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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김 목사(이하 김): 어떻게 된 게 자네와 나는 어려부터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똑같이 평생 목사로 살았는데, 이제 비슷한 나이에 죽어서 최후 심판 자리에도 함께 왔네 그려.
박 목사(이하 박): 그러게 말이네. 자네와 함께 오니 왠지 마음이 든든하이.
김: 자네는 지금 막 도착해서 잘 모르겠지만, 나는 여기 곳곳을 이미 둘러봤네. 우리가 심판장이신 예수님 앞으로 불림을 받기 전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으니 둘러보세. 내가 자네를 안내하겠네.
박: 그럴까.
김: 한국에서 온 목사들만 따로 심판받는 법정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세나. 저곳이야. 선고를 앞둔 목사들도 있고, 이미 선고받은 이들도 있네. 잘 보면 자네도 알만한 목사들이 있을 걸세.
박: 어떤 선고가 떨어졌을지, 참 궁금하군.
김: 우선 염소 상이 놓인 왼편 방을 보시게나.
박: 아니, 이럴 수가 있나. 믿을 수가 없네. 아, 저기. 아들에게 담임 목사 자리를 물려준 목사들도 한쪽에 몰려 계시군. 화가 잔뜩 난 표정이야. 늘 박사 학위 후드를 걸치고 예배를 인도하던 목사, 회중들을 웃기고 울리면서 신바람 내며 설교하던 목사, 해외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했다고 자랑하던 목사, 총회장과 감독 선거에서 교회 헌금을 헤프게 쓴 목사, 동성애자들을 저주하던 목사, 툭하면 종북 좌파라고 몰아붙이던 목사들도 저기 쭈그리고 앉아 있군. 저렇게 숫자가 많은지, 미처 몰랐네.
김: 지금은 풀이 죽어 있지만, 심판 과정에서 저들이 올린 핏대가 하늘 재판정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네. 왜 자신들이 염소 취급을 받아야하는지 따지던 장면을 자네가 봤어야 했네. 장관이었지. 예수님에게 설교하려는 기세더군.
박: 그들의 반론을 듣고 예수님이 뭐라 하시던가. 나도 이해하기가 좀 어렵네. 저분들이 영적으로 뛰어난 분들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저주를 받아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갈’(마 25:40) 분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그런 기준이라면 우리도 그렇게 떳떳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 하긴 그렇지. 내가 어디 예수님 생각을 다 알 수 있나. 옆에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내가 들은 이야기만 그대로 전하겠네. ‘당신들은 살았을 때 큰 교회에서 좋은 것을 많이 받았고 가난한 교회 목사들은 큰 고난을 당했으니 이제 여기서 당신들은 괴로움을 받고 가난한 교회 목사들은 위로를 받는 게 마땅하지 않소?’(눅 16:25).
박: 말이 안 돼. 예수님의 판단이 정말 옳다고 생각하나?
김: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네. 우리는 궁극적인 것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인식할 수 없네. 예수님의 판단에 순종하는 길밖에 없지.
박: 기가 막히는군. 여기 재판에서는 피고인들이 변호사의 도움도 받지 못하나?
김: 받을 수 있지. 염소 상이 놓인 방에 들어간 목사들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변호해준 천사들이 있었네. 실력이 좀 딸리는 천사들이라는 소문이 있더군. 나는 좀더 능력 있는 변호 천사를 만났으면 하네.
박: 그들이 뭐라 했는데?
김: 우리가 목회 현장에서 있을 때 다 듣던 이야기지. 저 목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했는지 아느냐고, 얼마나 헌신적으로 교회당을 건축했는지 아느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아느냐고 말이네. 한 마디로 예수님을 위해서 한 평생을 바친 ‘주의 종들’이라는 말이었지. 나도 감동을 받았네. 예수님은 변호 천사들의 변론과 목사들의 최후 진술이 끝난 뒤에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셨네. ‘당신들의 그 열정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가 오히려 훼손되었소. 신앙 양심이 있으면 그걸 느끼고 있었을 거요.’
박: 그거 참, 말이 안 나오는군. 어중간하게 목회하고 어중간한 목회 성과를 올린 우리는 어떤 심판을 받을 것 같은가?
김: 그걸 어떻게 예단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일세. 혹시 교회에서 받는 연봉이 높으면 왼편의 자리에 가까워지고, 연봉이 낮으면 오히려 오른편에 가까워지는 건 아닐까? 그냥 해본 상상이었네. 나도 잘 모르겠네. 다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기준과는 다른 기준으로 심판받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네. 그래서 여기서는 구원 받는 목사나 제외되는 목사나 모두 놀라기만 한다네.
박: 이제 생각났네. 우리가 목회자로 잘 나가고 있을 때 자네가 나에게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안 들어서 고민이 된다고 말했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는데, 자네는 이미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 거로군. 그때 자네 말을 좀더 귀담아 들었어야 하는데, 후회막급이네.
김: 그렇게 자책할 것은 없네. 나도 그때 뭔가 절대적인 생명의 세계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지 정면으로 돌파할만한 결기는 많이 부족했었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도 자네처럼 그럭저럭 목사 정년을 마쳤지. 아, 저기 우리를 담당하는 천사가 달려오고 있네. 가세.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금년 1월2일부터 일주일에 5편씩 '목사 구원'을 주제로 한 연재가
오늘 205편으로 끝났습니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인데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겨울에 글을 좀더 다듬어서
작년에 새물결플러스에서 나온 <목사 공부>와 한쌍을 이룬 책으로 낼까 합니다.