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4일- 예수의 행위와 정체

조회 수 3624 추천 수 19 2006.06.04 23:48:32
2006년 6월4일 예수의 행위와 정체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막 1:24)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던진 말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행위에 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것입니다. 그의 행위는 귀신을 멸하는 것이며, 그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 기독론에서 예수님의 행위와 정체성은 서로 변증법적으로 맞물러 있습니다. 그의 메시아적 행위는 그 메시아적 정체성에서 나온 것이며, 메시아적 정체성은 그 행위로 증명됩니다. 복음서 전체의 핵심이 오늘 이 귀신들린 사람의 발언에 담겨 있는 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더러운 귀신으로 형상화한 악의 박멸은 인류의 오랜 염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악은 극복되지 않는 걸까요? 성서 기자들은 이 문제를 훨씬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사건은 바로 악의 존재론적 근원에 대한 신학적 통찰의 결과로 제시된 해명입니다. 아담의 죄가 인간에게 숙명적으로 작용할 정도로 죄와 악은 본질적이라는 뜻입니다. 금지된 선악과를 왜 취했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아담은 이브에게 책임을 미루었고, 이브는 뱀에게 미루었습니다. 낯간지러운 변명입니다. 동생 아벨을 돌을 쳐 죽인 카인의 형제살해도 역시 폭력의 근원에 대한 해명입니다. 카인은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동생이 어디 있느냐, 하는 하나님의 물음 앞에서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하고 뻔뻔스럽게 대답합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간 자신을 파괴하고, 생명의 숨통을 조이는 더러운 귀신을 추방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은 그 일을 성취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이후로 이 세상에 더러운 귀신들이 더 이상 활동하지 않고 있나요? 이 세상은 변한 게 없습니다. 바로 여기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자칫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멸하기 위해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면,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오늘 저는 이것에 대한 세세한 해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 주제는 죄론과 구원론, 또는 종말론과 연결된 거시 담론이기 때문에 이 짧은 묵상에서 다루기 힘듭니다. 다만 한 마디만 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서 더러운 귀신의 성채는 이미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며, 마지막 심판 때 그것이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중간기’에 살고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의 세력이 한풀 꺾였지만 아직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그런 과도기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귀신들린 사람은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안다.”고 했습니다. 귀신의 약점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상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그들의 기가 살아날 수도 있고, 기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사실 앞에서 그들은 더 이상 싸울 의욕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곧 악과의 투쟁은 외면적인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체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해명하는 내면적인 힘에 달려있다는 뜻이겠지요.
결국 오늘의 더러운 귀신과 투쟁해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악과의 실제적인 투쟁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한 진리론적 변증이 동시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전자는 예수님의 행위를 뒤따름이고, 후자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해명과 증거입니다. 전자를 위해서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하고 후자를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 더러운 귀신과의 투쟁에 바르게 대처하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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