니다. 그는 1985년 9월4일부터 20일까지 반복되는 물고문과 전기고문으로 이미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인격도, 지성도, 체면도,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도 지킬 수 없었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칠 수밖에 없었던 그곳, ‘남영동 대공분실 515호실’에서 양심을 지키려던 젊은 그는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몸은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였고, 그의 영혼은 올무에 걸린 사슴이었습니다. 고문 후유증을 견뎌내지 못하고...

6월13일 방랑설교자 [1]

  • 2007-06-13
  • 조회 수 2199

2007년 6월13일 방랑설교자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막 6:6b) 고향에서 푸대접을 받은 예수님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시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방랑설교자의 모습입니다. 발길 닿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떠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말입니다. 방랑설교자는 일정한 조직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자유롭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합니다. 조직은 사람들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유를 억압합니다. 교회도 나름으로 조직입니다. 특히 정통교회는 이런 조직의 속...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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