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의 시(2)- 꿈꾸는 당신

조회 수 4513 추천 수 0 2017.08.02 21:25:30

82,

마종기의 시(2)

 

제목: 꿈꾸는 당신

 

내가 채워주지 못한 것을

당신은 어디서 구해 빈 터를 채우는가

내가 덮어주지 못한 곳을

당신은 어떻게 탄탄히 매워

떨리는 오한을 이겨내는가.

 

헤매며 한정없이 찾고 있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곳에 있기에

당신은 돌아눕고 돌아눕고 하는가.

어느 날쯤 불안한 당신 속에 들어가

늪 깊이 숨은 것을 찾아주고 싶다.

 

밤새 조용히 신음하는 어깨여,

시고 매운 세월이 얼마나 길었으며

약 바르지 못한 온몸의 피멍을

이불만 덮은 채로 참아내는가.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 새벽 침상

아무리 인연의 끈이 질기다 해도

어차피 서로를 다 채워줄 수는 없는 것

아는지, 빈 가슴 감춘 채 멀리 떠나며

수십 년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

 

*마종기가 말하는 당신은 먼저 죽은 동생인지, 아니면 아내인지, 또는 자기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당신떨리는 오한을 견뎌내야 하며, 밤새 돌아누워야 한다. ‘밤새 조용히 신음하는 어깨를 가진 사람이다. 인간으로 지구에 보내진 우리 인간은 당신’의 실존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유복한 삶의 조건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그것만으로 삶의 깊이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종기는 어차피 서로를 다 채워줄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한다.

판넨베르크는 어떤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마 고전 13장의 사랑을 본문으로 하는 설교로 기억된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것을 상대에게 요구하다가 실망하곤 한다. 또한 그런 요구를 상대에게 채워주려고 하다가 지친다.’ 이런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 그걸 아는 사람끼리는 실제로 위로가 된다. 그것마저 한계가 있는 게 분명하지만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인식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끼리는 서로 피곤한 상황에 빠져든다.

마종기가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그의 시 중에 재의 수요일이 있는 걸 보면 가톨릭 신자로 보이긴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빈 곳을 채워준다는 사실을 그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런 걸 암시하는 내용이 그의 시에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포착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걸 표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위 시 마지막 연에서 아는지, 빈 가슴 감춘 채 멀리 떠나며/ 수십 년의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이라고 읊는다. 따뜻한 허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레벨:13]쿠키

2017.08.04 16:01:13

앗.목사님 ! 따뜻한 허무!

늘 목사님의 글과 설교를 읽으며 아득한 세계로 들어가는 허무가

바로 따뜻한 허무였어요

자유와 안식과 희망과 충만함 ...가장 편안한 허무 였어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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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8.04 21:17:29

따뜻한 허무라는 표현이

쿠키 님의 영혼이 딱 꽂혔네요.

그 따뜻한 허무가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한 영원한 안식이겠지요.

우리 사이에 땡그랑 하고 공명의 종이 울렸나 봅니다.

여기에 마종기 시인도 포함시켜야겠네요.

[레벨:4]선비다움

2017.08.06 20:03:27

오늘 하루 최고의 안식이었어야 할 날에 ,

그렇지 못한 제 삶과 너무 똑같아 오히려 위로가 되는 시입니다.

마종기 시인을 옆에서 보고 있듯이 독파해내는

목사님은 시 평론가로 나서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것을 상대에게 요구하다가

실망하곤한다. 또한 그런 요구를 상대에게 채워주려고 하다가 지친다"


이 구절이 너무 와닿는 하루였습니다.

나의 소망이 주님의 소망이라고 착각하진 않았는지 되돌아 보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종말론적인 삶의 희망이 무엇인지 더듬어보는

한편의 시와 해설이 오늘 밤을 더욱 무르익게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이런게 은혜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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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7.08.06 22:17:14

제 콤멘트가 마종기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시도 텍스트고, 성경도 텍스트라서

대충 어림짐작으로 그의 시를 설명할 뿐이니

시 평론 운운하면 부끄럽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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